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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11년 전 수능날 새벽 유성 보신 분 있나요?

11년 전 수능날 새벽 유성 보신 분 있나요?


혹시 말예요. 수능끝난 새벽, 잠 못들고 깨어 있는 수험생 있나요? 아니면 11년전 수능을 쳤을, 한국나이 서른살의 청년 여러분은?

라디오 청취를 하다가,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여기 닿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아. 저도 MP4의 라디오 주파수를 열어놓고 동갑내기, 그 날 같이 시험을 쳤을 손정은 아나운서의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과 연동될 사연을 올렸는데 신청곡과 함께 뽑아주면 좋겠군요.  

전 11년전 수능을 쳤던 99학번입니다. 10학번이 될 여러분들에겐 까마득하게 느껴지겠어요. 격세지감. 쇼 세대인 여러분. 그리고 스무살 티티엘 세대였던 나. ...내놔라, 내 10년. 상대가 불분명한 한숨.

수능시험은 10대 말기의 모든 이들 앞에 놓이는 거대한 관문. 그렇기에 행여나 바깥에서 뭔가가 일어나면 시험과 연관해 기억을 아로새깁니다. 처음엔 내가 시험보던 98년 11월만 그런줄 알았죠. 헌데 지금 생각해보니, 실은 그 다음해도, 또 다음해도. 수험생은 언제나 그 시대의 이슈를 가져와 자신만의 그 날을 특별히 기억할 것임을 깨닫습니다.

09년의 여러분은 그간 시험을 앞두고서 무엇을 가져와 추억의 재료로 삼았나요. ...신종플루? 오 마이 갓뜨. 

11년전 수능날엔 특별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시험장에 들기 두어시간 전, 새벽하늘에서 유성쇼가 펼쳐진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죠. 유성을 보고 소원을 세번 빌면 그것이 이뤄진다는 속설은 여러분 세대에도 건재할 겁니다. 망원경도 뭣도 없던 그 시절, 난 무모하게도 그걸 이 눈으로 잡아보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정말로 그걸 시도해 봤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직 차가운 공기 아래, 여명이 삼사십분 남은 보랏빛 하늘 아래로 달려갔죠. 

무모했습니다. 옥상은 잠겨 있었고, 아파트촌의 1층 아스팔트 보도 위로 나갔습니다. 그 흔한 나침반도 없이. 

가로등불 아래 놓인 인간의 육안으로, 잠시 기다렸습니다. 결국 볼 수는 없었습니다. 희망의 포획은 그렇게 실패. 

그 때문일까요. 전 그저 평범한 99학번으로 새내기 시절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점수요? 평소 제 것보다 조금 더 높더군요. 그야말로 일궜던 만큼의 수확량에 약간의 보너스를 얹은 댓가였습니다. 뭐 그래도 그만하면 본전은 건졌군요. 

본전치기. 그래요. 또다른 곳에서도 본전은 적절한 표현입니다. 비록 소원은 빌지 못했지만 그 짧았던 순간은 사진 한장처럼 기억속에 남았습니다. 여러 잡동사니 기억파편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추억.     

자랑할만하죠. 우리 98년 수능세대, 99학번 세대는 그 어떤 세대 못지않게 낭만적인 축포가 터졌던 수능날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그간 잊고 있었지만, 이렇듯 간간이 떠오릅니다. 

혹시 같은날, 시험을 쳤던 동갑내기가 있다면 묻고 싶습니다. 기억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보셨는지. 소원을 빌었는지. 지금 앉은 그 자리는 그 소원의 선물인지. 혹은 보지 못했지만 보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건 그렇고. 사연 올린 게시판을 보니 정말로 어느 분이 본인 글에 답글 달기를 '우리 10학번은 신종플루로 기억할거 같네요'라고...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니까. 뭐 이렇게, 11년전 수능날의 유성을 놓치고 만 기자나부랭이는 다 잠들었을 새벽에 옛 기억을 씹을거리 삼아 글을 끄적이며 먹고 살고 있습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