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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극 배우에게 "왜 연극하느냐" 물어봤더니...

부산 연극 배우에게 "왜 연극하느냐" 물어봤더니...
[인터뷰] 1인9역 모노드라마 '어머니 날 낳으시고'의 배우 변현주


어폐가 있으려나? 국내 연극의 시류를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고 표현하는 거. 고전을 비롯 외국작을 상위개념으로, 또 서울을 지방의 상위개념으로 두는 것 말이다.

해외라이센스작의 강세는 뮤지컬을 위시한 연극판에서 '현재'라는 말보단 '언제나 그랬듯'의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수도권 지역의 대극장을 장악하는 해외 대작들.

그럼 이번엔 국내창작극에 국한해 보자. 국내작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서울에서 먼저 뜬 작품이 지역 순회공연길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법칙처럼 여겨지는 현실. 지역무대는 저 먼 길 거쳐온 라이센스와 타지 창작극을 받는 유입장소일뿐, 사출하는 통로가 되진 못했다.

그럼 과연 이를 거스르는 '역류'는 불가능한 걸까. 실은 지금 대학로에서 그 어려울 것 같던 시도가 진행 중에 있다. 부산의 한 동인극단이 서울 나들이에 나선 것. 

현재 소극장축제에서 한창 상연 중인 극단 새벽의 '변현주 1인극 -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지역에서 서울로 거슬러 오른 연어와도 같다. 95년 초연 이래 부산 고장에서 오랜 기간 숨쉬던 작품이 대학로 한 가운데서 사투리 섞인 숨을 토해내고 있다.

그 별난 작품의 주인공인 배우 변현주 씨를 만나 봤다.


21일 밤. 서울 대학로 소극장축제에서 만난 연극배우 변현주는 부산과 서울을 매주마다 루프하고 있었다. 무대에만 전념할 수가 없는 이유는 고교 연극 수업때문이라고. 스케줄 문제로 인터뷰를 간소화할까 했는데... 그게 그렇게 되질 않는다. 어려운 연극계, 그것도 지역무대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15년차 됐어요."

극단새벽에서 스탭, 배우로 활동하며 연극인으로 활동한지도 벌써 15년. 경성대 영문과 졸업, 고려대학원 영문과 수료. 뜻밖에도 연극영화 전공은 아니다. 대신 영문과 안에서 원어연극으로 드라마를 전공했다고.

"우리나라에선 서울대 나와 성우하고, 연세대 나와 영화하고, 고려대 나와 연극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경향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선 그런게 있죠."

그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성대 후배들이 "선배 미쳤냐"고 물어오곤 한다고 밝혔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지라, 가르쳤던 교수들도 4,5년차까진 줄곧 학업을 권했다고.

"교수될 줄 알았대요. 교수님은 언제까지 현장에서 뛸거냐고 물었고. 하지만 대학 진학때부터 목표가 확실한 터라 흔들림이 없었어요. 얼마전 당시 그 교수님이 제 공연에 찾아와 보시곤 그제사 대견하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부산 쪽 동향을 슬쩍 물었다. "어렵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가을부터는 IMF보다 더한 칼바람이었다고. 영화 쪽이 좋아지니 연극은 도리어 더 죽었다고. 노무현 서거 등의 사건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을 볼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고 술회한다.

"공연은 많아졌죠. 헌데 서울에서 많이 내려와 그래요. 작년초엔 부산 소극장이 12개였다가 현재는 30개로 늘었는데, 이건 서울 기획사 측의 창단 때문이죠. 대관료 문제 때문에 아예 극장을 만드는거예요. 스타 출연, 혹은 100만관객 돌파와 같은 타이틀이 그나마 관객을 솔깃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없는 지역연극은 위기죠."

그래도 지역 무대에선 부산 연극을 알아주지 않느냐 물었다. 지난번 찾아간 극단 인아의 뉴 연애특강 무대에서 김선정 대표가 밝혔던 이야기였다. 그녀의 대답은 이거다.

"하지만 인프라가 없으니까."

골수팬, 매니아층은 있다고 했다. 허나 대중화 문제에서 가로막힌다. 서울로 올라온 이유 역시 인프라. 그래도 국내의 60퍼센트가 운집한 곳이 서울이라고.

"솔직히 우리들 기획 측도 반성 많이 해야 해요. 초등학생들 단체 관람객 받아서는 보여주는 연극이 '고도를 기다리며'라고 한다면, 과연 이 애들이 이걸 이해하고 미래 관객이 될 수 있나요? 절대 안 돼죠. 지금 상황이 그래요."




