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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내가 본 문국현, 한번 더 티타임 갖고 싶었는데

내가 본 문국현, 다시 한번 티타임 함께 하고 싶었는데


문국현 대표의 의원직이 끝내 날아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결국 그렇게 됐나' 했다. 그 다음 것은 '이제 다시 보긴 어려우려나' 하는 한마디 중얼거림.

그와는 차 한잔 더 같이 하고 싶었다는 소회다.


지난 3월 국회에서 그와 기자 몇명이서 나눴던 티타임 중.


내가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하고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눴던 유일한 이 나라 대선 후보.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이즈음의 1심 2차 공판이었다. (12시간40분 방청기 http://kwon.newsboy.kr/994)

정확히 말하자면 그 땐 만났다기 보다 멀리서 바라봤다는 표현이 맞겠다. 당시 생각지도 않게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재판을 참관했고 그 소감은 당시 기사에 고스란히 모아 담았다. 여기저기 퍼져 나갔던 글이 여러 블로그, 커뮤니티게시판 각지에서 반향을 일으키던 거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다만 당시는 블로그나 뉴스보이 공식홈피를 다이렉트로 거쳐가지 않았던 기억이다.

이후에 만났던 창조한국당 관계자는 '기자님이야 그 때 한번 히트치셔서...'라고 웃더라. 그 글이 상당히 인상깊었나 보다. 그리고 두 달여 후. 여차저차 해서 나는 연말에 문 대표가 인터넷 기자들을 부르는 간담회 자리에 초대받게 됐다. 중국집에서 있었던, 조촐한 저녁식사 초대를 겸했던 자리다. ('나는 돈키호테다' http://kwon.newsboy.kr/1033)     
 
초행길에 낯설기만 한 그 자리에서 난 30분 지각하는 실례를 범했다. 황송하게도 그는 내게 걸어와 악수를 청해왔고 난... 그 때 뭐라고 했더라. 주섬주섬 기억을 더듬어보니, (만나뵙게 되어)'영광입니다' 라고 인사했던 것 깉다. 문 대표는 호쾌히 웃으며 '저야말로'라고 답했던 기억이 이어진다.

그 말고도 대단히 인상깊었던 것이 둘인데, 하나는 그 집 자장면이 맛있었다는 거고, 또 하나는 거기서 그가 기자들 앞에 내보이던 자신과 창조한국당의 '정의'였다.

내가 보기에 그는 화술이 뛰어난 사람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힘을 싣는 웅변이나 '말 정말 잘한다'는 평을 듣는 김종필 전 총리의 달변과는 거리가 있는, 덤덤한 이야기 진행. 노무현 전대통령의 방법과도 약간 다르다. 화술의 다소 느슨한 템포에 비해 흠입력은 높았다. 

거기서 그가 제시한 당의 이미지, 자신의 이미지는 그간 그가 사람들에 내보인 정석적이고 깨끗한 그것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자신은 돈키호테라 칭했고, 창조한국당에 대해선 초당적, 탈지역적 존재라 주장했다. 당의 힘이 약한 것은 해묵은 정치 과제인 '디딜 언덕 = 지역 기반'에서 자유로워서며, 그럼에도 약하나마 이렇듯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가진 정책의 순수한 힘이라 말했다. 사실 이것은 그간 정직하고 제대로 된 정치판의 제3세력을 바라마지 않던 이들에겐 즉효할 말이었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당신들의 정치적 포지션은 어디냐고.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면 어디냐고. 어딘가 확실히 짚어줘야 힘을 얻지 않겠느냐 물었다. 그러나 문 대표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가 어딨느냐'고.

"꼭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을 진보라고도 주장하지 않았다. 하물며 좌우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답변은 명료했다. "우리가 옳다 믿으면 그 길을 가는 거다"였다. 굳이 말을 해야한다면 우린 이름 그대로 '뭔가를 창조하는 세력'이라 정의했다. 

흥미로웠다. 내가 그간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며, 내가 보고 싶었던 새로운 세력의 확인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그게 여기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해가 바뀌어, 3월에 세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두어달에 걸쳐 연속으로 이어진 만남. 이번 초청장의 타이틀은 '간담회'가 아닌 티타임이었다. (http://kwon.newsboy.kr/1123http://kwon.newsboy.kr/1124http://kwon.newsboy.kr/1125)

또 20분 가량 지각하고 말았다. 국회 본청이 정문에서 그리 먼지도 몰랐고, 통과할 때 걸리는 시간도 제대로 재지 못했다. 아마 그가 날 기억한다면, 나는 필시 맨날 지각하는 코리언타임의 놈일 터. 

