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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귀없는 토끼, 웃음 없인 못 볼 신 독일인의 사랑 (뮤비 재중)

[리뷰] 귀없는 토끼, 웃음 없인 못 볼 신 독일인의 사랑




소싯적 문학소년이라 불렸던 주제에 '독일인의 사랑'은 못 봤다. 그리고 이 독일 사랑영화를 먼저 봐 버렸다. 혹 독일인의 사랑도 이런 풍이려나?

상당히 흥미롭다. 옆에 짝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도 모두 재미있게 볼 영화.


[리뷰] 귀없는 토끼, 웃음 없인 못 볼 신 독일인의 사랑


섹스와 연애감정의 역방향, 이런 사랑도 있나 싶다

난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섹스란 진정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한다. 그리고 이건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 헷갈리는데, 연애를 두고 결혼을 전제하고 말고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하다고도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할때 속박될 필요도, 반면 처음부터 결혼하곤 거리가 멀어라며 선을 그을 필요도 있을까라는 생각. 연애하다 진정 너 없인 못 살겠다 깨닫게 되면 그게 사랑이고 그 최종진화형이 결혼이지. 계산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 여러모로 상반되는데, 재밌는건 그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머리로 생각하며 보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감상했다는 거다. 결국엔 주인공이 섹스파트너가 아닌 안주할 사람을 찾게 되서 그런가?

틸 슈바이거가 맡은 주인공 루도. 카사노바라도 이런 카사노바는 꽤 괜찮잖아 싶은 생각이 드는 남자다. 섹스 중독자가 아닐까 싶을만치 여자를 달고 다니는데, 의외로 이후 안나와의 대화 중에 보면 앞뒤 생각없이 덤벼만 들진 않는 모양이다. 첨부터 여자와는 이 한순간으로 끝임을 합의한다고. 코웃음을 치던 동감을 하던 그는 그 나름 처음부터 여자에게 선택지를 넘기는 배려를 한다. 그러자 이에 안나가 여자는 남자와 달리 섹스 후 생각이 바뀌고 깊이 빠져들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 넌 나쁜 놈이 된다고 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그럼, 난 그냥 나쁜 놈 할래'. 이 말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가능성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연애도 뭣도 아닌 그저 엔조이였다는 것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앞으로도 연애는 안해'라는 것. 마지막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진정 매력적인 이유는 발전가능성에 있다. 그에게 섹스는 사랑도 연애도 뭣도 아니다. 정작 누군가를 원하질 않고 살아간다. 안나가 '여자에겐 이 남자를 내 매력으로 꽉 붙들고 말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그는 그런 욕심을 내 볼만한 남자인 것. 남성적인 매력도 그렇거니와, 여자들과 관계는 많았어도 진실한 연애는 없기에 실상은 백지상태일 것만 같다. 실제로 이 영화는 후반 들어 그가 진정한 사랑을 알아가는 일종의 성장통 스토리로 흐른다.    

루도는 안나에게 말한다. '넌 특별한 사람이야, 누이같은 존재'라고. 즐거움에 살을 섞는 상대는 오히려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중한 사람은 오히려 침대와 거리가 먼 존재로 여긴다. 이건 이 사람만의 연애감정이다. 일이란 일은 질펀하게 벌이고 다니는 이 남자가 이 순간엔 가련한 순정파 주인공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앞뒤 안 맞는 나만의 착각이려나. 


눈물 없이 보고 웃음 없인 못 볼 사랑영화

이 영화를 리뷰하기 참 좋은 이유는, 스토리가 얽히고 섥히는 그런 영화와 달리 스포일러를 크게 염두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길 이어갈 수 있는 점이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들이 잘 됐는지 그렇지 못한지 정도만 밝히지 않으면 어지간한 내용은 꺼내도 되는게 사랑영화지.(다 그런건 아니다. 물론 여기서도 행여나 감상의 감흥을 깰까 상세한 설명은 배제한다)

영화는 1200만 독자를 가진 가십지의 베테랑 기자 루도가 비공식 특종 취재 중 한순간 실수로 '케이크에 박아버리는'(편집장 표현에 따르면) 불상사를 만들고 징역 8개월, 집행유예 사회봉사 300시간의 중징계를 받는 것에서 진행된다. 하필이면 사회봉사 명령이 떨어진 유치원의 선생이 8살때 그에게 많이도 당했던 '안경잡이' 안나다. 



감찰관에 전화 한통이면 제대로 한방 먹일 수 있는 안나. 그러나, 그녀의 복수극은 오래가지 않는다. 원나잇스탠드엔 빠삭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모르는 루도, 패션테러리스트에 사람간 어울림에 서툰 안나. 오히려 이렇듯이 서툰 두 사람은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넘나들다 함께 무언가를 교감한다. 그리고, 여느 영화가 그렇듯 달콤함과 위기가 교차한다. 

