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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바의 칵테일] '어른의 맛' 마티니, 내겐 너무 일렀나

[바의 칵테일] 3. 아직 이른 어른의 맛, 마티니

     

  
     
머리아픈 날, 술을 시험해 봤다

골치 아픈 일이 하나 생겼다. 분류하자니 희.노,애,락 중 어떤 감정 군과도 맞지 않을 법한...

지끈지끈하길래 만사 제쳐두고 밖을 나섰다. 왜 있잖은가. 영화 속에서 잔뜩 인상을 찌푸린채 머리를 비벼대며 바에 들어가 술 한잔 청하는 어른. 아스피린 대신 알콜로, 머리 대신 기분을 달래는 어른 말이다.

알콜에 잠시 의지해보기로 했다. 술을 시험해 보는 특별한 날이다.

 

왕도(王道) 마티니

BM도 벌써 세번째. 이젠 바에 들어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물론 다른 바를 찾을 땐 또 머뭇거리겠지.

이번엔 적당히 독한 유명 선수를 지명해 봤다. 칵테일의 왕도, 마티니. 어떻게 생긴 녀석인가 하고 살폈더니 아주 클래식하고 전형적이다. 무색 투명하고 적은 양의 음료가 깔대기처럼 생긴 글라스에 담겨 나왔다.

"독하죠?"

바텐더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스레 혀 끝에 대고 한모금...

곧장 강한 알콜 기운이 돈다. 달달한 맛의 알콜음료. 어딘가 모르게 소주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소감?

       


     
어른의 맛

"맛없어..."

...뭐여?!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직 이 맛을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애송이란 거겠지.

바텐더에게 물었다.

"마티니가 가장 유명한 칵테일이라던데."

그는 웃으며 "마티니를 잘 만드는 바텐더가 정말 실력 좋은 바텐더"라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마티니를 맛있게 들이키는 사람이 진정 칵테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겠지.

만화 '바텐더'를 보면 마티니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어른이 되면, 꼭 한번 바에 들어가 멋지게 주문해 보고픈 칵테일'이라고. 말하자면 바는 어른의 문이고, 마티니는 어른의 맛인 셈이다. 들뜬 마음으로 성인식을 치르는 젊은이의 상징이랄까.

술잔을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아아, 이것이 어른의 맛인가 라고. 아직은 제대로 잡히지 않는 맛. 오늘은 그것을 맛봤다는 것에 만족해 볼까.

 

은근히 달아오르는 취기... 기묘한 경험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은근하게 취기가 돌더니 역시나 내겐 버거울 정도로 다가온다. 바를 나서서 걷다보니 집중하지 않으면 자세가 옆으로 흐트러짐을 알았다. 희한하게도 바에서 가장 독하다던 지난번 블루몽키스보다 이것의 기운이 더 강했다.

옛부터 술 마시는 어른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취하기 위해서"란 말이었는데, 현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꼭 내가 그 꼴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이것이 나름 매력이더라. 속이 쓰리다거나 뒤끝이 있는, 토하고 싶은 그런 불쾌한 느낌의 취기가 아니라, 무색 투명하던 그 음료의 이미지 그대로 깔끔했다. 머리를 휘젓고 있는 그 알콜 기운 말이다.

소기의 목적은 복잡한 머리를 잠시 정화하고 편안해지는 거였는데, 이제사 그것이 의도했던것과 조금은 다른 모양새로 이뤄지고 있다. '잠시 잊는다'가 아니라, 사람을 담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앞에 가로막힌 장애에 골머리만 썩힐게 아니라, 이왕지사 부딪힐 거 긍정적으로 맞이하는게 더 현명하겠다라고 마음 먹을 수 있는 막간의 여유가 찾아온다. 가슴 한 복판은 뭔가가 뭉쳐 뜨거워지고, 머리는 차가워졌다.

    


안의 열매는 올리브. 마지막에 입가심용이다. 무지 짭짤한게 꼭 데낄라의 소금 같다.


어른의 계단

아쉽게도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없었지만, 보너스인지 이게 진짜배기인지 하여간에 이후의 그 기이한 경험은 마티니가 내게 건네는 유용한 선물이었다. 하루하루 일과에 치이며 숨죽이고 살아가다 한잔하는 어른에게 꽤 괜찮은 위안거리가 아닌가.

그리고 아직 세상살이에 익숙치 않아 여기저기서 잔고장이 나고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젊은이에겐, 꼭 한번 내뱉고 싶던 어른의 깊고 과감한 숨 한모금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거꾸로 혈기왕성한 지금의 자신을 또한번 확신할 수 있는 한잔이 되려나? 당신, 머리가 아픈 것 같아서 마티니 한잔 권하는데 어때? 꽤 괜찮은... 경험이 아닐까.

 

마티니

바 BM (노멀 외 애플, 에메랄드 등 마티니 3종 있음)

가격 - 6000원

촌평 -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고 싶을 때, 머리는 식히고 가슴은 뜨겁게 달구고 싶을 때 권한다. 조금 독하니 초심자는 고려할 것.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