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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신영복 김제동에 답을 주다 "우리 걸어온 뒤가 곧 길이요 숲이다"

신영복 "우리가 걸어온 뒤가 곧 길, 나무의 최종형은 숲이다"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회


# 이 글에서 인용된 화자의 말 중 일부 단어는 기자의 기억이 표현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있어 실제 사용된 단어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단, 다르다 해도 실제 것의 흐름에서 일탈할 수준의 오류는 아니며, 본질을 변질하는 일은 없음을 자신합니다.





23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김제동 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날 강연의 제목은 '김제동 신영복 교수에게 길을 묻다'다. 그는 이것을 "사회자 김제동이 신영복 교수에게 길을 묻다"로 풀어쓰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 했다.

그간 마음고생 심했을 그가 사회자로 나선 행사.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어두운 기색은 걷고 웃는 분위기로 객석과 무대의 공명을 돕는다. 사람을 웃기는 순발력과 재치는 여전하다.

다만, 웃는 가운데서도 이 부분에선 잠시 침묵이 흐른다.



가장 어린 방청객에 선물을 나눠주던 그, 그가 건넨 메시지의 무게는 웃음 속에 흘리기엔 무겁기만 하다.

강연에 앞서 더 숲 트리오의 공연이 이어진다. '교수님 뒤를 따르는 별책부록 듣보잡, 패키지 상품'이라 자기소개를 하는 그들의 노래를 잠깐 담아봤다.




신영복 교수의 1시간짜리 강연은 제목 그대로, 제자 김제동의 질문에 스승 신영복이 답하는 내용. 정작 그는 오늘까지도 '길을 찾다'라는 주제를 몰랐다고 밝혔다.

그의 강연은 일종의 회고록과도 같았다. 상당 비중이 그가 수감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이 만나게 된 인연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여러 이야기를 풀었다. 이 중엔 사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에 대한 내용이 있어 주목받았다.

"이름이 대의(大義)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헌데 서른하나에 절도전과가 벌써 세갭니다. 내 그에게 누가 지어준 이름이냐고 물었더니 불쾌해 하는 겁니다. 네가 이름값 못하니 불쾌해 하는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헌데 그는 내가 예상했던 '이름 지어준 아버지'가 없습니다. 고아예요. 광주 '대의'동 파출소에 버려졌던 아이입니다."

그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문자로 사람을 보려 한 것이었다"고 자신의 과오를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를 두고 "창백한 먹물의 편협한 관념성"이라 표현했다.

앞서 이와 연계해 똘레랑스(배려)에 대한 소견도 내놓는다. 똘레랑스가 항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내용. 이는 우사인볼트와 자크로게의 이야기.

"우사인볼트의 세레머니에 프랑스사람답게 자크로게가 타 선수들에 모멸감을 줬다고 비난했죠. 그래서 그 장면을 제가 여러본 반복해 살펴 보니까... 모멸감 받을 선수가 어디에도 없더라. 모멸감 받은 건 자크 로게 하나였죠."



언제나 그랬듯 지금, 현 사회에서 아쉬운 정신을 말하기도 한다. "다산은 과연 그 시절에 스승이었을까. 스승이 아니라 배제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세상에서 이거 아니다 싶은 것은 말해주고 지적해 주는것이 스승이거늘, 사회는 그런 이를 받아주지 못한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스승에 대해서도 그는 무작정 '알려주는 이'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밝힌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게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함께 논의해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답이라고. 스승에게 답을 묻지 말라는 그의 말이다.

이번 강연의 주제이자 최종 코스인 '길'에 닿았다. 그는, 아주 간단명료하게 답을 꺼낸다. 첫번째는 '뒤'다.

"너와 내가 함께 지나온 그 '뒤'가 곧 길이다..."

또 하나, 그것은 '숲'.

"나무의 마지막 발전 형태는 '숲'입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고. 길은, 숲입니다."



마지막에 사회자, 강연자, 축하공연자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서 김제동 씨는 은사에게 짖궂은 질문을 추가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묘비석에 글을 남기셨는데, 본인의 묘비석엔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냐"였다. "너무 이르다"고 말해 객석을 뒤집어 버린 신 교수는 이렇게 밝힌다.

 


여기서 끝은 아니다. 깜짝 게스트가 출연하기도. 배우 문소리 씨의 등장이다. 그녀는 노교수에게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데 다산 정책이 과연 좋은 것인지, 나는 어떻게 할지 조언을 달라"고 부탁했다가 김제동 씨가 "다음번엔 남편분 모시고 와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자"라고 해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강연회 일정이 종료. 그러나 신영복 교수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인을 받겠다고 관객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것. 그는 이후 한시간가량 사인회를 이어가야 했다.


김제동 씨도 그냥 놔 줄리 없다. 선물 세례에 이어, 사인 요청. 한 사람이 외쳤다.

"오마이텐트 대박나세요!"



뒷풀이 자리에서도, 김제동 씨는 연거푸 촬영에 응해야 했다. 하지만 엉덩이를 아무리 들었다 놨다 해도 표정은 밝기 그지 없다. 신영복 교수 역시 인기몰이, 함께 한 일행은 물론 그를 알아보는 옆좌석 사람들의 호응에 응한 후문을 전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