서로 좋아하는 상황에 특별히 훼방놓는 적도 없는데 왜 어려움이 닥치는 걸까. 두 사람이 연애감정에 도달하는데 있어 시간차가 있어서?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거기서 표현되는 것에 시간차가 있었고, 서로간의 차이점을 포용할 이해에 아쉬움이 있다. 역시나, 대개의 러브스토리에 있을 법한 말랑말랑한 갈등. 

엇갈림 속에서 남자는 좌절하고 여자는 눈물 흘린다. 하지만 가슴 저밀듯 아픈 눈물을 영화는 관객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곧바로 루도는 어지간한 배짱 아니곤 못할 일들을 벌이며 그녀 마음을 다시 뒤흔든다. 여기서 관객은 애틋함에 앞서 웃음보를 터뜨릴 수 밖에 없다. 눈물이 아니라 유쾌한 웃음보를 자극하는 영화, 귀 없는 토끼다.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들 영화를 동화처럼 채색했다

어렸을때 유선방송에서 뭔가 '예쁜 그림'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시선이 확 꽂힐 때가 있다. 그건 대지위의 풍차처럼 멋진 풍경일 수도 있고 토실한 토끼와 아이들의 어울림일수도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여기서 어른들간의 '징그러운' 모습이 흘러나오고, 당황할 겨를도 없이 엄마가 '이건 어른보는 영화야'라며 방에서 내모는 경험, 있는지.

이 영화가 언젠가 케이블 채널로 나온다면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섹스에 대한 담론이나 순간순간 흘러나오는 성인 유머, 그리고 베드신. 말 그대로 19세 이상의 영화인데, 이 말고도 유치원을 배경으로 흐르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조화가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귀엽고 깜찍하다. 반면 순간순간 어른을 물먹이는 끔찍한 면모도 함께 존재한다. 이런 아이들과 점차 섞여들어가는 루도. 그러나 변하는건 안나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아이들과 더욱 밀착해 들어가는 것. 연애를 거부하고 섹스에만 집착하던 남자와 연애에 어려움을 갖고 방황하던 여자는 유치원이라는 묘한 세계에서 함께 성장해 간다. 이는 연애에 있어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 보는 이들을 더욱 흐뭇하게 만든다.

보는 이에 따라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게 받아들일 대목일 수 있다. 이건 여기서 제대로 설명하지도, 그렇게 해 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오직 영화 감상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니 궁금증 유발하는 이 정도 선에서 이만. 


손꼽아 기다릴만한 멋진 사운드트랙

이 영화는 멋진 음악들이 제대로 분위기를 살려 준다. 의외로 락 음악이 많이 깔려있다. 팝이 가미돼 젊은 대중이 좋아할 법한 노래들. 물론 필요한 매순간 말랑한 발라드도 심금을 울린다.(나더러 글이 옛스럽다는 평을 이제야 이해한다)

안나가 퇴짜맞고 기다림에 지쳐 앉았을 때, 루도가 난생처음 자신의 여인으로 맞고 싶다 생각한 이를 기이한 자리에서 바라만 볼 때, 음악은 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 전한다. 무언의 대사는 이를 두고 말하나 보다. 배급사 측이 보도자료로 제공한 뮤직비디오 한편을 감상하도록 한다. 



 
가장 맘에 들었던 음악은 엔딩에서 나오던 경쾌한 음악이다. 바라마지 않던 엔딩에서 전해주는 감흥은 저들의 것인가, 바라보고 있는 객석의 내 것을 읽어낸 것인가.


"남자는 바보고 여자는 나쁘다?" 적어도 바보같은 남잔 멋져

영화를 보면 이들 남녀, 그리고 다른 친구의 조언 등을 통해 연애학 개론(잠자리 코치 포함)이 이어진다. 이 중 루도와 안나가 데이트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루도는 자신이 독신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며 남녀 관계의 어려움을 되새긴다. 이를 두고 안나는 '남자는 바보고 여자는 나쁘다?'로 요약해 받아들인다. 서로가 연애에 환멸을 느꼈던 남과 여의 입장에서 서로 모르는 것들을 알리고 어느 접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려 하는데 극장에 손잡고 들어온 커플들이라면 여러모로 들어볼 만 하다. 물론, 평생 솔로인 이들도 여러모로 흥미있게 들어볼 만 하다. 

그런데 이후, 루도는 정말로 바보같은 짓을 한다. 진짜 사랑에 빠진 뒤, 그것을 여자에게 알리기 위해 벌이는 일들은 낭만적인 바보의 모험기와도 같다.

