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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영화제리뷰4] $9.99, 고독한 당신을 위한 애니메이션

[리뷰] $9.99, 고독한 이들의 애니메이션 
충무로 국제 영화제 상영작 - 4 

 
충무로국제영화제 상영작의 마지막 리뷰다.

이번 영화제에선 다양한 작품을 선별해 만났다. 리뷰에 담는 네 작품 모두가 저마다 다른 영역, 다른 느낌의 작품. 돈 맥케이는 헐리웃 최신작이었고 죄의 천사들은 흑백의 고전. 우슈는 중국작품으로 사실상 과거 홍콩영화의 느낌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작은 애니메이션이다. 이스라엘과 호주가 합작해 빚어낸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생소한 감상을 전해왔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최신작으로 국내 상영이 이뤄진다면 역시나 흥행 여부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리뷰] $9.99, 고독한 이들의 애니메이션

-충무로 국제 영화제 상영작 - 4

 

아파트 주민들의 하루하루... 일상과 일탈이 맞물린 생활

먼저 세 남자로 이뤄진 가족을 소개한다. 아내와 별거 후 두 아들을 키운 아버지는 요새 그들로 인해 삶이 무겁기만 하다. 차남은 실업자로 전화상담원을 희망하는 소박하고 착한 청년. 채무자의 물품 압류를 업으로 하는 장남은 이성을 갈구하고 있다.

여느 또래처럼 축구를 좋아하고 우유를 싫어하는 초등학생 소년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매일마다 한잔씩 우유를 마신다. 우유 한잔 마실 때마다 50센트를 받고 이걸로 선물받은 돼지저금통을 가득 채우면 갖고 싶은 '축구왕 잭'을 살 수 있다. 아버지가 내건 그 약속은 주효했다.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하는 연인. 남자는 여자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아내와 사별 후 매일이 고독한 노인.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지만 그에겐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목소리로 계속 등장하는 이름도 모를 텔레마케터. 그녀는 이들의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잠깐이나마 흘려주는 이로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어느날부터 이 아파트는 무료한 일상과 해괴한 일탈이 맞물린 장소로 바뀐다. 1달러를 못 받아 자살하는 노숙자, 아름답지만 뭔가 수상한 모델, 심보 고약한 걸인 행색의 천사, 작고 요정 비스무리한 3인방... 갑자기 이들에게 찾아온 이방인들은 진정 존재하는 이들일까, 아니면...

 

그들에 있어 '돈'이 갖는 가지각색의 의미

제목에 제시된 9달러 99센트는 사람 좋고 나약한 실업자 청년이 구매한 책 '삶의 의미'가 갖는 가격이다. (어찌된 일인지 나중엔 그 돈을 돌려받게 된다) 청년에 있어 9달러 99센트는 우리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댓가다. 역설적으로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 모두가 9달러 99센트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제시되는 특정 금액과 가치는 저 청년의 9달러 99센트 외에도 여럿 있다. 먼저 1달러의 의미.

청년의 아버지는 아침 출근길에 권총을 든 노숙자를 만난다. 담배에 이어 이번엔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며 커피 마실 1달러를 요구해 오지만 그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이 노숙자, 자기 머리에 정말 총알을 박아버리고 만다. 이들에 있어 1달러는 목숨을 건 흥정의 가치다.

그러나 그 노숙자는 천사의 날개를 달고 다시 등장, 이번엔 외로운 독거 노인 집에 눌러 앉는다. 죽은 뒤 천사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그의 쇼였던 것일까. 여하튼 이전보다 한층 더 뻔뻔해진 그는 외로운 노인을 상대해 주는 댓가를 줄곧 요구해 온다. 차, 쿠키, 도넛... 그러다 돈.

"5달러, 10달러 주면 더 좋고"

노인에겐 이것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댓가다. 전화상담원을 상대로 통화를 원하고, 만나는 그 누군가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그는 노년의 비애를 그렇게나마 달래고 싶어한다.

