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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 칵테일] 4. 혹시 샤아가 마시던 그 술? 근사한 갓파더

[바의 칵테일] 4. 혹시 샤아가 마시던 그 술? 근사한 갓파더

     


  
꼭 한번 마셔보고팠던 그 이미지

바 BM도 4주차. 들어서자마자 지난주 추천받았던 메뉴를 곧장 주문했다.

받아드는 순간 "오, 죽이는데?"했다. 넓은 위스키 잔, 출렁이는 황금빛 음료,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채워진 얼음... 꼭 한번 마시고 싶다고 그려보던 그 이미지의 술이다. 위스키의... 그래, 아마도 난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나 보다.

갓파더. 지난주 바텐더에게 "고민있을 때 마실만한 작품"으로 추천받은 칵테일. 시원하고, 양많고, 세면서도 근사하다고 소개받았었다. 다른건 제쳐두고 이미지에서부터 만족도를 반쯤 채웠다.

 

오래도록 그렸던 그 이미지 그대로의 맛

빨대에 입을 대고 쪼옥 빨아봤다. 박하사탕을 연상케 하는 향기가 화악 풍긴다. 그 향 만큼이나 맛도 달콤하다. 데쟈뷰일까. 평소 생각해보던 그런 맛이다.

우리가 영화나 TV속에서 보아왔던 멋진 남자는 어떤 이미지였던가. 내가 떠올리는 것은 화장품 광고에 나오던 말끔한 미남자, 멋지게 큐대를 잡고 말보로를 입에 문채 공을 응시하는 올백의 신사, 그리고 바에서 얼음 가득한 위스키 잔을 흔들어 짤랑거리는 소리를 즐기는 선글라스의 귀공자 정도다.

...뭐, 사람에 따라선 겉멋만 잔뜩 든 양키들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우하하)

화장품, 담배연기, 위스키... 난 여기서 뭔가 공통점을 느꼈다. 담배맛도 위스키맛도 잘 모르기에 오히려 허상 속의 그 공통점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뭔가 진하고 근사한 향과 맛의 3중주, 그것이었다. 환상속에서 그려보던 남자의 향기라고 해야 하나 맛이라고 해야하나... 위스키가 레시피로 쓰인 이 칵테일은 이 중 세번째의 기대감을 더할나위 없이 충족시켰다.

 

조니워커 블랙이 주연을 맡았다

바텐더는 친절하게도 좀 더 맛이 좋아진다며 레시피 중 하나인 아마렛도 시럽을 추가해 주었다. 아몬드 향이 강한 재료라고 설명해 준다.

"술이 센 사람은 빨대 빼고 그냥 입 대서 마시죠?"

"그렇죠."

절반쯤 잔을 비웠을때 취기가 확 오른다. 꽤나 독한 술.

"마티니보다 더 독한 듯?"

"물론이죠."

무모하게도 나는 빨대에서 입을 떼 곧장 잔에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처럼 멋지게 마셔보겠다는 객기였나 보다. 얼음이 다 녹았길래 다시 채워달라고 했다. 시원함이 맘에 드는 술. 초여름 비에 젖은 날 나른함에 더할 나위 없는 초이스.

"그런데 말이죠, 들어가는 위스키가 저마다 달라요"

바텐더가 말하길, 갓파더도 사용되는 위스키에 따라 여러가지라고. 자신은 조니워커 블랙을 사용했다며 무난한 선택이라고 밝힌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위스키 대신 보드카를 쓰면 갓마더가 된다고... 아무래도 마더는 어디있을까 찾던 중이었다...)

 

혹시 샤아가 마시던 그 술?

기동전사 건담의 다크 히어로 샤아 아즈나블이 바에서 멋지게 술을 마시는 장면, 기억하는가.

그 유명한 대사 '속였구나 샤아!'를 외친 후 산화한 가르마 자비의 영결식이 TV 중계로 흐를 때, 기렌 자비가 "내 사랑하던 동생 가르마는 죽었다 왜인가!"하고 외칠 때가 있다.

그 때 샤아는 훗 하고 웃으며 말한다.

"애송이였거든."

그 때 그가 손에 쥐어 흔들어보이던 위스키 잔에선 얼음이 달그락거렸다. 잠시 후 군부에서 누군가가 찾아와 본격적 용건을 꺼내기 전, "제가 한잔 사죠"라며 비워진 잔을 채우도록 한다. 이 장면은 요새 개구리중사 케로로에서도 패러디되어 흐른 바 있다.

내용전개 여부를 떠나, 그 때 금발머리의 미청년이 우아하면서도 터프하게 얼음 술과 매치되는 장면은 그림 자체가 퍽이나 매력적이었다. 당시엔 막연히 위스키 스트레이트라 생각했는데, 갓파더를 보고선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나는 샤아의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묘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근래작인 건담 이볼브에선 크와트로 대위로 활약하던 에우고의 시점이 나오는데, 또다른 바에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다. 혹시, 내게 바의 문을 열도록 한 것은 그였는지도 모르겠다. 

 

무드, 맛, 달아오른 후의 여운의 3박자를 갖춘 근사한 칵테일

조니워커가 들어가서인지 가격은 조금 세서 7000원. 하지만 마셔볼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번 마티니 이상으로 '성인식'에 대한 근사한 기억을 선사한다.

갓 파더라는 '묵직한' 이름이 그럴 듯 하다. 향기롭고 그윽한 남자의 맛. 바텐더 역시 남성들에게 인기있는 칵테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개의 여성들에겐 세기가 좀 강하다나.

눈도 즐겁거니와, 짤그락거리는 소리도, 마신 뒤 잔을 탁 하고 바에 내려놓는 쾌감도, 마지막 입가심의 레몬도 모두 맘에 든다. 덤이라고 부르기엔 아까운 선물세트.

취기는 천천히, 술잔이 절반쯤 비워졌을때 갑자기 확 느껴져 온다. 하지만 역시나 뒤 끝이 없어 좋다. 다만, 그래도 너무 독했는지 잠깐 배가 아프긴 했는데 딱히 문제가 되는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진장) 늦은 저녁 겸 해서 선지해장국을 먹었는데 위스키 들어간 칵테일에 해장국도 꽤 운치 있네 이거.

폼 한번 가뜩 잡아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 물론 맛도 좋아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한 잔 대접한다면 이 술로 권해볼 생각이다.

아 참, 그리고 왜 이 술을 머리가 아픈 일이 있을 때 그가 권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은 이거다. 딱히 술에 온갖 철학이나 해탈의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새인가 어른의 멋에 저도 모르게 취해 '나도 꽤 괜찮고 멋진 가이'란 기이한 우월감에 위안을 받고 있었달까. 나를 추켜올려주는 서비스에 잠시 기분이 좋아졌던 모양이다.

 

갓파더 (조니워커 블랙)

신촌 바 BM

가격 7000원

촌평 - 달콤하고 강렬한 알콜 사탕. 엄습해 오는 취기와 향기가 매력. 기분전환용으로 좋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