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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에 미스테리 꼬꼬마들 떳다. U-17의 8강 드라마

한국축구에 미스테리 꼬꼬마들이 떳다. U-17의 8강 드라마
지금은 웃고 마는 새벽의 인터넷 관중석 말,말,말 外


새벽 3시의 환호. 아직도 심장고동이 안정되지 않는다.
한국 축구에 미스테리 꼬꼬마들이 떳다. 나이지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17세 이하 세계청소년 월드컵에서 한국 17세 대표팀이 멕시코를 상대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엮어냈다.

내용을 복기한다. 한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시종일관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면서 분전했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전반 종료가 임박했던 43분, 단 한순간 수비 라인이 깨지며 상대에 첫 골을 허용했다. 마드리겔의 슛을 김진영이 몸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후반에도 불안한 기운은 계속 이어졌다. 동점골을 염원했지만 쉽게 골문이 열리지 않는 경기였다. 후반들어서 팽팽하게 밀고 당기던 두 팀, 후반전도 5분여가 남은 상황서 한국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멕시코의 프리킥. 세트 플레이에서 센터백 알바레즈의 헤딩이 그대로 골문을 통과했다. 기뻐하는 멕시코 선수들과, '들어갔습니다'라며 허탈해하던 SBS 스포츠 채널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계석의 낮아진 음성은 그렇게 꽤나 오래 흘러갔다. 낙담한 팬들이 채널을 끄기엔 충분한 시간.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중계진이 바로잡는다. 오프사이드. 스코어는 2대0서 1대0으로 다시 원위치하고 캐스터는 "다행입니다"를 연발.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청자들 혈압을 올리는 급반전이 시작된다. 경기는 로스타임으로 돌입했지만 잔여시간은 4분이 주어졌다. 넉넉한 시간. 그러나 그리 오래 갈것도 없었다. 46분 20여초께, 멕시코 골문 앞의 한국 파상공격 중 그림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오른쪽에서 볼을 잡은 미드필더 윤일록이 중앙으로 패스를 찔러 넣는다. 페널티 박스 안엔 많은 선수가 들어차 있었지만 공은 박스 바깥으로 간다. 다소 먼 거리. 그런데 거기에 해결사가 있었다. 포워드 김동진이 왼발로 논스톱 발리슛. 감각적인 직선 코스 슛은 키퍼와 수비수 사이의 필드를 훑어내듯 갈랐다. 그리고 그대로 동점골이었다.

그것은 수학공식을 보는 듯한 각도의 예술이었다. 감각과 배짱으로 짜낸 결정력.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그리고 그대로 후반 종료. 


"내가 귀신에 홀린거냐? 2대0까지 보고 껐는데 인터넷은 1대1?" -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갤러리 'ㄴㅇㄴ' 님
"빼서 옮김" - 낙양성의 복수 님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갤러리는 축구경기 이상의 멘탈리티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지난번 U-20 월드컵팀의 8강 기록이 가속화된 독일전에서 1대1로 명승부를 보였을 때만 해도 "둘다 못한다"는 혹평이 쏟아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형들에 이어 이들 역시 화끈한 경기력으로 조별예선을 돌파했던 것에 고무된 듯 이들은 "져도 괜찮아"라며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었다. 동점이 된 이후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꼬맹이들 잘하네 져도 괜찮아" - 보물선 님


갤러리들은 어느샌가부터 이들을 '꼬꼬마들'이라 불렀다. 어린 선수들이 당차게 공을 차는 것에 '꼬꼬마들 왜캐 잘하냐'고 애정 어린 목소릴 냈다. 확실히 경기내용에 있어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선수들이었다. 멕시코는 연장 들어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반면 한국은 비로소 발동이 걸린 듯 도무지 지친 것 같지 않은 힘을 보였다. 멕시코가 골키퍼에게 보내는 공 조차 실수, 코너킥을 허용하는 반면 한국은 리턴패스로 페널티 라인을 돌파하는 능력을 보였다. 한국 축구 특유의 근성은 물론이요 그간 보기 힘들었던 기술과 패스까지. 마치 잘 단련된 야수 같았다.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경기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성인대표보다 더 정확해 보이는 슈팅이었다. 논스톱 발리, 시저스킥 시도, 다이빙 헤딩에 보이는 집념. 어김없이 이는 유효슈팅으로 이어졌다. 더 바랄게 없는 완성도. 한국에 이런 아이들이 있었나. 이런 '멋진 꼬마들'이.




