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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비와 눈물의 오체투지 순례 21일 서울 현장

비와 눈물의 오체투지 순례  
서울 적신 21일 순례 현장 


 

쏟아지는 비에 "혹시나"했던 것이 미안하다. 그들의 순례는 빗길도 막지 못했다. 땀에 젖고 차가워진 체온에도 그들의 순례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끝까지 나아간다. 고행의 길에서 그들은 목적한 바를 이루고 있었다.

 

비와 눈물로 서울 적신 오체투지 순례 - 21일 순례 현장

    


  
오후 2시 10분, 시청 앞 - 비를 뚫고, 무언가를 초탈한 철인들이 간다

예정대로 그들은 시청 앞에서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그리고 조계사로. 몇걸음 걷다 젖은 바닥에 누워 세상에 인사한다. 몸의 다섯부분을 땅에 닿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무한의 예의를 다하는 불교의 인사. 그것이 바로 오체투지.

앞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이 있다. 그 뒤엔 이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인사를 계속하는 이들도 있고, 도보로 행하는 이도 있다. 스님들이 있고, 속세인도 있으며, 외국인도, 장애인도 함께 하고 있다.

       
     
순례단을 이끄는 3인의 표정은 미묘하다. 그 무표정함은 언뜻 보기에 피로함으로 다가오지만, 또 한번 보면 이를 초월해버린 철인의 그것으로도 느껴진다. 순간순간 휴식을 취할 때면 따뜻한 음료로 내려간 체온을 채우거나 수건으로 빗물과 땀을 쓸어내리며 정말 옅게, 그리고 한순간 인간적 느낌을 표출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말 잠시.

 

2시 30분, 광화문 앞 - 108배, 시민들도 눈물로, 마음으로

"108배를 하겠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108배? 108배라니. 갈길을 재촉하지 않고 여기서 그것을 행하겠다는 건가.




정말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징이 울릴 때마다 오체투지 한배 한배를 올린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시민들의 시선이 늘어갔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이 나누는 고행을 바라본다. 한 외국인이 이 광경을 보며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인다.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 "오체투지 현장에 있는데..."라며 상황보고한다.

     
  
바닥에서 그 누군가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 한 스님의 손 끝이 파르르 떨린다. 대체 그 무엇을 위한 것일까. 침묵 속에서 오로지 고통스러워 보이는 행동으로 무언가를 전해 보이려 하고 있다.

갑자기 한 시민이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며 이들과 함께 교감하는 시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믿을 수가 없다는 첫 표정은 따스한 무언가로 경직이 풀려간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들도 어떠한 감정의 선을 타기 시작한다. 속세의 념과 불가의 가르침, 그리고 이에 동참한 천주교 신부의 동조가 조용하고도 강력한 파문을 저마다의 마음속에 일으킨다.

30분가량 지속된 뒤 108배는 끝났다. 세어보지 않아 정확히 몇 배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시간상으로 봤을때 108배를 채우기엔 어렵다는 생각 뿐. 그러나 실 숫자가 얼마나 그에 근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일 신호를 울리는 징소리가 108번을 넘어 109번 울렸다면 말없이 그에 따랐을 이들임을 알고 있기에.   

 

3시, 광화문 청계광장 - '촛불 성지'에 도달

     
  
사진만으로 많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촛불 1년의 광화문에, 청계광장에 그들이 닿았다. 이들이 전하는 묵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한다면 그 함축 속의 상당수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패리스크로이상 앞에 닿았을 때, 마침 매장내에서 거리로 흘러나오던 느린 재즈음악이 순간 이들의 풍경과 묘하게 매치됐다. 빗속을 뚫는 고행의 길에 센티멘털한 재즈가 내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착각을 가져온 것이었다.

 

3시 30분, 교각 넘어 종각으로

행렬은 쉬지않고 걸어... 아니, 기어갔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그들도 질세라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서울 도심가를 수많은 이들이 가장 낮고, 가장 느린 행렬을 이뤄 나아간다.

     
       
사람, 생명,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길,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은 길이지만 그럼에도 외로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결국 저마다 혼자만의 고투를 펼치는 것이라서일까. 종각은 이제 머지 않았다.

 

4시 10분 조계사 앞 -  침묵의 전진

드디어, 법복 등을 판매하는 불가의 상가거리에 닿는다. 여기저기에 환영 플랜카드가 설치돼 있다.

     
   
행렬 끝에서부터 3인의 리더 앞까지 주욱 훑어본다. 비와 땀에 흥건히 젖은채 지쳐버린 육신의 무거움도 이젠 이골이 난 것인지 아니면 무감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미 한참전에 초탈해 버린 것인지. 누구하나 지친 숨소리 내지 않는다. 진정한 침묵의 전진.

이젠 그 전진도 마무리할 때가 됐다. 드디어 조계사가 보인다. 마중나온 이들이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108일간의 대장정, 그 말로 이루못할 시간을 어루만져주고자 함인가.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웃으며 인사를 나눌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고행 끝에 선 성자가 도로 위에 흘리는 것은 무겁고도 쉽게 접하지 못할 완성 직전의 신념.

     
   
그리고, 드디어 조계사 입구에 들어선다. 침묵의 순례단과 침묵의 마중단. 시대의 눈물을 보는 연과 연의 극적인 촉감은 이렇듯 초감각의 극점에서 섬세하고도 확연하게 성사됐다.

 

4시30분, 조계사 - 진흙투성이 순례, 참았던 눈물이 씻어주네

       
     
아스팔트의 딱딱함은 사라졌지만 대신 물먹은 진흙을 감내한다. 어느 것이 그나마 더 나은 것일까. 아무래도 좋은 것일까. 그들은 변함없었다. 몇걸음 걷다 오체투지하고, 또 일어서며 하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저 옆에 부처님이 바라보고 계신다. 이들은 그 앞에서 조계사를 한바퀴 돌며 대장정의 매듭을 짓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이제 한번만 더... 그리고, 그렇게 빗속의 순례를 매듭짓는 손가락은 실에서 떨어졌다. 진흙으로 사지도 배도 얼굴도 얼룩진 채 그렇게 천천히 일어서는 사람들.

       
     
일정이 마무리됐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그제서야 침묵의 적막이 깨어진다. 박수와 환호가 장내를 울리고, 순례단은 드디어 희노애락의 '사람'으로 돌아왔다. 감정의 스위치가 켜지듯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수고많았다'란 말은 필요없었다. 그저 꽉 끌어안고서 흐느꼈다.

눈물을 왈칵 쏟는다.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을 부처님 앞에서 맛본다. 눈물을 쏟지만, 표정엔 미소가 만연하다.

오체투지 순례단을 환영하며 열린 시국법회에서 스님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당신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씀을 하셨다"라고. 정말 행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그 때문에 어떤 입술의 말보다 명확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을 정직하고 확실한 전달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