그는 안나의 마음을 돌리고자 평소땐 하지 않았을 일을 벌인다. 쾌락 속에서 음어만 되뇌었을 그가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것을 몸으로 확인시키는 그동안 '귀없는토끼'는 그녀와 그의 손을 전전하며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을 한다. 

한발먼저 가슴앓이에 든 안나는 어느 스타와 커플을 이룬다. 이를 일터에서 바라보던 루도, 가슴아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정신나간 짓을 한다. 자기네 신문의 1면을 그녀의 것으로 만든 것. 편집장이 가만 있을리 만무하지. 사랑에 빠진 정신나간 기자가 할 수 있는 천하의 바보짓이자 더할 나위없이 강력한 어필법. 내가 생각하는 한, 이 세상 기자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보다 무모한 짓은 몇가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로맨틱하다.



곰 분장을 그리도 싫어하더니, 나중에 하이라이트 장면에선 완벽한 반전을 꾀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에 있어 그것이 그에게 얼마만큼의 진심어린 표현으로 다가올 것인지, 그리고 그 때 여러분이 얼마만큼의 응원을 보낼 것인지는 여러분 각자가 조금씩 다르게 얻을 재미의 정도다.

확실한 것은, 사랑에 빠지면 남자는 정말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때론 바보짓이 멋있어 보일 수 있음을 루도는 제대로 보여준다. 가슴설렐 이야기다.


귀없는 토끼... 왜?

제목이 귀없는 토끼. 왜?

시사 전날, 갑자기 초대 전화를 받았을 때, 난 제목을 듣고선 순간 한국영화인가 했다. '오렌지 아니죠, 어린쥐 맞습니다' 하는 세상, 워낙에 영어 원문 그대로 제목을 옮겨오는 세상이라. 고딩 때 국어 교과서 보면 '더 더드 맨'은 재미없고 '제 3의 사나이'는 멋진 창작 제목이라던 글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원작자가 굉장히 반길 제목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귀없는 토끼. 그럭저럭 제 딴엔 잘 만들었으면서 한편으론 미완의 서투른 작품이 그들의 순탄치 않은 사랑전선을 타고 오간다. 토끼는 이들이 서로간에 전달하고 간수하고 예쁘게 되돌려주려 하는 마음을 형상화한 것인데, 이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다.

어쩜 이들에 있어서, 이 토끼는 섹스의 쾌감보다 더 강한 감흥을 가진 마음의 교감일지 모르겠다.



난 사실 멜로? 러브코미디? 연애영화? 사랑영화? 조금씩 어감이 다른 이같은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내공에 있어선 리뷰할 자질에 심각한 핸디캡이 있다. 러브스토리도 못 봤다. 그래도... 보자. 뭘 봤더라?

시티오브엔젤, 2042(이건 연애영화라기엔 좀 그런가), 그린카드... 이 정도. 그나마도 내용 살펴보면 천사의 판타지, 현실과 허구의 드나듬,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 등 다른 소재가 중심이었지 '연애학 개론' 같은 부제를 달기엔 모호했다. 진짜 본 게 없구나.

그러나 내게 있어 사실상의 최초 본격 연애영화였던 이 작품, 난 대단히 흥미있게 지켜봤다. 처음엔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인지 휴먼드라마인지 뭔지도 모르고서 그냥 흡입력에 빠져들었고 이후엔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굴러가는 사람들의 감정선이 인상깊었다.

마지막으로 틸 슈바이거 이야길 안 할 수 없는데,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봤던 그 매력남은 한층 나이가 들었음에도 멋진 청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사회반항적이던 마스크는 여기서 아주 달콤한 슈거보이로 탈바꿈했다. 알고보니 감독까지 맡았다. 노킹 온 헤븐스도어로 독일영화에 호감을 느꼈던 나였고, 이 영화로 또한번 독일 영화를 의식하게 된 나다. 재밌는건 이 독일 영화가 한국인의 감성과 희한하게도 잘 맞는다는 점이다. 남녀관계에 보수적 사고를 가진 전형적 남성임에도 별 위화감 없이 동감하며 볼 수 있었던건 결국 인물의 면모를 떠나 사람을 대하고 바라보는 진실한 마음에의 접근방식이 탈국가적인 동류라선가. 아, 안나 역의 노라 치르너 이야기도 잠깐 하자면, 그녀의 변신을 지켜보는 것 또한 매우 즐겁다. 루도가 대서특필한 '아줌마 패션'에서 별 변화를 보이지 않음에도 시간이 갈 수록 아름다워짐을 느낀다. 안경을 벗어도, 그냥 쓰고 있어도 매력적으로 변해 있다. 글쎄, 원수에서 내 남자로 바뀐 대상 때문에? 여하튼 부드러워진 눈매와 표정만으로도 멋진 변신을 할 줄 아는 배우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