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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노짱 보낸 다음날, 바에서 마신 첫 칵테일 '섹스온더비치'

[바의 칵테일]1. 노짱 보낸 다음날,바에서 마신 첫 칵테일
'섹스온더비치' - 신촌 '바 BM'

 

색깔이 아름답다. 첫 칵테일로서 근사했다...


난, 언젠가 특별한 날에 바에 찾아가 칵테일 한잔을 마셔보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자신과의 소박한 약속이었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 마셔봤다던지 음료판매점에서 무알콜 칵테일을 홀짝였던 경험은 있지만 홀로 바의 문을 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 나도 이젠 어른이 됐다는 것을 자축하는 즐거운 기다림이었지. 뭔가 행복이 찾아왔다던지, 뜻깊은 경험을 했다던지, 아니면 알콜에 기대보고픈 슬픈 날에 꼭 찾아가 보자 하며 기다려왔었다. 아울러, 칵테일과 함께 하는 바의 탐험기도 함께 연재하겠다면서.
그런데, 그 날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난 다음날이 될 줄이야.


[바의 칵테일]1. 노짱 보낸 다음날,바에서 마신 첫 칵테일
'섹스온더비치' - 신촌 '바 BM'


신촌에 위치한 바 'BM'이 나의 첫 바가 됐다. 맘먹고 돌아다니다 바깥에다 '칵테일 5000원'이라 내다 걸어놓았길래 부담없다 싶어 들어섰다.
솔직히 말해, 정말로 부담없이 들어서진 못했다. 난생처음 술을 마시러 홀로 바에 들어서는 것이(행사 때문에 바에 들린 적은 한번 있었다) 슈퍼마켓 들어서듯 쉽진 않더라. 원체가, 중국집 들어설 때도 두리번 거리는 쑥맥이라서 말이다.
메뉴판을 받아들고서 첫 칵테일은 뭘로 할까, 누구 말대로 마티니로 정할까, 아니면 올드팰로 할까 하며 리스트를 살폈다. 정황상 여러모로 올드팰이 무난한 선택일 듯 했는데... 아쉽게도 이 바엔 올드팰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티니로 하자니 초심자에겐 어렵지 않을까도 싶고. 
해서 바텐더에게 괜찮은 칵테일을 물었다. 이 곳의 간판메뉴가 '블루몽키즈'라는 말을 듣고서는 "그래서 바의 이름이 'BM'이구나" 하고 넌지시 가늠했다. 그런데 이건 또 마침 여분의 잔이 없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다행히도 이곳 바텐더는 내 사정을 여러모로 잘 짚더라. 난 그때 목이 말랐고, 또 가격에 비해 양이 많은 걸 선호하는 서민이다. "양 많은 걸 드릴까요 아니면 진한걸 드릴까요"라며 친절히 물어주기에 전자를 선택했더니, 그가 권한것이 바로 섹스온더비치였다.
"외국인 손님들이 주로 찾는데요, 아하하. 우리나라 분들은 이름에 혹해 주문을 많이 해요."
메뉴판엔 '해변의 정사처럼 금새 자극이 오는 칵테일'이라고. 너무도 친절한 설명이 아닌가. 전날 그의 영결식과 노제 현장에서 전해받은 울적한 기운을 씁쓸히 달래며 마시기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이름이었지만, 뭐 어떻겠나 싶어 받아들였다.



진한 핑크빛과 잘 빠진 글라스, 노란색 스트로우. 여성스런 느낌의 칵테일이 손안에 들어왔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마침 지난1월 릴레이인터뷰(http://kwon.newsboy.kr/1062)로 접했던 칵테일전문 블로거 네오타입 님(http://darkone.egloos.com)이 소개한 적 있는 칵테일이었다. 역시 '여성들에 인기있는 칵테일'이라고.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입을 축여봤다. 


보이는 것의 이미지와 꼭 맞아 떨어지는 첫 맛

음미해보니, 보여지는 색과 모습에서 구성되는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 맛이다. 새콤한 과일의 주스를 연상케하는 맛과 초심자도 부담없을 정도의 알콜농도가 목넘김을 편하게 돕는다. 아니나다를까, 네오타입 님의 소개글에서 밝혀진 재료는 피치 브랜디, 오렌지 주스 등 과일 음료가 상당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메인 주류는 보드카. 자세한 레시피는 네오타입 님의 (http://darkone.egloos.com/771380)을 참조할 것.


이미지속 해변에서 찾아온 여인은, 이성의 파트너가 아니라 모성의 안식처였다

내가 느낀 것은, 입에 감기는 적당한 응집력과 상큼한 과일향이 기분좋은 알콜음료였다. 이름은 격정적인데, 당최 이 쪽엔 조예가 없어서인지 이와는 조금 다른 이미지가 손에 잡혔다. 한모금 한모금을 즐기는 지금, 정말로 내 상상속에환한 해변가가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면, 또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멋진 여인이 다가와 주고 있다면, 아마도 그 여인은 내게 '섹스온더비치'가 암시하는 성적 교감이 아니라, 사뭇 다른 느낌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스킨쉽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극이 아니라 치유. 허탈하고 공허한 상실감에 축 늘어진 한 남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는 모성의 배려였다. 그리고, 잠시 슬픈 표정을 숨길 수 있도록 품에 머리를 묻을 수 있게 허락한다. 부드러운 목넘김은 하얗고 포근한 그녀의 목덜미일지도. 하얀 셔츠와 짙은색 바지 차림으로 금욕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자, 그리고 그를 포근히 감싸는 여인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그건 섹슈얼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결국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 뜻밖의 칵테일에게서 바라마지않던 잠깐의 위안을 얻은 것이었다.


하나의 갈증이 해갈되고 대신 근사한 건조감이 남았다
   
내가 이날 마신 칵테일은 이게 전부. 값을 치르려 일어설 때 "대개의 손님들은 몇잔을 마시고 일어서나요?"하고 묻자 "넉잔 정도"라는 대답이 들어왔다. 그래도 "한 잔 마시고 일어서는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앞으로는 부담없이 '진짜 한잔' 하러 바의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딱 한잔이었지만, 고맙게도 육신의 갈증은 말끔히 해갈되어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찾아오는 취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슴 속에 뜨거운 불 하나를 지피고 있었다. 마실 때의 차가운 기운을 계속 유지해 무더운 밤의 피로를 달래는 것과는 또다른 기분이다.
또 하나 매력적인 것은 뒷맛이 남지 않은 점. 입안은 말끔히 정리정돈되어 있다. 갈증은 가셨건만 입 속은 건조한 것.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또다시 갈증을 수반하는 메마름으로 통한다거나 하는 부작용을 낳진 않는다. 그 건조함은 청결하게 건조 유지되는 유리글라스를 연상케할만치 깨끗한 입가심을 선사하고 있었다.


섹스온더비치 - 쉐이크
바 BM - 신촌 엔터 옆 골목 건물 지하 1층
가격 - 6000원

촌평 - 부담없는 가격, 부담없는 맛과 도수. 초심자까지 아우르는 차가운 과일맛의 포용력과 뒤끝없는 개운함이 맘에 든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