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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지에서 경악한 설공찬전, 연극보니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

[후기] 설공찬전,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 세상 
 

 
 
공연의 라스트 스테이지를 찾았으니 리뷰라고는 할 수 없다. 후기 정도가 적당하려나. 하지만 몇번의 앵콜공연을 이어가며 수백년을 넘어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설공찬전' 앞엔 리뷰라는 말도 틀렸다곤 할 수 없겠다.

그리고 연극 역시, 다시 재공연을 예감케 하기에 더욱 그렇다.

    

출처 다음 공연 설공찬전 게시판 중   

[후기] 설공찬전,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 세상

스펀지에서 사람들 경악시켰던 그 설공찬전

벌써 3년전이었나. KBS의 인기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색다른 문제 하나가 나왔었다. 지금껏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보다도 실은 100년 앞서 나온 한글소설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모 영화와 똑같은 맥락을 짚고 있다는 점은 시선을 붙들기 충분했다. '설공찬전'의 존재가 그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설공찬전은 영화...와 똑같다'.

별의별 답이 다 나왔다. 슈퍼맨이라는 답엔 이혁재가 "5백년전에?"하고 되물어 장내를 웃음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대체 그 옛날, 진정한 최초 한글소설이 어떤 영화와 같은 플롯이었다는 거지?

정답이 공개되자, 웃던 사람들은 갑자기 흐억하고 비명소리를 냈다.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고는 경악.

"엑소시스트와 똑같다?!!!"

그 전율의 공포영화와 똑같다니.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스펀지에서 소개된 설공찬전은 엑소시스트와 꼭 닮아있었다. 빙의를 소재로 한 것이 첫째요, 빙의된 귀신이 육체의 주인을 해하는 것이 둘째요, 이와 대립하는 이가 등장하는 것이 셋째였다. 엑소시스트에선 소녀를 위해 대신 희생하는 신부님이, 설공찬전엔 귀신을 쫓으려는 무당이 등장한다.

재연 드라마는 이혁재가 열연(?)하며 사람들을 웃겼다가 또 겁에 질리게 했다가를 반복. 확실한 것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라는 사실. 결국 이 문제는 별 네개반의 점수를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작품이 연극무대에 올랐다.

 

원작의 것보다 많이 간략해진 연극 

원작 소설의 내용을 각색한 연극으로, 내용은 상당히 간략, 축약됐다. 좀 심하게 말하면 빙의담의 기본 내용만 따 왔다고 할 정도. 100분간의 연극무대에서 관객의 이해를 무리없이 돕도록 만들어진 사실상의 창작극이다.

원작 내용은 이렇다. 설충란과 설충수라는 형제가 있는데 설충란은 아들 설공찬과 (이름모를) 딸을 뒀었지만 모두 잃었고 설충수는 공침이란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런데 공침에게 두 사촌남매의 귀신이 연거푸 빙의되면서 문제가 터진다. 그가 사람들에게 저승에서의 경험을 들려주며 현실을 비판하고, 또 똑바로 살라 충고한다는게 주된 내용.

연극은 한결 컴팩트하다. 죽은 뒤 아버지에 못다한 효도로 차마 길을 떠나지 못하던 설공찬이 저승사자에게 스무날의 말미를 얻어 공침 몸에 빙의, 그간 자신의 마음을 전하게 되는데 이게 순탄치 못하다. 공침은 망나니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는 매관매직에 목을 매단 이들로 그려진다. 여기에 그릇된 권세가 정익로가 등장해 일그러진 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에 공찬은 '함께 미쳐보자'며 이들 몸을 휘젓고 다니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날리는 통렬한 한방이 백미.

원작이 천일야화의 컨셉으로 풍자극을 마련했다면 연극은 빙의를 통해 악인들을 혼내주는 해학적 심령활극으로 이를 대신했다. 

 

탄탄한 연기력 아래 코믹과 울림이 잘 어우러졌다

설공찬전은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작품. 올드보이에서 인상적 조역으로 열연한 오달수 씨가 대표로 있다.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저 정도 실력이라면 저마다 분명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감초로, 하다못해 엑스트라로서라도 깊은 인상을 남겼을 법 하다.

대개의 무대는 뛰어난 배우와 아직 여물지 못한 배우가 공존한다. 이들의 괴리감을 커버해야 함은 연출가에게 추가되는 고뇌랄까. 그런데 이 극단에선 그런 것이 없을 듯. 공찬이 씌인 후로 이중인격이 된 공침을 비롯 모든 인물들이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기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 낸다. 그간의 과정이야 알 길 없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볼 때 극단의 연출가는 행복한 사람이다.

연기력이라는 원초적 재료 아래에선 멋드러지게 국이 끓는다. 작품은 시종일관 관객을 폭소로 몰아넣는 코믹 에너지를 채워넣었다 방출했다를 쉬지않고 반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애처로움과 기나긴 한숨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감정이 조합되어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덕분에 아주 맛있는 국물을 맛 볼 수 있었다.

 

 

저승보다 무서운 이승, 귀신이 인간보다 더 사람다운 모습


이 작품은 저승보다 이승이 어쩜 더 무섭지 않을까 싶을만치 그릇된 세상을 통탄케 만든다. 설공침과 설충수, 그의 아내를 비롯 정익로 대감까지 각 악의 추는 한결같이 비정상 캐릭터로 일그러져 있다. 이는 우스꽝스럽다 못해 관객의 폭소를 유도한다. 악인을 희화적으로 새겨넣는 전형적 고전의 틀을 잘 살렸다. 물론 그 웃음의 뒤엔 담백한 쓴 맛이 기다린다. 반면 귀신이 된 공찬은 인간적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다. 공찬이 씌여야 비로소 사람다운 공침. 귀신이 붙어야 비로소 사람같은 인간이라니.

귀신이 된 공찬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인간군상은 그로 하여금 절망어린 한숨을 토하게 만든다. 그의 눈에 정상적이고, 그래서 보기 안스러운 이라면 아버지 설충수와 곱사등의 비운을 안고 사는 여종 정도. 마지막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 더러운 세상, 왜 어여 떠나지 못하느냐"고. 여기서 말문이 막히는건 공찬 뿐만이 아니다. 무서울만치 뛰어난 해학극이다.

 

조만간 이 글이 후기가 아닌, 리뷰가 되길 바라며

이 작품은 올해 들어 첫 공연과 앵콜 공연을 마쳤고 이번이 세번째였다. 아르코시티 극장이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새단장하면서 여기에 기념 공연으로 초청됐던 것. 내가 찾은 것은 이것의 폐막 공연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매번 장소를 바꿔 검증받은 것이다.

나서면서 관계자에게 재공연이 내정됐느냐 물었다. "아직은 확정된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조만간 다시 막을 올리지 않겠는가 전망해 본다. 무더운 계절과 잘 맞기도 하거니와, 장수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내 평가다. 조만간 이 글이 읽은 이에게 있어 후기로 끝나지 않고 진짜 리뷰가 되길 바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