호르륵하고 차 마시는 소리를 죽이는 동안 그는 여러 이야기를 꺼내 보였다. 하나는 당시 최대쟁점이던 국회 파행의 중재. 당시 그는 한나라당을 일방적으로 지적하지도, 그렇다고 민주당이나 타 야권을 집어 말하지도 않았다. 그가 자중해야 한다고 밝힌 대상은 양 측 모두에 존재하는 강경파. 온건히 말로 풀어도 상당부분은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는 그였다. 어느 한 쪽을 향한 밀어주기가 아니라, 대화 여지를 남겨두는 이들을 주력으로 '융합'을 말하는 그였다. 

하지만 정작 흥미로운 내용은 그 다음부터다. '정치신인의 정치실험'이란 말을 듣는 그였지만 뜻밖에도 그는 중견정치인이 꺼내보일법한 정치학개론을 시작했다. '법안을 많이 내놓는다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너무 많은 법안을 꺼내 통과시키는데만 급급한 지경'이라며 국회는 양이 아닌 질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소신을 꺼내보인다. 가시화된 결과물에 연연하는 판을 바꾸는 것이 국회 개혁의 본질이며 지금 중요한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각 안건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여유라고 말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선 이명박 대통령과 정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똑같이 경영인 출신이지만 이 대통령이 비즈니스프렌들리를 기치로 '기업'에다 발언비중 및 우선순위를 둔다면 그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악센트를 찍는다. '근로시간을 지금보다 단축하고 퇴근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지금 세계 자유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동자들도 단순 노동을 떠나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혹한 근무시간으로 생산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삶의 질을 위해 가족과 함께 지낼 여가시간까지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잘 사는 나라, 국민의행복과 삶의 질을 높여가는 나라는 막연히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동자 본인들부터 삶의 질을 높여가는 나라, 스스로 공부하며 경쟁력을 높여갈 나라라고 주장했다. 

"한국 사람들은 연간 2500시간을 일한다고 하죠. 선진국 수준에 맞추려면 2000시간으로 낮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자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기자분들은 3500시간 일한다는데 이건 과로사하려고 작정한 걸로 보이네요."

실소가 흐르는 가운데, 이어지는 말.

"여러분은 한 2500시간 정도로 낮추고... 이 대통령은 한 3000시간. 대통령이니깐."

폭소가 터진다. 가만 보니 지루해질 때즈음 개그를 섞어 풀어내는 재치가 꼭 딱 한 번 봤던 힐튼 호텔에서의 노무현 전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굳이 그의 말솜씨를 누군가 비교한다면 노 전대통령과 흡사했던 기억이다. (하긴, 더 비교해보려 해도 내가 직접 본 정치 지도자는 이 둘 밖에 없구나)


그가 2만원짜리 비취색 타이를 매고 말하는 동안, 난 7천원짜리 붉은 타이를 매고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래도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을 꼽으라면 이거다. 넥타이 개론. 문 대표는 한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대운하를 위시해 현정부가 고수하는 건설경제, 육체경제가 아니라 지식경제, 프리미엄 극대화로 이어지는 '영혼의 경제'가 답이라 했다. 

"제가 이래뵈도 멋쟁이라서요. 지금 제가 매고 있는 넥타이가 2만원 짜립니다. 이탈리아에선 2, 3만원에 팔아요. 디자인도 경쟁력이고 지식 아이템이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장당 2천원, 3천원에 팝니다. 똑같이 염색하고 수질을 오염시키건만 왜 누구는 열배의 가치를 누리고 누구는 열개를 팔아야 타산이 맞아야 합니까."

같은 넥타이지만 저들은 프리미엄을 갖는 지식경제, 우린 아직 육체경제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야깃거리를 사물에서 끌어와 쉽게 설명하고 풀어낼 줄 아는 통찰력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좀 더 정치판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가 산소부족, 회전력 부재 상태처럼만 보여지는 이 나라의 정치 두뇌 안에서 과연 산소를 불어넣는 에어서플라이가 되어 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었던 것. 그리고 차 한잔 함께 할 기회가 또한번 정도 주어진다면, 그 땐 또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대법원 판결 확정이란 것은, 보통의 방법으론 되돌릴 수가 없는 종언처럼 들려온다. 그런데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꼭 그렇지 않을 것도 같은 기묘한 기분이랄까. 어째선지 그에겐 이 상황에서도 뭔가 예상을 뒤엎고 탁 내놓을 것만 뭔가가 있을 것만 같으니.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