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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단추 삐걱, 경우의수...' 청소년축구 반복 레퍼토리, 새 결말 쓸 때

'첫단추삐걱, 경우의 수...' 청소년축구 반복 레퍼토리, 새 결말 쓸 때


속편이 계속 나오는 시리즈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전편과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 행여나 전편이 지루하고 답답한 전개에 이어 암울한 엔딩을 맞았었다면, 이번만큼은 반드시 시원한 전개와 해피엔딩을 원하는 법이다. 

내겐 '드디어 이젠 바뀔 때가 되지 않을까' 하며 신편이 나올 때마다 희망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한국 청소년축구의 세계무대다. 2년마다 찾아오는 것이 꼭 해리포터 같다. (?)  
그러나 밤 새며 관람한 전개- 위기 단락은... 이번에도 무한반복되던 레퍼토리의 답습이었다.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는 2002년 월드컵에 앞서, 83년 청소년축구가 먼저였다. 박종환의 개떼... 엄훠나 실수. 토탈 축구는 숨겨진 공격수 1인의 출몰(그 선수 체력은 위닝 스탯으로 99였나보다), 투지와 박력 넘치는 게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난 기억이 없으니 확정형으로 쓰면 거짓이잖어)

26년 전 청소년축구팀은 그 강인한 인상으로 '레드 퓨리어스'(붉은 악령)란 별명을 얻었는데, 이것이 레드 데블스, 붉은 악마의 전설로 전해졌다. 사람마다 회자하는 한국 축구의 제 1 전성기는 다를 것이다. 앞서 킹스컵 우승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 악마의 출발점인 그 때가 역시나 가장 적합하다는게 내 소견이다.

사실 따져보면 그 때의 레퍼토리도 순탄치는 않았다. 첫 경기인 스코틀랜드전을 지면서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그 때는 극적인 드라마를 써내며 꽤 멋진 해피엔딩을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 기억 속엔 그 해피엔딩의 재연이 단 한번도... 아, 혹시? 잠깐만. 뒤적뒤적. 있었구나, 역시. 있었구나. 2003년도, 최성국, 정조국 콤비가 활약할 때 16강 진출한 거. 결국 일본에 연장서 역전패 당하긴 했지만. 
좀 더 찾아보자. 91년... 8강? 호오, 그 때로군. 남북단일팀이 나서 감동적인 경기를 펼쳤던 그 때.

허나 그 말고는 공통된 레퍼토리, 그리고 암울한 엔딩의 연속이었다. 99년도는 연패하며 갈길 바쁜 상황서 침대축구하는 상대팀 땜에 나도 선수도 열불이 났다. 97년도... 브라질에 10대3 패배가 아직도 새록하다. 강팀 사이에 걸려 어떻게든 잡았어야 할 첫 경기를 비기고 점차 나락에 빠졌던 순간.
박주영, 백지훈이 나섰던 2005년도는 어떤가. 역시나 브라질, 나이지리아 사이에 끼여 첫경기인 스위스전을 필승카드로 삼았지만 역전패. 두번째 경기에선 나이지리아를 후반의 후반, 동점과 역전으로 침몰시키며 대이변을 연출했으나 결국 브라질의 벽을 못 넘었었다. 

이들 대회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결국 첫 경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수순을 매번 밟았다는 거다. 첫 단추만 제대로 꿰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한 것은, 다음 경기서부터 확 달라져 강팀다운 면모를 발휘하던 한국팀의 모습 때문. 처음부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부질없는 한탄 때문이었다. 결국 비교적 해 볼 만 하다는 팀과의 첫 경기를 놓치거나, 패배함에 따라 한국은 매번 '경우의 수'라는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그리고? 악전고투 끝에 희생양이 되곤 했다. 

탈락했지만 2007년은 그래도 결과여부를 떠나 만족스러웠다. 미국과 비기고 브라질에겐 대추격전을 선사했다. 막판 폴란드전에서 아쉽게 승리를 놓치며 무승으로 끝났지만 뛰어난 경기력으로 빚어낸 2무1패의 성적은 팬들에게 찬사를 받기 부족함 없었다. 다만, 이 때 역시 첫 경기의 뒷심이 아쉬웠던건 사실이다. 

2009년 청소년월드컵에 앞서 난, 이제 이처럼 진부하고 살 떨리는 레퍼토리는 사양하고 싶었다. 첫 단추를 잘 꿰매고, 후회없이 싸워 자력으로 예선통과를 결정짓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엔 첫 경기, 두번째 경기까지 어쩜 이렇게도 지난 레퍼토리를 확실히 답습한다냐 그래. 2대0으로 카메룬에 첫경기 패배, 불리해진 채로 시드 최강이라는 독일을 맞은 두번째 경기는 선전 끝에 1대1 값진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패배 후 너무나 확 달라져버린 투지와 경기내용이 도리어 언제나처럼 "아유 정말 진작 좀 그렇게 하지!" 하는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첫 경기를 오늘처럼 다리에 경련을 일으킬 지경까지 불태웠다면 어땠을까. 결국 이번에도 첫 경기가 한에 사무치는 대회가 됐다. 이것도 징크스라니깐.

게다가, 다른 팀들 조차 이같은 불멸의 레퍼토리 재건에 힘을 보탠다. 카메룬이 미국에 제압당함에 따라 물고물리는 접전 양상이 벌어지면서 이제 한국은 최종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첫단추 삐걱 - 경우의수 돌입'으로 이어지는 발단 전개 위기까지 과정이 그대로 재연되는 모습이다. 디시인사이드 축구갤러리에서 한 갤러리 왈, "한국은 경우의 수와 사귀나요"하고 묻던데 실은 부정하기가 쉽덜 않아.

자아. 결국 이렇게 암울한 전조는 이번에도 드리워졌다. 그러나 결말은 아직 남겨져 있다.이왕지사 레퍼토리의 발전과정은 진행됐으니, 대신 결말을 극적으로 새로이 써주길 기대한다.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멋지게 역전해보이는  한방을 말이다. 지난날처럼 첫경기의 중요성을 곱씹으며 경우의수 놀이 하다 짐을 싸고 마는 일은 그만 보고 싶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