게시판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보기드문듯 하면서도 한번 분위기 타면 겉잡을 수 없는 훈풍이 제대로 불었다. 애정을 가득담아 '꼬꼬마'를 연호하는 사람들.

캐스터가 "부모님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진다. 피마르는 혈전 속에서 일순간 터지는 웃음보. 그것도 나름의 서비스였다.  


"만화보는거 같아. 판정부터 밀리다 겨우 동점, 연장가니 신나게 하다가 상대 위협적 공격까지..." - 이코노미K 님


일본의 명작 만화 중 캡틴 츠바사라고 있다. 난 갑자기 이 작품의 15세 청소년축구대회 중 빗속의 준결승 전을 떠올렸다. 극적으로 살아난 팀이 연장전서 죽을만큼 뛰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드라마. 국내판에서 로컬라이징되는 바람에 이들이 일본선수가 아니라 한국선수인 줄로만 알았던 시절이다.

연장 30분에서도 승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건 휘슬이 울리고 PK전에 돌입할 때 선수들의 밝은 표정이었다. 


"아따 키퍼 잘생겼다" - 부광 님


김진영 키퍼는 놀랍게도 사선에 서기 직전 환히 웃어보였다. 그리고 첫 키커의 슛을 방어했다. 잘 짜여진 극본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잠근 멕시코와 달리 한국의 첫 키커 이강 선수는 백전노장이 차듯 성공시킨다. 이때부터 한국의 키커들은 원,투,쓰리 연속 성공. 승부차기조차 짜임새 있는 실력을 보여준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엔 성인 국가대표팀보다도 이들의 역량이 더 멋져 보이는 것을. 

3,4번 주자 김진수, 이정호 선수의 세레머니는 인상적이었다. 경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가볍게 차고 즐거이 팬서비스를 하는 모습. 도무지 질 것 같지가 않은 막연한 기분이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인터넷 속에선 실시간으로 달리는 환성. 이것은 축제였다. 새벽의 축제. 2002년 월드컵 16강의 즐거움을 뜻밖에도 이 어린 선수들의 월드컵에서 다시 느낄 줄이야. 

마지막 키커 이민수가 결정짓는 순간. 87년 이후 한국이 22년만의 토너먼트 진출에 이어 8강 기록까지 재연하는 순간이었다. 중계석은 울음 비슷한 환호성을 쏟아낸다. 게시판도 뒤집힌다.


"잠은 다 잤어요. 가슴 뭉클함" - 상꼬꼬마 님


같은 시각, 포털 다음의 문자중계 게시판에선 새벽 3시에 이르렀는데도 10만여 응원표가 누적돼 있었다. 응원 댓글은 딱 2470개를 채웠다.




한 다음 유저가 "아 내일 출근 어떻게 하냐"고 우는 소리를 냈다. 3시 27분 등록된 글이 이 게시판의 마지막 글이었다.
 
다시 축구갤러리. 한 갤러리가 때늦은 후회를 한다. "2대0에 TV 껐는데 한국이 이겼다네..."라고. 그는 "끝까지 포기않는 선수들처럼 함께 했어야 했는데 시청을 포기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며 8강은 반드시 끝까지 간다고 했다. 결국 축구갤러리는 8강 상대를 결정짓는 나이지리아와 뉴질랜드의 다음 경기가 끝날때까지 열려있었다. 


"뭐야 왜들이래 난 무덤덤한데 난리도 아니네. 하하" - 네 님

"나도 첨엔 무덤덤. 큭큭. 그러다 동점에 승부차기 승리하니까..." - 그냥지성 님


디시 축구갤러리들은 이들에 꼬꼬마란 별칭을 붙여줬다. 그리고 난 여기다 '미스테리'를 추가로 붙였다. 한국 축구에 이런 황금세대가 있단 말인가 하는 경외감에 즉석으로 붙여본 별명이다. 결국 난 오늘도 밤을 새고 만다. 지난번 밝혔듯 지독한 불면증을 또 행복감에 젖어 이어가야 한다. 물론, 며칠 후의 하룻밤을 또다시 예약하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