소년에게 있어 50센트는 목표를 이뤄 줄 열쇠다. 싫은 우유를 마시고, 이름 붙이지 않은 귀여운 돼지저금통에 하나하나 채워넣는다. 가끔은 다른 것까지 집어넣곤 한다. 모든 것은 축구왕 잭을 사기 위해서. 그러나 돼지가 점차 무거워지자 그 50센트의 의미는 달라진다. 아이는 어느덧 자신과 함께 해 주는 그 돼지저금통 자체를 소중한 무엇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50센트를 줘도 웃어요, 하지만 안 줘도 웃어요."

학급 발표회에서 소년이 꺼내는 그 소박한 말은 이 작품을 대표할 명대사다.

            

 


기괴한 발상, 이질적 정서의 생소한 감상

애니메이션에 허락된 최고의 권한은 역시나 영화 이상의 표현적 자유다. 애니메이션에서 기괴한 발상은 곧 참신한 아이디어다. 소름끼친다 해도 그것은 애니메이션이라 용서된다.

세 남자의 집안 중 이성을 갈구하던 장남은 아름다운 모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모델은 부드러운 것에 집착하는 여성. 결국 그는 자기 털을 죄다 밀더니, 심지어는 뼈까지 없애버리고 만다. 끔찍한 일이지만, 여하튼 그와 그녀는 행복하게 끌어안으며 함께 한다. 타인의 관점에선 끔찍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행복하다면 이건 이거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타인의 피를 두번이나 뒤집어쓴 아버지는 혼란스러움에 거리를 헤맨다. 그런 그를 공원 호숫가에서 찾아낸 건 착한 차남이다. 그는 새로운 책에 나온대로 아버지와 함께 '돌고래처럼' 수영한다. 기괴하지만, 여하튼 두 부자가 그렇게 가까워져 '그것'을 공유하게 됐다는건 그 나름의 '해갈'이다.

노인은 살해 사실을 자수하지만 경찰이 하느님을 대신해 용서한다.(?) 그는 사기꾼 천사가 가르쳐준 대로 해변가를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짝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리얼한 해피엔딩.

소년은 돼지 저금통을 차마 깨지 못한다. 이젠 그 돼지 자체가 소중한 보물을 넘어 친구가 된다. 보물은 자신의 소유물이지만 친구는 행복을 빌고자 이별조차도 마다하지 않을 존재. 아름다운 결말이다.

다시 돌아오는가 했더니, 결국은 또다시 떨어져버리는 연인. 작품 속에서 해피엔딩의 맛을 보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다시 결합할 것을 예감케한다.

이스라엘과 호주의 합작은 이렇듯 그간 우리에겐 절대 친숙하지 않은 정서를 내보인다. 여러모로 기괴하고 생소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은 동조하게 만들고 있으니...

 

고독한 도시인,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

이 작품은 국적을 초월한 소재를 여럿 담고 있다. 고독감, 동심, 권태감, 실업자의 고민, 사랑에 대한 남자의 숙명, 연인의 줄다리기, 대마초가 빚어내는 망상...

처음엔 리뷰를 어떻게 쓰나 걱정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긴 반면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너무 심오한 듯 해서. 그러나 객석을 나올 때 깨달았다. 결국 이것은 '고독'에 대한 이야기로 한데 모인다는 것을.

난 영화를 보며 줄곧 외로움을 느꼈다. 현재의 내 처지를 쉼 없이 자각케 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천국에 가면 아내를 볼 수 있냐는 노인의 고독감, 연인을 그리워하며 삶조차 놔버릴 뻔 한 남자의 괴로움, 그리고 마찬가지의 여자. 자기의 반쪽을 갈망하다 이상한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권태기의 가장, 아버지와의 거리감에 고민하는 청년, 홀로 놀다 돼지저금통에게서 구원받는 소년. 마지막으로 일 때문에 달갑지 않은 전화대화를 해야 하는 그녀까지. 모든 것이 고독하고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홀로 영화를 보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으로까지 전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커플이거나 가족처럼 보였다.(내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일단 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눈엔 이 모습마저 영화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고독한 이들에겐 감상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고독한 관객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잊고 있던 그것을 꺼내어 쓰디쓰게 곱씹어보게 한다. 그러나 왜 그런거 있잖은가. 오히려 그러한 시간이 씁쓸한 기분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청량감을 끝맛으로 선사하는 것을. 결국엔 위안으로 돌아오는 작품, 고독한 이들을 위해 준비된 $9.99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