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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백야행, 슬픈 괴물의 운명 - 공소시효 15년, 매력의 양날검

[리뷰] 백야행, 슬픈 괴물의 운명


[리뷰] 백야행, 슬픈 괴물의 운명



괴물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추적하는 자들은 사라져버린다. 세상이 규정한 악. 용사는 포기 않고 끝까지 추적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괴물. 용사는 궁지에 몰린 괴물에게 하고픈 말을 한다.

"......"

조금은 뜻밖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이상, 영화 백야행을 말했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괴물의 탄생과 공포의 역사, 용사의 추적과 결말... 슬픈 괴물의 이야기

스포일러가 아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영화 내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진 못한다. 어쩜 보고 난 뒤에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손을 내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기엔 불을 내뿜는 괴물이나 칼 든 용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내린 영화의 요약일 뿐. 함께 영화를 봤던 한 남자가 물었다. 이번 영화를 다섯글자로 표현해보라고. 난 거리낌없이 '괴물의 비애'라고 말했다. 

괴물에 대해 다시 탐구해보고픈 영화다. 우리가 겁에 질리고,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괴물. 그런데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대목에서 용사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다시 괴물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괴물은 본디 '괴물'이 아니었다. 약하고 여렸다. 먼저 해한건 세상이었다. 세상은 악으로 규정한 괴물이지만, 실은 괴물에게 있어 세상이야말로 악이었다. 결국 괴물은 살아남기 위해 진짜 괴물이 됐다. 

처음엔 자기를 해하던 자만 끝장내려 했다. 그러나 나중엔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 죄없는 자들까지 해쳐야 했다. 자신을 추적해 오는 자들을. 결국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냥 그 때 한번으로 끝났어야 했을 것을, 이젠 정말로 거대하고 포악한 공포의 괴물이 되고야 말았다.

용사는 그 탄생의 시점에서부터 괴물을 알았다. 그러기에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용서는 못 한다. 죄없는 추적자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삐걱거린 운명은 멈추지 않고 원치 않는 살육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그는 심판해야 한다. 게다가 소중한 것을 그만 제물로 바치는 과오까지 범했기에 놓아줄 수는 없다. 슬픈 운명의 괴물이고 또한 서글픈 운명의 공동체인 용사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감상을 해칠 일을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오히려 궁금하다. 영화 감상 후 몇사람이나 이 말을 이해할지조차 난 넘겨짚을 수가 없다.



섹스는 도구와 가학일 뿐... 사랑엔 섹스가 없는 영화


이후에야 알았다. 영화에 베드신이 있다는 정보, 그리고 캐스팅 때문에 이전부터 화제가 됐던 영화임을. 손예진과 고수의 베드신을 예상했다가 그렇지 않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 이들의 촌극도 있었다.

확실히 영화엔 정사 장면이 있다. 고수도, 손예진도 각자 다른 파트너가 있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고수의 근육질이라던가 뜻밖의 누군가를 통해서 보여지는 일정 수위에 만족하는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여기서 보여지는 정사 장면은 단순히 눈요깃거리로만 그치진 않고 뭔가 이유(구실이던 납득할 이유던 간에)를 담고 있다는 거.

생각해 볼 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섹스엔 사랑이라는 본질이 전부 배제되어 있다는 점. 영화에 나오는 정사장면이란 죄다 '도구' 아니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네거티브하거나 그냥 단편성에 머무는 것들.

그랬다. 약자를 희생시키는 가학. 아니면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서만 벌이는 무감정의 행각. 그도 아니면 역시나 허무하고 의식적인 것.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매우 피폐해진다. 

어긋났을지언정 진정으로 서로를 원하는 이들은 정작 이와 무관하다. 서로 다가가지도 못한다.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영화 속에서 '멜로'라고 할 수 있는 '두 괴물'의 사랑엔 어떠한 베드신도 없다. 하긴, 어쩜 설령 이뤄졌다 해도 그들은 영원히 살은 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평생에서 그것은 자신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잔혹한 행위일 뿐이었다.   

혹자는 잿밥에 혹해서 영화관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다소 철학적 관념을 들고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것도 영화가 선사하는 생각할 거리다. 뜻밖의 선물, 나쁘지 않다.
 



스타들의 무난한 캐릭터 소화
 
사실 연기자들에게 연기력이 어떠니 하고 평하는 건 개인적으로 가장 껄끄러운 영역이긴 한데,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느낀 바를 풀어본다.