옆에서 유미희 극단새벽 기획자가 말한다. "그래도 이번 서울 공연서 관객들 리뷰를 보면 '매번 카페인에 탄산음료만 맛보다 간만에 정제수를 마신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부산 연극의 특장점은 무얼까. 변현주 씨는 "내공"이라고 말한다. "거칠지만 힘이 있다"고. 부산 연극을 들고 서울로 거슬러 올라오게 된 자신감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하나 더. 최근 부산에서 일고 있는 소극장운동협의회의 첫 시도. 브로드웨이의 성공신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으로, 부산 소극장끼리 커뮤니티를 연동해 지역 연극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이번 작품이 서울 대학로에 올라온 것은 그 일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후속작을 위해서라도 성과가 있어야 할텐데요."

"부산에 비해서... 그래도 조금은 관객이 더 차는 편이죠. 오래했던 부산쪽이 입소문 효과에선 강점이 있지만 반면 서울쪽은 단체관객 등 동원에 관한 기획력에서 앞서더군요." 

이래뵈도 극단새벽은 부산에서 뿌리가 굵은 창작실험집단이다. 84년 창단한, 지금은 몇 안되는 동인지 개념의 낭만파 극단. 당시 불었던 창작극운동에선 부산의 효시로 꼽힌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정신이 형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95년 초연했죠. 당시엔 제가 아니라 윤명숙 선배가 했어요. 저는 2기죠."      

그녀 프로필을 보면 "윤명숙 선배에게 연기를 배우고..."라고 나온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연결고리와도 같다.


원래 이 작품의 주인인 윤명숙 배우의 당시 홍보 포스터


"그 분은?"

"세상을 떠났어요. 3년전 암으로."

마흔셋에 요절한 그녀의 작품에 비하면 내 것은 아직 감히 갖다댈 엄두도 못 낸다고. 에너지 넘치던 선배였다고 밝힌다. 아무래도 그 때 스탭으로 참여해 봐 왔던 오리지널리티의 습작이 지금 작품의 미친 영향을 무시 할 수 없다고 한다.

"서울 와 보니 어떤가"하고 물었다. "지역마다 관객 특성이 저마다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작품의 경우 배경은 서울이지만 캐릭터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부산사람. 부산에선 별 문제가 없지만 서울에선 뭔가 상황이 다를 수 밖에.
"서울의 젊은 관객들에겐 1인9역 작품이란 점이 부산 이상으로 잘 먹히는 거 같아요. 캐릭터가 체인지될 때마다 느끼는 그 생동감이 신선한가 봐요. 다만, 사투리에 있어선 뭔가 공중에 붕 뜬달까. 그렇다고 해서 표준어 대사로 다 바꿔버리면 맛이 없어지고."

관객 리뷰 중에 "75분이라 짧은 느낌"이란 평이 있었다. 이에 대해 묻자 "몰입도 때문"이라고. 소극장 안의 1인모노드라마가 갖는 적절한 몰입도의 최적 시간이 80분이란 것.

"1인극이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클 거 같다"는 말엔 "외줄타기와도 같아서..."라고 동조한다. 실수를 해도 이를 커버해 받아줄 상대가 없다는 게 어렵다고.

"초연엔 정말 부담됐어요. 사람들이 흔히 하다보면 익숙해진다는데 전 차츰 더 부담스러워지더군요. 하지만 1인 모노드라마는 누구나 배우라면 하고 싶어하는 매력적 극이예요. 전 30대때 하고 있으니 아주 이른 편이죠. 근데, 너무 늦게 해도 문젤거 같아요."

"스테미너 문제..." (유미희 기획자)

"맞아요. (웃음) 지칠 거 같애. 특히나 하루 2회 공연(토요일 2번 공연한다)은 힘이 들어요."

작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극적인 것보단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변 씨는 이 작품에서도 디테일한 처리에 중점을 뒀다고 밝힌다. "연극을 보기 전 미리 어떤 점에 중점을 둔다면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겠는가"하고 팁을 부탁하자 그녀는 "재미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짓거리' 자체일수도,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수도 있죠. 우선, 아까 밝혔듯이 젊은이들은 캐릭터의 전환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들은 배역 중 씩씩한 정란이를 좋아하더군요. 반면 중년 이상 층은 거부감이 있어요. 약장수라던가 하는, 당시 시대의 추억에 도리어 호감을 보이죠."

