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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동물의 죽음, 어떻게 불러야 할까

동물의 죽음 이르는 존칭, 어디까지일까 
당신은 어떻게 불러 줄 건가요? 

 

며칠전 호주의 희망이라 불리던 코알라 샘의 '부고' 소식이 들려 왔다. '코알라 샘 사망'은 다음 검색어 차트에도 오르며 화제가 됐고, 각 언론사도 이 소식을 앞다퉈 전했다. 호주를 넘어 세계적인 동물이었음을 다시 알게끔 하는 대목.

그런데 말이다. 동물의 죽음을 칭할 때는 어떤 표현이 가능하며, 존칭의 극은 어디까지일까.

 

코알라 샘에 언론 기사 제목은 '사망'

코알라 샘의 비보를 외신 인용한 국내 보도를 검색해보면, 거의가 다 '사망'이라 표현한다. 이는 사람의 죽음을 이를 때도 가장 흔하게 쓰는 단어. 특히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백과사전에서 그 뜻은 '사람이 죽음', '자연인이 생명을 잃음' 등으로 간략명료하게 정의돼 있다.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동물이 죽었을 때도 '사망'은 가장 흔하게 보는 단어다. 말하자면 아주 무난한 선택이다. 동물을 사람과 동격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어선 그 자체만으로도 다소 그 존재의 격을 높여준 듯한 어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일부 언론에선 '숨졌다'라고 풀어서 쓰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것 중 가장 존대받았던 동물은 '백구'

국내에도 사회적으로 크게 조명받았던 동물이 있다. 지난 1993년, '주인찾아 700리'의 실화로 많은 이들을 감동케 했던 진돗개 백구를 기억하는가. 대전에 팔려갔다 진도의 원 주인에게로 돌아온 이 진돗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 이야기는 동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모 기업의 광고에서도 백구가 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광고 중 주인을 찾아 먼길을 돌아오던 백구가 빵집 미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갈길을 재촉하는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흉흉한 소식이 잇따르던 당시 세간에선 백구를 보며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툭하면 번져나올 정도. 명실상부한 견공 중의 슈퍼스타였다.

그런 백구가 2000년, 12세의 나이로 본래 가족과 살다 세상을 뜨자 신문 지상은 그의 소식을 실어 전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 내가 확인했던 기사는 부산일보의 것이었다. 비록 자그마한 단신 정도로 끝이 났지만 그 표현은 잊혀지지 않는다.

"숨을 거두었다"

'숨을 거둔다'란 풀어쓰는 표현이 사망이라는 일상적 단어보다 높은 격인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높은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나 위인전에서 마지막 장을 주로 장식하는 그 말의 어감에 비춰 볼 때 일상적 표현보다는 보다 장엄하게 들린다.

사람의 죽음을 한문으로 된 단어로 높여 부르는 '별세', '영면', '작고', '서거' 등의 극존대를 동물에 쓸 일이 없다면, 언론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의 죽음을 이르는 말 중엔 이 풀어 쓴 말이 사실상 가장 높은 존칭이 아닐까.

 

키우던 개의 죽음을 '돌아가셨어'라 표현하던 아이, 버리고선 '없앴어'라 표현하는 어른 

그럼 이번엔, '공인 격의 동물'(?)을 매스컴에서 표현하는 사례 말고, 평소 때 우리가 자신의, 혹은 이웃의 동물이 눈 감았을 때 어떻게들 표현하는지 돌아보자.

검색을 해보니 재밌는 물음이 있더라. 몇몇 네티즌이 동물의 죽음을 일컬어 "그냥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사망'이라고 하는 쪽이 맞느냐고 물어온 것. 아쉽게도 그럴 듯한 답은 없었다. 무반응이던가, 기껏해야 "앞의 건 한글이고 뒤의 건 한자다" 정도의 의미없는 답글 정도? 일반적으로는 동물의 죽음을 '죽었다'와 '사망'의 사이서 고민하는 게 대개의 상식선인 모양이다. 

십수년전,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키우던 개 '땡칠이'(그 녀석 작명 센스 한번 끝내줬다)의 안부를 묻자 녀석은 힘없이 이렇게 말했다.

"땡칠이가... 돌아가셨어."

바깥에 내놨던 쥐약을 잘못 먹은것이 사인이었다나.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 초등학생은 끝내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돌아가셨어'라고 극존칭을 썼다. 혹자는 "역시 애는 애다"라던지, "잘못된 언어구사니 바로잡아줬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애는 애 다워서 좋다'며 따스하게 바라봐 줘도 괜찮지 않을까.

반면 어른들은 키우던 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반대의 경우를 내보이곤 한다.

"너네 키우던 그 개, 어떡했어?"

"응, 얼마전에 없앴어."

죽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정으로 다른 이에게 보냈다던지 해서 더 이상 키우지 않는 것을 이렇듯 표현하기도 한다. 동물을 교감하는 상대가 아니라 '것'으로 대하는, 철저한 물질적 표현이다. 이건 앞서와는 다른 성질의 문제로서 이야기가 다분할 법 하다. 단, 여기선 그에 대한 논쟁을 접어두기로 한다.

 

"갔어", "하늘나라로"... 기타 의견 들

그럼, 이렇듯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동물의 죽음을 이를 땐 또 어떤 표현이 있을까? 사례 1.

"갔어?"

"응, 갔어."

"언제?"

"지난 여름에 갔어."

가끔 가다 이렇게 '갔어'라는 표현이 들리기도 한다. 뭐랄까... 음. 쉽게 가늠하기가 힘들다고 할까. 어떤 감정의 표현이고 발산인지 좀 복잡미묘해서 말이다. 친근한 사람들끼리는 친구의 죽음을 이렇게 짤막히 표현하기도 하던데, 뭐... 좋게 말하면 '남자들의 정이 듬뿍 들어간 표현'이라 할 수도.

사례 2. 실제로 애견의 이름을 닉으로 사용하는 언터처블 블로거 '미디어몽구' 님에게 "님은 어떻게 표현하나요"라고 물었다. 몽구 님의 답은 이거다.

"...하늘나라로?"

그는 몽구와 몇 년 뒤 이별할 시에도 이를 블로거들에게 알릴 땐 "몽구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라고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혹 그 때, 그 '몽구'가 어느 '몽구'냐며 혼란스러워하지 말도록- 모르는 사람은 뜨악할 수도 있겠다) 그래, 이런 표현도 있다. 사람과 동물을 아우르는 광대역의 표현이다.

사람의 부고엔 일정한 표현 기준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였고, 박경리 선생은 '타계' 내지 '작고'였다. 성철 스님은 '입적',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그리고 부고란에 오르는 일반적인 존칭은 '별세'다. 일부를 제외하곤 단어 선택에 별 어려움이 없다.

동물의 죽음을 이르는 표현은 그저 각자의 영역에 맡길 수 밖에. 일정한 잣대가 없으니 말이다. 물론 근 미래엔 동물의 권한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사회에 맞춰 누군가가 이를 위한 새로운 잣대 내지 적절한 표현의 신조어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아직은 'not yet'이랄까.

확실한 건, 동물들에 있어서도 그 죽음을 표현하는 말을 통해 일정한 격의 차이를 분명 체감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에 사랑받은 동물인지, 혹은 당신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애완동물이었는지, 아님 그저 '그것'이었는지. 바꿔 말하면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당신이 평소 동물을 어느 정도 높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저 당신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이들을 대하던 사람이라면, 마지막 순간 그것을 제대로 담아 전할 수 있는 멋진 센스를 기대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