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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잊었니? 노래는 감동의 음파야"

[리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잊었니? 노래는 감동의 음파야"


130분간의 뮤지컬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니? 노래는 감동의 음파임을."

난 수긍했다.

"...아마도 그랬나 봐."

    


치명적 매력을 지닌 집시여인 에스메랄다. 그 설정대로 이 날의 문혜원 씨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여성적 매력을 발산했다. 다만, 개인적으론 팬인 바다 누님을 보고 싶었다... 
 
 


[리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잊었니? 노래는 감동의 음파야"


감탄사 남발? 오늘만큼은 리미터 해제

록키의 최신작인 '록키 발보아'에서, 그의 복귀전을 중계하던 캐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대단하다'는 단어는 스포츠계에서 남발되는 말입니다만, 오늘만큼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여러분, 록키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나도 대단한 무대를 봤다. 조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오늘만큼은 약간 감탄사를 남발하고 싶다.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최신작' 못지않게 가슴 설레게 하는 키워드가 있으니 '명품'이라 한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는 눈부신 기술 발전의 현주소에 맞춰지지만 한편에선 시간을 초월해 빛을 발하는 과거에 시선을 둔다. 세월이 지나도 노스텔지어의 기억으로, 혹은 이를 넘어 현존하는 것으로서 계속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홍보 타이틀에 명품을 새겨 넣었다. 나는 뮤지컬을 자주 접할 여력도 없거니와 감성도 귀족보단 서민의 그것에 가깝기에 이 작품이 진정 명품인지 어떤지는 제대로 파악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다른 것과 비교하며 대단한지 어떤지를 파악할 필요 없이, 비교대상이 없어서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꺼낼 필요 없이, '절대평가'만으로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 날 공연의 캐스팅. 일단 이 글은 이들에 한해 남긴 감상평이다.   
 

비싼 데엔 이유가 있더라

영화에 이어, 이번엔 친근한 소시민의 말을 인용해 볼까. 전에 살던 동네에서 노트북을 혹사시킨 탓에 컴퓨터 수리점 아저씨와 본의 아니게 친해졌었다. 좋은 컴퓨터의 기준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기를 당하지 않는 이상, 비싼 것이 좋은 거예요. 제 원론은 그래요. 비싼 부품은 비싼 값을 하기 때문에 비싼거예요. 이유가 있어서 비싸죠. 다만, 어디서 같은 걸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가란 추가적 문제는 있죠."

내가 얻은 좌석의 티켓 값이 얼마인지 아는가. 무려 10만원짜리다. 싼 B석이 4만원, 비싼 로얄석이 12만원에 육박한다. 초청받지 않았다면 이 서민과는 인연이 없었을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이 정도 고가의 감상비용을 요하는 작품은 본 적이 없다. 좀 더 쉽고 적나라하게 밝히자면, 나는 고기 맛을 모르는 감상자다. 당연히 이 감상글은 전문기자나 평가자의 디테일하고 세심한 것과는 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거 하나만큼은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매우 정직하다는 것. '비싼 것은 이유가 있다'란 원론에 절로 수긍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제대로 된 고기맛을 처음 경험한 자의 솔직한 감흥이다.

     

    
 
뜬금없이 '카레이도스타'가 떠올랐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긴데, 이 작품을 보다 종종 애니메이션 '카레이도 스타'가 떠올랐다. 그 작품은 노래와 춤과, 연극과 서커스가 집대성된 종합극을 소재로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커스에 가까운 작품이란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뮤지컬이다. 한 마디의 대사도, 한마디의 나레이션도 없이 오직 노래로만 진행되는 순도 100퍼센트 노래극이다.

그런데 왜 카레이도스타 이야기를 꺼냈냐고?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그 종합극을 순간순간 떠올릴만치 화려한 볼거리가 그 이유다. 서커스와는 다르지만, 이 작품에선 순간순간 곡예를 보듯 긴장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예를 들어 상당히 높은 곳에 연기자들이 오르는 일이 종종 있다. 때론 종 위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때론 철근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종 안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종 채로 천천히 바닥에 내려오는 경우도 있는데 바닥에 머리가 가까워질 때 잠깐이나마 아찔한 느낌을 선사한다. 정적인 뮤지컬이라면 느낄 수 없는 요소다.

춤 역시 아주 다이나믹하다. 헤드스핀같은 브레이크댄스는 둘째 치고, 공중 제비같은 스킬은 뮤지컬보단 서커스에서 더 친숙한 볼거리가 아닌가.

그리고 어쩜, 앞서 밝혔듯 현실에선 보기 힘든 그 애니메이션의 예술극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 작품이 조금은 만족시켜줘서일지도 모른다.