그리고 연령을 떠나 공통된 축은 '어머니'라고 했다. 모녀의 연계가 역시 작품의 중심이다.

"작품은 영란, 정란, 엄마의 중심축에서 자기 삶을 반추하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어머니도 여자였다는걸 보여주는 시간이죠."

여자 관객들에 있어, 자신들 여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 그래서 '어머니 날 낳으시고'가 제목이다.

"그럼 여자 관객들을 위한 작품이고, 남자 관객들 입장에선 그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요?"

"여성들 입장에서 좀 더 몰입할 수 있는건 맞아요. 그리고 남성들 입장에선 뭔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요소가 있죠. 여성이 술장사를 하는 설정에 있어 행패를 부리는, 나쁜 역의 남자들이 등장하는데 이걸 보면 같은 남자로서 '꼭 내 흉을 보는 거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그러나 어머니라는 중심축은 남녀 모두 공통의 것이니까, 꼭 여성을 위한 작품이라고만 볼 수는 없어요."

작품은 이란성 쌍둥이 영란과 정란이 어머니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여성지 기자의 인터뷰가 덧붙여지고, (여성지 기자 역은 뜻밖에도 그녀 몫이 아닌, 의외의 인물 몫이다) 그렇게 지난 한국 현대사의 가부장적 제도에서 어머니란 이름으로 억눌렸던 여자를 말한다. 작품은 지난 8일 대학로 소극장축제에서 첫 막을 올렸고 내달 1일 마지막 막을 올린다. 매주 목~일요일이 상연날이다.



인터뷰의 최종코너로 넘어온 시간이다. 연극의 고행길에 대한 이야기.
 
"만일 아는 사람이 연극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거예요?"

"이렇게 말릴거예요."

"결국 말리는군요."

"머리깎고 절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라. 남들 갖춘만큼 갖추고 살 생각이면 처음부터 아서라고요. 일하다 집 마련하고, 차 사고, 그렇게 남들만큼은 살아야지란 생각 할거면 포기하라고 말이죠. 연극인은 소비형태부터 달라야 하거든요. 얼마전 강신일 씨가 TV에서 그러더군요. 연극할때, 호주머니다가 패스(교통카드) 하나만 달랑 넣고 외출했다고요. 아내는 그것이 떳떳해보이고 부끄러울게 없어 보였다고 했어요. 그런데 강 씨는 어느날부터 주위에 홀로 남겨졌음을 느꼈다고 했어요. 아이들 문제도 있고. 결국은 그 때문에 영화를 하게 된거죠. 결국엔 다시 연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던데, 연극인은 정말 그래야 해요. 무작정 하지 말라 말리는건 아니고, 그런 각오가 필요함을 모른다면 알려준다는거죠."

그러나 본인은 자신의 선택에 있어 후회가 없었고 지금도 미련 없다고 말한다. 어렵다고만 하는 연극판, 거기서도 특히 어렵다는 지역 무대에서 연극무대만 십수년 파내는 이유를 물었다. 

"꼭 부산에서만 활동범위를 한정하겠다는 생각은 아닌데요."

"그럼 질문을 바꿔야 겠군요. 왜 연극을 하시죠?"

"사실 매일매일 보람 얻을수는 없어요. 정말이지 어려울 땐 대한민국을 뜨고 싶어요."

"연극판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가령 무대 나갔는데 관객이 10명 정도 앉아있을 때요. 그럴땐 영화나, 차라리 사회운동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영화는 한번 대박나면 몇백만명인데란 막연한 한숨이요."

그런데도 연극판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그녀는 담배를 물더니 이렇게 말을 잇는다.

"전 스물여덟 때 깨달았어요. 영화보다 연극이 감동의 현장성에 있어 더 뛰어나다는 점을요. 10명의 관객을 앞에 두던, 500만 관객을 앞에 두는 영화던 간에 그건 변함없어요. 그리고 또. 이런 일이 종종 있어요. 관객 중엔 종연 후에 다가와 '고맙다'는 한마디와 함께 손을 꼬옥 잡아주고 나가는 분이 있죠. 그런 사람이 정말 있어요. 또 하나는 함께 하는 사람들. 이들은 책임감이자 버팀목의 대상이죠. 그리고..."

그녀는 웃는다.

"결국 세월 지나니 할 것은 이것밖에 없더라고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