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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 귀성버스서 롯데-두산 중계, 난감한 상황

서울-부산 귀성버스서 롯데-두산 중계, 난감한 상황



추석 귀성길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서 부산 가는 고속버스가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출발, 본궤도에 오르던 때, 차내에 비치된 TV가 켜졌다. 민속씨름이 중계되고 있었지만, 앞 좌석에 앉은 한 남자가 기사아저씨에게 요청하는 것이었다.


“야구 좀 보면 안될까요?”


그러고보니 마침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펼쳐지고 있었지.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 가만?


공교롭게도 양팀 연고지가 서울과 부산이다?

생각이 여기에 닿자, 갑자기 여기가 어디 소굴인가(?) 하는 대단히 중요한 자문을 하게 됐다. 아울러, 섣불리 한 팀을 응원하지 않고 기다린 것에 안도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 곳에서 사방의 내 주위를 둘러봤다. 앞뒤좌우 사람들을 보아하니, 대개가 야구중계를 주시하는 걸로 봐서 일단 야구에 관심들은 있어 보인다. 다만, 어느 팀의 홈그라운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디 보자. 몇가지 추리를 해 본다. 우선 여기 사람들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귀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대개는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사는 곳은 서울.


...그렇게 생각해 볼 것도 아니군. 역귀성하는 사람도 있다잖아.


일단 그건 제쳐두고. 사람들은 꼭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팀을 응원할까? 울 아버진 서울 사람이지만 한 30년 부산서 지내다보니 이젠 ob(두산)가 아닌 롯데를 응원한다.


이게 대체 뭐 중대한 상황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포츠를, 특히나 프로야구를 단체별로 관람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적의 소굴 앞에서 헤벌쭉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곤란해진다.


게다가 난 너무나 잘 알지. 롯데 경기는 특히나 신중해야 함을. (훗) 부산서 롯데가 질 때 해태나 쌍방울을 응원해 본 적 있어요? 없으면 말을 말아요.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고. 두산? 뭐... LG전 같은 라이벌 전보단 낫겠지만 그래도.


그냥 원하는대로 살라고? 하핫, 니가 함 빅뱅 콘서트장에 동방신기 티셔츠를 입혀서 떨궈뜨려 한가운데에 팍 박아놔 봐야, 하아아아아~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하지. (빅뱅, 동방신기 건은 박성호 씨 개그멘트를 빌려왔습니다)


상황을 보자. 경기는 마침 5회였다. 그리고... 스코어는 무려 10대1. 사직구장에서 원정팀 두산의 확실한 리드였다. 야도 부산의 팬들은 홈팀의 열세에 그들답지 않게 조용히 응원하는 듯 보였다. (실은 볼륨 문제로 잘 안 들렸지만)

하지만, 그보다도 더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이 바로 버스 안. 뭔가 반응이 나오면 금새 의문이 풀리겠지만 이래서는 섣불리 판단할 길이 없다. 


일단 여기가 롯데 홈그라운드라 가정해 보자. 지고 있기에 침울해서 사람들이 쥐죽은듯 조용하다면, 그건 그럭저럭 괜찮은 추측이다. 하지만, 역시나 침묵 모드만으로 판단하기엔 어렵다.


차라리 롯데가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었다면! 그럼 판단이 훨 수월했을지 모른다. 그냥 조용히 응원할 야도 팬들이 아니걸랑.


그럼, 두산 홈그라운드라는 시나리오는?

우리는 여기서 이 경기가 두산-LG 전이 아니라는 것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차라리 이들의 라이벌전이었다면! 허나 그게 아닌만큼 희노애락을 캐치하기가 한결 더 어려워졌다.


이들이 두산 팬이라면 크게 이기건만 왜 좋아하는 기색을 찾기 어려운걸까.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순간순간, 실례가 되지 않게 흘끗흘끗 바라봤지만 웃음을 머금는다던지 흐뭇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역시 롯데? 아니야. 굳어있는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확신할 성질의 그것도 아니야.


아아, 또 난타. 점수는 12대1까지 벌어진다. 그러나 점수가 날 때조차 조용하다. 그리고, 침묵. 롯데 박기혁이 홀로 연타석 안타를 날려도, 곧바로 병살이 나와 두산 측이 웃어도 버스안 표정은 뚱하기만 하다.


숨막히는 상황.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갑갑하다. 차라리 씨름 틀어놨으면 맘이나 편하제.


마지막 9회말, 가르시아의 홈런포가 터지면서 12대3으로 롯데가 2점 추격할 때, 그제서야 일말의 것이나마 해소됐다. 적어도 내 옆의 아저씨와, 옆좌석의 두 아들만큼은 이를 두고서 반색했던 것. 경기 뒤집기엔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워한다. 그렇구나. 옆의 이웃들은 롯데 팬들이었구나. 그럼 처음에 야구 틀어달라던 쪽이나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다. 야구 틀어달라고 했으면 반응 좀 하란 말이다!


경기는 다음 타석서 그대로 종료, 그 때도 무덤덤하긴 매한가지. 이겨서 무덤한 건지 져서 마음을 비운 건지. 결국 그렇게 어느 소굴인지도 모를 곳에서 혼자 맘 고생만 했다. 야구 경기 보기 참 어렵다.

많은 사람들과 야구 볼 때면 여느때보다도 필수인 분위기 파악. 가만있자. 그러고보니, 혹시 댁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하며 가슴졸이고 있었던 거임?


추신 - 재밌는 것은 중계 후 동안 선발대회나 기타 예능프로가 나왔을 땐 다들 즐거워하더라는 거. 아무래도 좋았던거냐.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