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생일날의 기묘한 예비군 훈련, 끈 칼빈에 본의아닌 군용품반출?

[오아시스]생일날의 기묘한 예비군 훈련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내 생일.

뭐냐고요.

하필 딱 이날 맞춰서 예비군 훈련이냐고요.

 

61. 생일날의 기묘한 예비군 훈련

 

그게... 이번 해는 뭐 때문인지 특별한 날만 골라서 예비군 통지서가 날아온다. 실은 지난 3월에 끝냈어야 하는 향방기본훈련인데, 하필 그날 한국팀이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에 오르지 뭔가. 전화 문의(당연히 이유는 안 밝혔다)했더니 1차는 무통보 불참해도 괜찮다고 해서 그냥 안 갔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향방작계훈련은 한번 날짜를 변경해 잡았더니 갑자기 노 전대통령 서거, 이 날 영결식이 치뤄지는 상황이 전개돼 취재차 재변경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작계훈련 마치고 이틀이 지난 밤 11시, 갑자기 계원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길래 깜짝 놀랐다. 직접 통지서를 주더라. 지난 3월 불참했던 향방기본훈련에 꼭 참석하라며 사인을 받는데, 아 이 날은 또 내 생일일세 그려.

계원 왈 "이번엔 변경이 어렵다"란다. 그리고 한번 더 불참시엔 고발, 벌금 20만원에 처해진다고. 에라 어차피 아무도 곁에 없는 고독한 남자의 생일, 뭐 별 거 있나 하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사 온 후 처음 찾아가는 훈련장. 지하철 역은 아홉정거장 거리인데 버스갈아타고 뭐 하고 하니 90분을 잡아먹는다. 덕분에 지각. 케엑. '보충 공부' 예약인가.

그래도 하늘이 생일날 '뺑이' 치는 건 불쌍하다 싶어 도운 것인지, 훈련은 아주 널널하다. 대놓고 교관이 날도 더운데 릴렉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밝히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군.

조교는 어떻게 된건지 죄다 이등병이다. 첫경험이라 밝혀오는 친구들도 있다. 가뜩이나 '야비군'에 물이 오른 6년차들, 컨트롤이 가능할리 없다.

"예비군 훈련 원래 이래요?"

"원래 이런 거야."

이 양반들, 이등병한테 참 좋은 거 가르쳐준다.

개인적으로는 생일날의 훈련이라는 특이한 상황까지 겹쳐 이색적인 감흥을 전달한다. 게다가 실제로도 지금껏 받은 예비군훈련을 통틀어 손꼽을만치 희한한 일들의 연속.

지난번 교정에서 M16을 주길래 겁나 불평했던 나다. 케이투 달라고 말이다. 헌데 이번엔 칼빈이다. M16에 이어 이번엔 칼빈인가. 못해 먹겠군.

어찌된게 파츠 강화도 아니고, 칼빈마다 제각각. 내가 받은건 아래에도 붙어 있을게 없고 위에도 붙어 있을게 없고... 가늠자도 단발 제어장치도 없는데 이것 또한 생일날 조금이나마 가벼운 총 들라고 배려해준 하늘의 은총일까.

"자, 오후엔 사격이다."

소대장의 말에 기겁. 칼빈으로 사격? 나무가 뜯겨 나가는 이 골동품으로? 이거도 저거도 다 없는데? 게다가 안엔 총기수입을 안 했는지 비가 왔는지 녹이 슬어있다. 제발 살려줘.

훈련교관 왈, "나무총이라고 맞으면 안 아플까요? 피나고 아픕니다"라는데 대체 무슨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여요!

"집에 이거 있는 분은, 아마 은행에서 보게 되겠지요. 내 앞에 제발 나타나 줘요. 신문 기사에 좀 나오게."

네. 제가 기자나부랭입니다. 근데 우짜라고.

칼빈이라니 이게 첨단 예비군에 맞는거야? 그런데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음을 누군가의 '애인'이(총은 군인에게 애인이다) 절절히 가르쳐주더라.

"야, 그게 멜빵끈이야?"

소대장도 순간 할말을 잊었다. 자, 엄청난 칼빈이 나오신다.

       

뭐야 이거. 케이투 말할 상황이 아니네. 진짜로 별의 별게 다 나온다.

가진 사람은 기가 막힌지 웃고, 다른 이들도 웃는다. 소대장은 조교에게 "지발 이거 어떻게 좀 해 봐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주위 예비군들이 말했다.

"이거 누가 사진 찍어서 올리면 전부 M16으로 바뀌는 겁니까?"

네. M16 교체야 모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찍었습니다. 이거, 엄청나다. 휴대폰으로 찰칵대니 소대장이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친다. 속으로 "어우 야~" 하는 듯. 하지만 별 제지는 않는다.

훗. 하지만 정말로 인터넷에 올릴 줄은 몰랐지요.

소대장의 말씀이 순간 장중의 시선을 모은다.

"가면 다른 총으로 쏜다, 레이저 달린 특 A급..."

"오오오?"

"...칼빈이다."

"버려버려."

바인더끈 칼빈에 이젠 레이저 칼빈인가.

오후. 예비역 장성이 나와 충효예 교육 실시. 사실 점심시간 끝나고 내부 교육은 집단졸음이라는 대형 사고를 야기한다. 이에 나름 대비해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예비역 장성.

"시청각교육 끝나고 문제를 내 맞추는 분들에게 상품으로 문방구에서 퍼즐 맞추기를 준비했는데..."

"필요없어!"

우하하, 그렇다고 외칠 건 없잖아요. 예비군 아저씨...

마지막 사격에서, 정말로 팔자에도 없는 칼빈 사격에 나섰다. 레이저는 없더라. 젠장 속은 내가 바보야.

이렇듯 생일날 예비군훈련이라는 기묘한 체험을,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던 체험을 마치고 나느 스물아홉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땀내나고 화약내 나는, 어찌보면 아주 마초스러운 생일의 추억을 남겼다.

음? 아아, 사격 성적? 그래도 케이투나 M16 쥐면 절반은 맞추는데 이건 도저히 못해먹겠더라. 일명 '빵발'. 우리 조 성적을 보니 도 아니면 모인지 다 맞거나 아님 죄다 빵발이거나. 그래도 사격 우수조가 되어 박수속에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빨리 복귀할 수 있었네. 우려했던 나머지 공부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면제 받았다. 이것도 생일날 국토수호의 의무에 충실한 것에 대한 조그만 보상일까.

여튼, 사격표적표는 깨끗해서 다시 재활용해도 된다... 어라?

잠깐만.

뒤적뒤적.

......

     
     
역시나.

아악! 들고 나와버렸어! 군이 엄금하는 군용 물품 반출까지 해버렸잖아 이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