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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11년만에 수능 언어영역 풀어봤더니... 얼레?

11년만에 수능 언어영역 풀어봤더니...


멋쩍다는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료.

작년이었죠. 어느 분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메이저 기자가 블로그를 통해 재밌는 글을 하나 올렸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을 풀었다는 거죠. 지금은 출처를 통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원래 주어지는 것보다 좀 더 시간을 넉넉하게 썼고. 20분 정도 더 소요했었던가? 그리고... 만점을 받았다는 거죠. 아. 듣기평가는 그냥 패스했던걸로 기억. 

'전 절대 자랑질을 하려는게 아니라...'라는 설득력 없는 설득에 그만 하늘을 보았더랬습니다. (먼 산)
 
네. 그래서 저도 방금 시도해 봤습니다.
그래요. 난 비록 언론고시도, 그 엄청나다는 메이저 신문사의 필기시험도 본 경험이 전무한, '인디'라고요. 그렇지만 나 역시 프리랜서 기잣밥 먹은지도 어언 26개월이 아니더냐. 써놓고 보니 군 복무 기간이 생각나는군요. (먼 산. 한라산까지)

여튼 마이너리거던 인디밴드던 간에. 어쨌거나 명색이 국어로 먹고사는 직업인지라 까짓거 한번 해보자 하고 풀어봤습니다. 아, 이거 까딱하다간 망신인데 하며 머뭇거렸습니다만 지금은 그저 아행행이군요.

자. 99학번 인 저, 11년만에 다시 수능 시험지를 받습니다. 인터넷 세상은 참 좋아요. 11년전엔 생각도 못했을 자료가 모니터 하나만 켜면 곧장 떠오릅니다. 컴퓨터펜이나 오엠알 카드, 정식 시험지는 없지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새벽 4시에 수능 크리 돌입,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시~작. 
아크로 파일로 올라온 시험지를 보고, 키보드를 두들기며 메모장에 답을 기입하며 그렇게 언어영역을 풀어갔습니다. 과연 현역시절 만큼은 나올 수 있을 것이냐. 참고로 11년전 제 언어영역 점수는 108.6 점이었습니다.
 
듣기평가 말인데요. 이것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벌써 파일이 여기저기 나돌더군요. 하나 얻어다가 취재용 자료랍시고 사용. 일단 듣기평가 소요시간이 좀 깁니다. 다섯문제에 무려 13분이나 소요될 줄이야. 



흐음. 듣기평가까지 재현한 건 좋은데. 풀기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은 과오.
헉.
우리 때랑은 룰이 다르다.

난 지금도 120점 만점에 65문제, 배정시간 100분인줄 알았지 뭡니까. 어째 이상하다했다. 50문제에 80분?

결국 전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에 완전 실패했다는 거. 본의 아니게 예비 10학번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풀어가는건 물건너 갔고. 그냥 완주(?)에 뜻을 두고 풀어갔습니다. 하긴, 이랬으나 저랬으나간에 결국은 시간 초과네요. 마지막 50번 문제 풀고 보니 시간은 이미 시험 개시한지 108분이 경과. 100분간 65마리를 쏘아 맞추던 왕년의 용사는 이제 50마리 잡는데 108번뇌를 외울만치 녹이 슬어버렸어요. 상황이 이러니, 제대로 시험에 임한 것과의 비교는 무리가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그래도 완주는 했잖아요. 그렇게 새벽에 때아닌 두뇌 에어로빅쇼,쇼,쇼.

자아. 드디어 채점을 시작합니다. 

...크응.

초반엔 페이스가 좋았죠. 중반께부터 삐걱. 어럽쇼? 이게 뭐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소나기가 계속되길래 확인했더니 기입하는데 실수를 벌여놨더군요. 메모장에다 실시간으로 번호, 답을 입력하다 보니 순서를 지멋대로... 어쩔까 하다 그냥 눈감아 주는 걸로 하고 원상복구. 뭐 그렇게, 연속으로 날아갔던 다섯문제를 다시 원래대로 전원 정답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오엠알 카드를 하나 구해 제대로 도전해봐야겠어요.

그런데도 결과는 썩 맘에 안 드는군요. 후반들어 고민했던 문제들 상당수가 결국 오답. 아아, 만점 받았다던 메이저리거와 이 인디 나부랭이의 격차는 이리도 크단 말인가! 역시. 메이저리거는 뭔가 대접받을 이유가 있나 봐요. 아아,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자신의 무능을 절감하는 인디의 센티멘털한 아침. 아침이 어느새 밝아오네요.

결과를 공개합니다. 전 50문제 중 무려 10문제나 수중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난이도가 낮은 1점짜리를 뜻하지 않게 놓치기도 했고요. 틀리고나서 보니 쉽게 생각했으면 맞췄을 것을 고민하다 잘못 발을 들인 경우가 꽤 있더군요.
문제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특히 직렬 병렬 이야기 나오고 유전자 이야기 나오고... 순간 수리탐구과학영역을 생각케 하는 지문이 왜캐 연속으로 나오는건지. 나 이런거 약한데. 

채점해보니 총합 20점이 날아갔습니다. 전 이 때까지도 120점 만점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룰이 바뀌어 현재는 100점만점올시다. 80점이네요. 아아... 몰락이다. 역시 워밍업 없이 11년을 넘어 복귀전을 치른 것은 무리란 말인가!

시간상에 있어 본디의 것보다 오메가 알파가 나온 것도 뼈아프군요. 변명을 좀 하자면. 생각 외로 모니터를 통해 타이핑으로 응해 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지문하고 문제가 따로 놀 때마다 마우스 올렸다 내렸다 하는것도 영 맘에 안 들고. 급기야는 밝혔듯 답지 오기 사태 발생. 시험지하고 카드를 구해다가 정식으로 응하는게 더 수월치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부분은 승무를 비롯 시 세 작품이 연속으로 습격해 왔을 때. 시간들였던 3점짜리 문제는 결국 놓쳤습니다. 아악, 첨에 생각했던 2번이 결국은 답이었잖아! 쉽게 갈 것을 시간 들여 오답 내버렸네요. 아쉬움이 진합니다.

안되겠군요. 외국어는 못해도 국어만큼은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래가지고 기자질 낯뜨거워 계속 하겠어? 한국어 능력시험이던 뭐던 간에 제대로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다시 도전해보렵니다. 

아 참. 그렇지만 한가지 멋진 수확이 있었네요. 머리 아픈 시험이지만, 꽤나 재미있었다는거죠. 맞아요. 전 그 때도 언어영역 만큼은 모의고사에서도, 본 시험에서도 참 재밌게 풀었던 기억입니다. 이번 시험도 그래요. 죽은 여인과 산 선비의 인연을 다룬 고대문학은 참 재밌게 읽고 문제에 응했더랬죠. 지문을 깊게 이해할수록 정답율은 높습니다. 실제로 재밌게 읽은 부분은 연속 정답이었죠. 예전에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국어나 문학공부는 즐거이 할 수 있겠어요. 공부가 기대되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