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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송진우!" 20년째 야구소년이 여기서 외친다

[오아시스] "송진우!" 20년째 야구소년이 여기서 외친다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서울에서 대전가는 차 시간을 알아보고, 예상보다 많이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에 "싸게 가는 방법"을 알아보고... 또 막차 시간을 알아봤다.

"오오, 지하철타고 천안서 다시 버스나 기차타면 6000원대에 콜이란 거지?"

...결국은 못 갔지만. 이거 20년지기 팬 체면 말이 아닌걸.

그저 여기서 외친다. 20년간 눈동자에 아로새긴 그의 이름을.

    


  
  23일 은퇴경기 마지막 투구 후 물러나는 대투수. 진짜 안녕이다. 출처 - 스포츠코리아  
 
 

[오아시스] "송진우!" 20년째 야구소년이 여기서 외친다

송진우의 이름은 80's 야구소년에 있어 곧 현존하는 전설이다. 마치 내가 태어날때부터 세상에 있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만 같은 영원의 존재 말이다. 야구에 시야가 트일 때부터 그는 존재하는 선수였고, 오늘까지 그랬다. 오늘에서야 그 길었던 착시를 끝내는구나. 마치 그가 이 소년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서 저 멀리 사라지는 것만 같다.

2009년은 '현존'이란 말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영웅들이 너무도 많이 사라져 가는 순간이다. 그 중에서도 순간마다 80년대에 정체되곤 하는 이 소년에게 있어 올해는 충격적 소식의 연속이다. 현존하는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은 뜻밖의 사별을 통고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볼테지만 여하튼 마운드에선 송진우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동심에 깃들었던 추억의 그림자가 하나하나 벗겨져 가는 것에 찬바람이 인다.

난 부산에서 자랐지만, 롯데 팬은 아니었다. 발 한번 밟지 않았던 대전 연고의 빙그레 이글스가 언제쯤 우승하려나 고대하던 변종이다. 홈런왕은 야구소년의 로망인 법, 장종훈은 우상이었고 한용덕은 불세출의 에이스였다. 강정길은 승리의 카드였고. 그리고 송진우가 있었다. 세이브 왕이 어떤 역할에서의 1등인지 이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됐다.

사실 내가 그를 인지한건 9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91년, 롯데제과에서 멋진 상품을 내놓는다. 껌 중의 전설로 남을지도 몰랐을 야구왕껌. 왜 이것이 더이상 업데이트되지 않고 사라졌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이 국딩(우리땐 초딩이 아니었다) 은 당연히도 이를 사 모았다. 빙그레는 최우선 사안이었고 곧 내 보물 컬렉션이 됐다. 지금은 어디갔는지 모르겠다만.

한통에 400원. 통당 2장이 담긴 제품에서 송진우 카드는 내가 두번째로 모았다. 강석천 선수와 같은 묶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의 수상 내역엔 당당히 '세이브왕'이 기재돼 있었다.

그 때 시점으로는 풋풋한 신예였을 그, 이미 그 때부터 화려한 타이틀 수식어를 달고 있던 스타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각인한 것이 그 때였다.

지금이야 선발진으로 기억되는 그지만, 원래는 구원투수였다. 그는 스포츠신문 1면에 '특급소방수, 진화'를 툭하면 빨간 타이틀 간판으로 달아놓던 남자였다. 승패의 갈림길에 등장해 급한 불을 진화시켜 버리는 구원투수의 자리는 사실 야구선수의 그 어떤 역할 중에서도 극적인 주인공에 걸맞는 영예다. 1사 만루 동점위기던, 2사 2,3루 역전위기던 간에 그건 빙그레 팬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십중팔구 등장하는 특급소방수, 그리고 그는 한방에 시원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1루수와 하이 파이브 터치를 하며 총총걸음으로 나가곤 했다. 마치 거대한 그림자를 팀 전체에 드리운 '막판대장'의 포스랄까. 한용덕 호투, 장종훈 홈런, 강정길 결정타, 이정훈 묘기, 이강돈 재치, 송진우 마무리가 연이어지면 그만큼 재밌는 야구경기가 없었다. 최전성기던 92년엔 19승 17세이브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거머쥐는 괴력까지 보였다.

91년 한일슈퍼게임에서도 그는 우수투수상을 받는 등 쾌투했다. 3차전에선 잘 던지다 패전의 멍에를 썼지만 5차전에선 선동열에게 공을 넘겨받아 대활약, 승리를 지키며 괴력을 발휘했다.

선발로서도 이미 손색은 없었다.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등판, 7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가던 중계방송은 강렬하다못해 20년의 시간을 꿰뚫고 뇌리에 박힌 기억이다.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이는 지금 은퇴경기 도중에서도 회자되는 그의 기록 중 하나. 이후 수년이 지나 2000년, 그는 해태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응어리졌던 기억을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팀은 빙그레에서 한화로 간판을 바꿨지만 이글스는 영원했고, 그 역시 여전한 독수리였고, 그리고 결국은 단 한번의 외도조차 없었던 영원의 독수리가 됐다. 허나 팀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뉴스메이커였던 그다. 100승 고지에 올랐을때, 그에겐 이를 찬사하는 금메달이 수여됐다. 향후 야구박물관에서라도 전시될 만한 가치의 그것.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만다.