이미 검증받은 배우 한석규 씨의 연기는 무난하고 편안했다. 특유의 편안한 화술에서 시작되는 그의 감정발산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단연 첫째다. 평소와 달리 폭삭 늙은 모습으로 등장해 순간 놀랐긴 했는데, 시사회에서 본 그의 모습은 건재하더라. 한석규의 지난 발자욱을 봤을 때 흥미로운 것은 화이트컬러에서 블루컬러로의 변신. 커피향 물씬 풍기는 곳에서 안경 너머의 시선. 시대를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배용준과 마찬가지로 한류 스타 대열에 들었을... 실례했군. 이미 쉬리를 통해 이름을 일찌기 알렸구나. 정정한다. 한류 중에서도 '청춘 스타'로서.

이 영화에서도 그는 거친 형사역을 연기한다. 그러나 쉬리의 OP요원이 그래도 화이트컬러의 엘리트였다면 이 영화의 한동수 형사는 거친 삶에 쩔고 찌든 전형적 블루컬러다. 욕도 잘한다. 다만 그를 둘러싼 무겁고 공허한 안개는 매우 신비한 매력을 부여한다. 완벽치 않은 것은 캐릭터도 물론이요 작품 속 선악구도도 마찬가지지만, 여하튼 이 작품 속 인물들 중엔 절대선에 가장 가까운 남자.

고수 씨는 더욱 멋있어졌다. 영화 도중 어느 미남자(?)가 '얼굴 기억하고 말고, 나보다 못생겼어'라고 회자할 땐 객석의 기자들이 그만 폭소를 터뜨리더라. 확실히 그 말 끝나자마자 클로즈업되는 그의 얼굴은 조각상같다. 물론 얼굴만 갖고 들이대진 않는다. 우수에 젖은 살인마의 매력은 그저 미남이란 이유만으로 성립되진 않는 것. 영화 흐름에 무난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아파도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 미모의 괴물.

또 하나의 괴물인 손예진 씨 말인데,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인상 깊게 바라본 연기자지만 솔직히 그간 보여준 그 특유의 화술만큼은 뭐랄까, 개성이라 하기엔 다소 걸리는 어딘가가 있었다. 굳이 그녀의 연기에 흠을 잡자면 그 말투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 거슬리던 부분이 많이 닦여졌다. 청초해보이는 이미지에 잘 맞는 차분한 말씨. 그러나 실은 얼음장같은 마음을 숨기고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시키는 악역 캐릭터를 살렸다.   

손예진의 유미호는 악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롭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는데다, 하나하나 자기 계획대로 짜맞추어가며 사람을 자신의 포로로 만든다. 자신을 의심하거나 적대시하는 자는 심리 함정을 파 밀어넣은 뒤, 끝내 마음을 얻고야 만다. 진상을 알았다면 경악하고 말 일을 처연한 천사의 얼굴과 육신으로 행한다. 남녀 가리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상대를 움켜쥐는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무방비도시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뒷맛 씁쓸한 악녀를 맡아 고군분투했다. 다만 무방비도시의 색기 어린 악녀와는 전혀 다른 이중의 여인이다. 하얀 어둠 속을 걷다라는 작품의 부제는 그녀를 위해 준비된 것인가 보다. 



인상깊던 조연들, 그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되는 역효과도 낳았다

주연 3인방 못지 않게 조연들의 캐릭터도 인상이 깊었다. 고수를 유혹하던 미연 역 윤다경 씨나 누군지 결국 이름을 알지 못한 선글라스 젊은 형사, 역시 이름을 모를 한동수의 후배 형사이자 현시점의 서장, 개인적으로는 손예진 씨보다 더 눈길이 가던 시영 역의 이민정 씨, 요한 어머니 역의 차화연 씨 등은 다들 자기 자리에서 빛을 모았던 작품의, 훌륭한 조연이란 이름의 재료들이었다.



맞다. 잠깐이었지만 이지아를 유미호로 이끌었던 이름모를 새어머니도 인상에 남는다. 되돌아보면 이 작품, 여러명의 어머니를 보여준다. '괴물'을 키웠다 끝내 먹혀버린 자업자득의 어머니, 일그러진 십수년에서 '그래도 나 역시 어머니니까... 이해해줘요'라며 괴물과 함께 연민을 나눠갖는 어머니, 괴물을 어쩜 구원해 줄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어머니까지.  

