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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노무현 대선후보' 7년전 군대에서 본 야인의 회고록

[오아시스]군대에서 바라봤던 노무현 '02 대선 후보'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쇠굴레' 철원의 겨울바람은 칼끝만큼이나 따갑다. 하물며 육공트럭 뒤에서 맞는 바람은 오죽하랴. 살갗이 빨개지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작업 때문에 나가는 거라면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테지. 하지만 마음 속에선 묘한 설레임이 감돌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이 나라 지도자를 뽑는다는 멋진 첫경험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57. 군대에서 바라봤던 노무현 '02 대선 후보'

 

2002년은 여러모로 뜻 깊었던 해다. 월드컵이 있었고, 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해를 살던 고향이 아닌 군대에서 보냈다. 천리한양보다 더 먼, 말로만 듣던 철원에서. (정확히 말하면 철원과 포천의 경계) 하하, 일기예보에서 겨울이면 가장 먼저 뜨는 그 고장이니 말 다 했다. 눈 구경을 2년에 한번씩 하던 부산사람에게 영하 20도 이하는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거기서 3번의 겨울을 난 덕에 이젠 춥다고 하는 서울생활에도 익숙하다.

한국사람에겐 각별한 추억이 담긴 저 해를 철원에서 군인으로 보냈다니 곧장 '불쌍하네'란 동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확실히, 월드컵 당시 여러 애환이 있긴 했지. 그 이야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지만,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바라본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는 사회인들이 겪지못할 또다른 추억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부모님이나, 고향친구들이 아닌 전국팔도에서 모인 군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뤘기에 각별한 추억이다.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던 12월, 나는 막 '꺽인' 병장이 됐고 내무실장이 된지는 꽤 됐다. 고달픈 하루살이에서 벗어나 조금은 병영생활 전반을 넓은 시점으로 둘러볼 수 있던 시기다. 군대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더니, 지역감정에서도 꼭 들어맞더라. '상도'(경상), '라도'(전라), '기도'(경기), '원도'(강원), '청도'(충청) 등으로 서로를 불러대며 훈련 및 작업시 힘자랑을 했던 걸 보면, 확실히 젊은 군인 사이에서도 묘한 지역감정은 있는 모양이다. 투표를 앞두고서도 서로의 출신을 되묻는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사회에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과 비교해보면 거기에선 아무래도 동지애가 우선인 듯, 그땐 그저 '친선게임' 양상으로 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이들에겐 지역감정을 넘어서는 특이한 동감대가 흘렀다. 그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에 유리하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었으니...

"난 자식 군대에 안 보낸 사람은 절대 안 뽑아"

"내 표 못 줘."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는 것이었다. 쌉싸름 달콤한 맛을 거의 다 본 병장들도, 한숨 푹푹 나오는 이등병, 일병들도 매한가지였다. 5년전 대선에서도 발목이 잡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여기서 더 불거져 보이는 것이었다.

반면 사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모습은 앞서 치뤄진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선전과 겹쳐 보였다. 시간을 조금 'rewind'해서 경선 당시, 노무현 경선 후보는 이인제라는 강력한 적수에 비해 어째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라는 느낌이 다분해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20%가 넘는 득표율을 과시했고, 웅변에 있어서도 한 카리스마 하는 그에 비해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후보는 매번마다 바보같이 지역텃세를 앞에 두고 출마, 번번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탈락하는 사람이었고 대선 경험은 전무. 마이너리그(?)에서도 승률이 낮은데 메이저리그 첫 출전에서 경선통과나 가능하겠는가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유명한 '아내를 버리느니 대통령 후보 포기하겠다'는 연설로 일발역전을 시키게 된다. 마침 나는 위병소 근무를 했던터라 간부들이 놓고 가는 사제 일간지(국방일보만 아니면 만사 오케이였다)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거기서 접한 그의 분투기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결국 그는 경선에서 승리, 본선에 나섰고 이는 꼭 경험많은 강팀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거침없이 질주하던 한국팀을 연상케 했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이를 언급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더라.