97년, 그 땐 IMF 외환 위기가 몰아쳤을 때다. 국가적으로 금모으기 행사가 펼쳐지던 그 때, 갑자기 이를 생중계하던 거리에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등장했다. 뜻밖에도 송진우 선수는 여기서 그 영광의 금메달을 내 놓았다.

난 야구팬으로서 순간 충격을 받았다. 국채 보상에 나선 거야 찬사가 부족할 일이나, 그래도 본인에 있어 영광임은 물론 한국야구사에도 길이 남을 증표인데... 과연 저게 옳은 선택일까. 그게 고삐리가 됐던 나의 의문점이었다. 어쩌겠는가. 지금 그대로 드러나듯 예나 지금이나 기부 천사 본능인걸. 여튼간에 "이제 다시 메달 받으려면 200승을 올려야 하나" 했던게 당시의 한숨이었는데... 이걸 그는 10여년 뒤, 진짜로 해 냈다.

'송회장'이란 별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선수협 출범 당시 맨 앞에 나와 한국프로야구 모든 팀의 선수들을 대표해 당위성을 주장했다. 지금은 엔터테이너가 된 강병규 선수가 대변인으로, 그가 대표자로 나선 것은 또다른 야구사의 외전이요, 그 둘의 조합은 그 외전의 원투펀치였다. 마이크 앞에서 송진우는 직구를, 강병규는 변화구를 던졌던 기억이다. 하지만 '회장'이란 직함이 단순히 그 때의 모습때문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내외적으로 그에 걸맞는 매너, 자기관리 등 만인에 존경받을 수 있는 처신을 갖췄기에 가능했던게 아닐까.

"언제쯤이면 이글스가 우승을 하지?"하고 기다리던 나는 어느덧 쌩쌩한 대학 새내기가 됐다. 그리고 그 황금기의 99년을 장식이라도 하듯, 드디어 한화는 10년간 이 타향땅 소년이 바라던 우승의 바람을 이뤄준다. 이 때 송진우는 예의 소방수 역할을 구대성에게 맡기고 선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다. 딱 지금의 류현진 역할이다. 공교롭게도 이 해 한국시리즈에선 롯데자이언츠와 맞붙었는데, 송진우가 선발 등판한 4차전을 대학 동아리방에서 여러사람과 함께 시청할 때 무지 웃겼던 기억이다. 열렬한 20대 청춘 부산갈매기들, 죄다 롯데를 응원하건만 나 혼자서 그의 역투와 호수비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8회에서 마운드로 강습하는 안타성 타구를 잡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걸 보며 옆사람은 "조낸 수비 잘하네"하는 탄식을, 나는 '아직 웃으면 안돼'하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데스노트 마지막 승부에서 키라가 "아직 웃으면 안돼"하고 실룩이던 모습, 그래 그게 딱 나였다. 웃고 싶은데 웃지 못하고 참는게 이리도 고욕이라니.

희비가 엇갈리던 어느 순간, 남들이 탄식할때 난 저도 모르게 환호를 했는데 다행히도 사람들에겐 똑같이 탄식으로 들렸던지 별 말 없이 그냥 넘어갔다. 결국 그는 승리투수가 됐고, 5차전에서 또 하나의 영웅 장종훈 선수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한화는 20세기 마지막 승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당시로서도 이미 데뷔 10년을 넘긴 '노장' 소리 듣던 그가 설마, 이후의 10년을 또 채울 줄 누가 알았을까.   

21세기 들어서도 그는 꾸준히 활약, 선동열의 최다통산승수기록을 경신하고, 프로야구 최초의 200승 고지를 밟았다. 200승을 달성하고서도 은퇴 이야기가 나오면 5년정도 더 던지고 싶다던 그. 오늘 은퇴경기에선 한 타자를 상대로 삼구 모두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언제나 그랬듯 정직한 승부였다. 그리고, 정말로 마운드의 21년을 마감하는 순간.

    


 
  출처 스포츠코리아  
 


볼을 넘긴 건 류현진. 한화의 오리지널 좌완 에이스가 새로운 좌완 에이스에게 공을 넘기고 박수 속에서 내려온다. 내 눈엔 류현진에게서 그가 겹쳐져 보였다. 이글스의 송골매가 불사조로 거듭나는 모습-

내려온 뒤 덕아웃의 자신을 비춰주는 카메라를 곧장 의식하며 그는 팬서비스하듯 웃었다. 며칠 전 경기서도 그랬다. 노장은 카메라가 지금 어디서 자신을 비추는지 바로 알아챈다더니, 노장임을 증명하는 또하나의 스킬인 것인가.

류현진은 이 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그의 은퇴경기에 승리의 화환을 장식하는 후배들이었다. 경기종료 후 송진우는 웃는 얼굴로 걸어나와 후배들을 격려했다.

우린, 어쩜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을 200승 대투수를 오늘 떠나보낸다. 2000탈삼진, 100세이브, 3000이닝, 마운드에 오르는 자체가 어느순간부터 기록의 순간이었던 남자.

박철순이 원조 불사조였고, 최동원이 지치지 않는 무쇠어깨였고, 선동열이 마구를, 박동희가 광속구를 던졌다면 송진우는 인생 자체를 내던졌던 또하나의 불사조였다. 불끄는 파이어볼러에서 타자 속을 훤히 읽어내고 절묘한 컨트롤로 끝내는 경지의 선발까지 전천후로 해 볼 거 다 해 본 그에게 감히 최강의 이름을 선사해도 괜찮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