문제는 이 중 두 사람(이 부분은 스포일러성이 있어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이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작품 속엔 괴물을 쫓는 추적자가 계속 등장한다. 여기엔 14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끝까지 숨통을 조여가는 한동수 형사와 결국 정말로 서장이 된 후배가 있다. 여담이지만 서장이 직접 뛰면서 범인을 쫓는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뿐 아니라 역시 한 시선 잡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상적인 호연을 펼쳤지만 스토리는 그 이상의 비중과 시간을 허락치 않았다. 결국엔 하나 둘 희생되는 추적자들. 이 부분에선 감독이나 스탭들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 내부를 떠나서, 영화적 측면에서 볼 때. 그러니까 작품세계의 마스터인 감독에게 아쉬운 목소리를 내어 본다. 여기서 감독은 말을 다루는 장기나 체스의 플레이어와도 같다. 게임의 승부를 위해 플레이어는 장기말의 쓰임새를 제대로 부여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모든 말을 다 살릴 순 없다. 그럼 끝까지 지켜야 할 장기말과 잘 쓰고 난 뒤 과감히 버려야 할 장기말을 선택하고 운용해야 한다. 여기서 장기말은 캐릭터를 말한다. 

캐릭터가 호감일 경우, 그 캐릭터가 도중하차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빈자리를 아쉬워 할 수 밖에 없다. 멋진 퇴장은 분명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 때문에 남은 주연들의 다음 진행이 지장을 받으면 곤란하다. 남은 자들의 이야기에 다시 관객이 집중토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작품은 그 맺고 끊는 점에 있어 다소 약한 면이 있다. 뭐랄까... 연출에 있어서의 아쉬움이랄까. 그리고 그 전에 있어 '이 사람은 좀 더 오래갈 거 같았는데 뜻밖이네'라는, 예상외의 결과도 한 몫했다. 어쩐지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을 팍팍 남겼던 것이다. 이건 마치 아나키스트에서의 장동건이 의외의 시간대에서 자취를 지워버린 것을 연상케 한다.(물론 이 작품은 너무도 완벽하게 캐릭터를 지워버렸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정말 다시 안 나올까'하는 미련이 몰입도를 깨 버리는 역효과를 만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그 때문에 배정된 비중을 실제보다 넓게 추측케 만들었고, 그 자취를 지우는데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도 미련이 남았는지 궁금하다. 호연이었지만 그렇다고 '명연기'라고까지 되새길만한 것은 아니었고... 역시 그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이를 잘 살린 배우의 역량이 정답일까. 결국은 연기 좋았다는 이야기다.



공들인 영화, 그러나 음미하려면 관객도 공들여야 하는 영화

역시나 양날의 검이다. 영화를 보면 정성을 담았다는 느낌을 전달받게 된다. 설령 그 결과물이 엉성하더라도 그건 또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영화는 장장 135분의 진짜 장편이다. 실은 그것만으로도 아쉬워 내용을 보강할 추가판을 생각케 한다. 공들인 영화다. 

문제는 관객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딜레마. 추리극이지만 현장이나 시간대가 한정된 작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장소는 물론이요 시간까지 넘나들며 광활히 펼쳐지는 무대, 여기에 출연인물은 많기도 하다. 처음엔 정신이 없다. 이 사건 저 사건이 얽히면서 따로 노는듯한 인상. 젊은 감독에게 있어선(시사회에서 두 주연 남우와 섰을 때 '셋 중 젤 어리다'는 설명이 나오자 한순간 멈칫했다. 고수 씨 나이가 어케 되지?) 너무도 어려운, 경험이라는 시간의 선물이 필요한 난제였을까.
퍼즐맞추기의 첫부분이 꽤나 어렵다. 의외로 중반 이후부턴 상황이 대충 추려지면서 이해가 쉬워진다. 다시 말해 중반까진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영화를 그냥 편하게 감상하고픈 사람에겐 추천하기가 꺼려진다. 반면 '세븐'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두뇌회전을 해야 하는 영화를 즐기는 당신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4년간 각 캐릭터들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이는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도 한석규 씨가 언급했던 부분이다.


공소시효 15년은 괴물의 매직넘버

마지막 챕터다.
공소시효 15년. 영화는 이것을 괴물이 양지로 나오기 위해 살아남아야 할 시간제한선으로 삼았다. 공소시효 만료일을 특별한 날로 삼고자 하는 괴물의 평생 숙원, 그리고 그 날짜 안에 심판자와 구원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용사. 양 쪽 모두에 그것은 마법의 봉인이 풀리는 매직넘버. 영화의 소재로서 그리 흔치 않았던, 매력적인 부분이다.
영화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해 보는 것도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팁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