객관적 약자가 기존의 강자들을 차례차례 물리친다는 대하드라마적 스토리는 마침 드라마에서도 등장했으니, 장병들에게 화제였던 SBS 드라마 야인시대였다. 마침 선거 직전, 드라마는 청년 김두한 안재모가 뭉치에 이어 신마적을 깨버리는 데까지 닿았던 걸로 기억한다. 20대초반은 이같은 영웅 스토리가 잘도 먹히는 시대였고, 투표에 있어서도 '아들래미 군대 안보낸 아저씨한텐 표 못 줘'라던 우리에겐 그가 우리의 울분(?)을 대신 풀어줄 대표선수로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누가 여론조사하자고 나선 것도 아닌데, 어느샌가 막사에선 내무실이나 출신지역을 떠나 "그 양반 싫어서라도 그 양반 뽑는다"라던가, "그 사람 뽑을 겁니다"라는 여론이 절로 흘러나왔다.

드라마같은 스토리는 선거 전날 밤까지 지속됐다. 그 때 우리 내무실은 일직사관 허락없이 11시 넘어서까지 TV를 켜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MBC에서 뉴스특보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후보단일화에 조인한 정몽준 후보가 갑자기 지지를 철회한다는 성명을 꺼내는데, 일순간 내무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정말이지, 막판까지도 응원해주기엔 너무 첩첩산중인 당신이었다.

그 때 후임들의(풀린 군번이라 내무실장을 100일가량 했다) 반응은 기묘했다. '이게뭐야'라던지 반대로 '잘됐다' 같은 반응이 당최 나오질 않고 그저 무거운 침묵만 흐르다 하나둘 취침했다. 누군가 "끝났군"이라 되뇌인 걸로 기억하는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를 줄곧 응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그 날의 특보는 드라마의 절정에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수순이 됐다. 

맑고 추웠던 다음날 오후 우리들은 육공트럭을 타고 민가로 행했다. 천막을 씌우지 않아 굉장히 차가운 바람에 덜덜 떨면서 직행했다. 투표에 필요한 서류와 각 후보의 유인홍보물을 출발 전에 받았는지, 동송에 설치된 투표장에서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 투표사무소 바깥까지 줄줄이 이어졌던 군인들의 광경이다. 다들 처음으로 행사하는 투표권이라서일까, 명령때문에 마지못해 나왔다는 투정은 아무도 흘리지 않았다. 저마다 용지를 꺼내어 '당신의 한표를 절실히 원합니다'라 부탁하는 각 후보들의 프린트물을 유심히 살펴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누구를 뽑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참견할 일도 아니다. 그저, 투표에 신중히 임하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아름다워보였다.

다른 후보들의 홍보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후보답게, 노무현 후보는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는 대통령'을 컬러 유인물 속에서 내비치고 있었다. 권위적 대통령 후보의 모습과 완전히 결별한, 털털한 아저씨같은 남자. 생각해보니, 군의 권위적 체계를 2년간 경험한 나에게 있어 이는 상당한 호감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를 뽑았다. 앞서 선택을 내렸지만, 또 한번 망설이다 주저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박빙의 승부에서 내 표가 사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실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전부터 잘 아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내 맘이 가는 사람에게 내 인생의 첫 표를 던져주고 싶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여기 군인들이 정말 입 밖에 내던 것처럼 그에게 표를 줬는지 여부는 자신만이 알 일이다. 하지만 엎치락 뒷치락하는 살얼음판 소식을 접할 때 그들의 반응에선 '아하! 역시나'라 짐작할 법한 표정과 제스처가 읽혔다. 그리고 결말이 나자, 누군가가 웃으며 그랬다. "군대 안 보내고서도 당선됐으면 억울해 뒤져버렸을 것"이라고. 결국 그 해, 우리들의 대통령선거는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 청년이자 울분섞인 군인으로서 맞이한 해피엔딩이었다.

다음날,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내가 처음 동참한 대통령 선거에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이 조금은 기뻤나보다. 당일 위병소 당직을 맡은 정훈부 상사는 씨익 웃더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두고 이렇게 말하더라.

"그 양반은, 야인이야. 언제나 야인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야인이란 항상 어둠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거든. 왜 야인시대라고 하는데. 이젠 진짜 야인시대야."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정말 야인으로 살았다. 최고 권력자가 됐음에도 항시 거대한 언론권력과 싸웠고 언제나 강자가 아닌 약자로 지냈다. 그러나 그렇기에 탄핵 시국에선 대중들이 그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 가는 길을 대중들이 나서 밝혀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20대를 수년간 뒤흔들었던 야인시대의 추억은 이렇게 드라마처럼 시작해, 드라마처럼 종지부를 찍고 있다. 정말 바보처럼 떠나버린 '바보 노무현'의 2000년대는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야인시대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