     
웅장한 스케일, 고전과 현대극의 조우

이 작품을 보자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도취감에 젖는다. 대형 무대에서 세트는 쉴새 없이 바뀐다. 조명과 그림자 등을 통한 연출도 볼 만하다. 많은 출연진들의 역동적 행위예술도 웅장한 위용을 더 실감나게 만든다. 만일 당신이 스토리 진행을 전담하는 노랫말의 메시지 전달에 익숙치 않다고 해도, 그래서 전체 맥락을 짚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연출자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품 일탈을 막는 일종의 차선책이라고 해야 하나. 막말로 최소한 '돈 값은 하네'라는 한 마디 정도는 꺼낼 수 있게 만들 정도로 초대형 무대임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립극장의 '그릇'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경험이 됐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원작을 본 바가 없어 확언할 수는 없으나 이 작품엔 틀림없이 현대의 것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브레이크 댄스 도입, 연주 중 전자 사운드가 가미되는 락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이 그렇다. 오래전부터 존재하진 않았을 것들이다. 물론 클래식하고 장엄한 음악과 연출은 건재하다. 빅토르위고의 고전에 현대인들의 정취가 접목된 멋진 앙상블이 아닌가.

하지만 역시나 이 작품의 백미는...

    

  
  작품이 끝나고 무대인사를 할 때, 커튼콜을 외치는 관객 앞에서 그랭구아르 역의 박은태 씨는 잠깐 타이틀 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의 한 소절을 멋지게 서비스해 보였다. 뽐낼법도, 부담없이 서비스할법도 한 뛰어난 가창력이다.  
 


"잊었니? 노래는 감동의 음파야"

이 작품이 근사하고 멋진 것...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작품의 심장이자 생명이라고 해야겠지. 이 작품의 전부라고까지 할 수 있는 매력은 역시나, 음악과 노래에 있다.

테너의 노래에, 혹은 뮤지컬 도중에 청중이 감동받아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 클래식 무대나 뮤지컬에 자주 드나들지 못해 직접 확인한 기억은 없지만 하다못해 영화나 TV에선 여러번 본 적이 있다. 브리티시 갓 탤런트에서 폴 포츠가 노래할 때도 그런 장면이 있지 않았는가. 순간 울컥하는 감동의 '울렁증'에 눈물이 쏟아지는 그 멋진 감흥이 이 뮤지컬에 있다. 그러나 몸소 현장에서 체험하지 못한 나로선 그것의 존재에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그것이 시종일관 엄습한다.

노래를 듣다보면 한결같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선율이다. 필시 여기저기서 들었으리라. 그러나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구슬프고, 멋진 울림에 이 촌티 어린 관객은 곧장 포로가 됐다. 한편으로는 잔혹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악역들조차, 그 노래의 위력 때문에 함부로 미워할 수가 없다. 특히 프롤로(서범석 분)는 애잔한 노래를 돋보이는 가창력으로 소화하며 일그러졌지만 끌릴 수 밖에 없는 사랑의 호소로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는다. 잔혹한 악역들에게조차 선망할 자리를 마련해 줬으니 우린 누굴 미워해야 하는가. 가련한 에스메랄다가 목매달릴 때도, 콰지모도가 '그녀를 내게 주오'라며 구슬프게 울부짖듯 노래할 때도 우린 함부로 누굴 원망조차 할 수 없다. 

콰지모도의 조순창, 에스메랄다의 문혜원, 클로팽의 임호준, 그랭구아르의 박은태 등 주동인물은 노래 하나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인물들. 특히 콰지모도는 묵직한 저음에도 '미성'의 것과는 또 색깔이 다른 '아름답다'란 감흥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노래를 듣다보면 눈물이 쏟아질것처럼 마음 한 곳이 울린다. 좀 더 자극받는다면 손수건을 꺼내 울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까지 감정의 파문은 확대된다. 노래가 가진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순간이 2시간이 넘는 작품 중 몇차례고 반복된다.

     
 


  항시 약자, 빈자의 삶을 노래한 빅토르 위고다. 장발장에서 죄수와 고아, 젊은 혁명가를 무대에 올렸던 그가 이 작품에선 집시와 곱추를 중앙에 세워 아픈 세상의 희망을 노래케 한다.   
 


마치며

사실 영화 한편, 혹은 소극장의 연극 한편을 소개할 때 처럼 선뜻 '추천한다'라고 말 꺼내기가 어렵다. 다름이 아니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티켓값 때문인데... 예술엔 돈이 든다는 말을(그게 아니라 낭만엔 돈이 든다 였던가?) 내심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선뜻 지갑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품만 놓고 추천이냐 비추천이냐를 말해달라고 묻는 사람이라면 이미 내 대답은 나온지 오래다. 나처럼 좋은 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아울러 당신이 아직 자신의 꿈을 정하지 못한 자녀를 동석하려는 부모라면, 상황에 따라 신중히 고려해 보도록. 이들에 반해 갑작스레 뮤지컬 배우를 희망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처음부터 자녀가 이 길로 들어서길 바란 사람에겐 두말 할 필요 없는 기회요, 반대라면 이후 후회스럽다 할지 모른다. 이 작품은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에겐 진로가 바뀌는, 그 한순간이 될지 모른다.

사실 난 앞의 25분을 놓쳤다. 20분 지연도착했는데 그렇게도 그 20분이 아까울 수가 없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시간은 돈이고 그 이상으로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