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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연예

'미수다 루저' 파문의 이유? 남자들 세계에선 당연히 화낼 일

'미수다 루저' 파문, 남자들 세계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후폭풍 속 씁쓸함 

KBS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의 9일자 방영분 중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출연자의 발언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일명 '미수다 루저 발언'은 며칠새 포털 키워드 검색어로 올라 있고 관련게시물은 각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방송게시판(http://www.kbs.co.kr/2tv/enter/suda/index.html)은 벌집을 건드린 것과 같다. 폐지해 버려라, 루저는 욕에 가깝다, 고소를 하겠다 등 엄청난 마이너스 감정의 폭풍이다.  가만 살펴보면 이는 단순히 가시만 담은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것에 대한 비명이 함께 섞여 있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 거기다 '오만정'까지 나왔다. 물론 제작진은 이같은 후폭풍을 예상했을리 없기에 편집없이 그냥 방송을 내보냈을 터, 그럼 어째서 이처럼 쉽게 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지 그 감정선을 들여다 볼까. 남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더라. 제작진이 간과하고 만 것이, 금도를 넘어선 거였다.

고교 시절의 일이다. 키가 작은 녀석 하나가 있었다. 나한테 와서는 '니 키 몇이고'하고 묻는 거였다.

"이번 신체검사선 174 나오던데."

"...딱 니 만큼만 컸으면 소원이 없겠다"

난 '대신에 넌 날씬하잖냐'고 했고 녀석은 '살이야 빼면 되지'라고 답했다. 알고보니 키는 다이어트와 달리 후천적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비애였다. 막상 그 입장이 아니면 그마저도 의식하지 못함을 그제사 조금은 알았다.

사실 키에 대한 문제는 여성들의 시선에 앞서 남자들 세계에서 서로가 의식하게 만드는 문제다. 여성들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된 일인지 남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문제가 장,단신 여부다.

외모에 있어서 잘생기고 못생기고 하는 얼굴의 문제는 남녀 할거 없이 공통된 것인데, 그래도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은 비교적 자유롭지 않느냐고들 한다. 확실히 그 점은 납득할 수가 있는것이 다름아닌 키 재기였다. 되돌아보니 남자들은 가장 먼저 서로를 비교하는 외모의 안건이 얼굴보다 키에 있었다. 제작진이나 발언자는 미처 생각 못했을 남자들의 사정이다.

군대에서의 일이다. 그때 난 정문초소 경계근무가 주 업무였다. '사단의 얼굴'이라며 흙투성이 군인아저씨 답지 않게 말끔한 모습을 중시하는 곳이었다. 군복, 군화가 하나씩 더 지급됐고 근무시엔 자기 총이 아닌 남의 총을 사용하기도 했다. 수많은 출입자를 상대하는데 있어 K-3를 들고 근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키 문제. 당시는 아니었지만 옛날엔 180을 넘지 않으면 차출되지도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오곤 하던 소대였다. 바깥에선 적어도 키가 작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던 나인데, 여기선 '난쟁이 똥자루'라는 조소를 듣고 말았다. 군대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었다면 주먹이 나갈만한 모멸이었다. 키가 큰 놈은 이렇듯 키 작은 후임에게 막말해도 되는 특권이 있었다. '아가 그러게 우유 좀 잘 챙겨먹지 뭐 했냐'라고 어이없이 물어오는 이도 있었다. 키가 170센티미터를 못 넘길 것 같은 이가 죽어라 173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키는 곧 축복과 열등의 잣대였다. 이번 파문을 단번에 납득할 법한 기억의 환기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기공부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선 '니가 몇센티만 더 컸어도...'라는 말을 교수에게 누차 들었다고 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하고 키 좀 재보자 하며 도토리 키 재듯 서로 일어서는 경우는 학창 시절이 지난 후에도 간간이 보여졌다.

     


여자들에 있어 피부가 권력이라 했던가. 남자들에겐 키가 곧 자존심이요 권력이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예능 프로에서 소위 퀸카라는 이들이 패배자(루저), 오만정이란 말을 담았다. 남자들끼리도 서로 본의던 아니던 상처를 주고 받고, 자위하고 때론 위안받는 민감한 부분을 여자들에게 찔려버렸다. 그것도 매우 아프게.

키 큰 남자가 좋다는 자기 취향을 밝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키 작은 이들에 대한 모욕은 삼갔어야 했다. 지금 문제는 단순히 키 작은 남자가 싫다는 발언 때문이 아니라 노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게다가 남자들에 있어선 더할나위 없는 프라이드를 욕설과 진배없는 말로 짓밟았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를 미처 생각못한 제작진의 과오가 함께 버무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특수성. 외국인들의 앞에서 한국인들의 사회상을 함께 논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여러모롤 울컥하게 만드는 민감한 부분들이 있다.

패배자는 자기 노력의 싸움과 경주에서 낙오된 이에게 쓰이는 말이다.(물론 이 역시 본인이 아닌 타인이 내뱉는 것은 매우 실례다) 선천적 문제에다 내단 것은 비난에서 벗어날 여지가 없다. 오만정 떨어진다는 험담은 사람의 외면이 아닌 내면의 일그러짐을 들여다본 후 반성하라는 뜻에서 거울처럼 꺼낼 지탄이건만 정말 생각없이도 내뱉었다. 이번 일이 앞으로도 당분간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작은 고추가 맵다던 옛 말이 무척이나 고마운 배려로 느껴지는 작금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