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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블로거기자들, 심야에 수상한 박스 들고 뒤뚱댄 사연

[에필로그] 블로거기자들, 심야에 수상한 박스 들고 뒤뚱대다


# 이 기사는 (http://kwon.newsboy.kr/1192), (http://kwon.newsboy.kr/1193), (http://kwon.newsboy.kr/1194)의 취재 후기입니다.

 

날짜가 바뀌어 일요일 자정 0시. 블로거기자들이 박스를 들고 뒤뚱댄다. 

"선물 받고 이리 부담스러운건 또 처음이네."

"글게요."

(블로거)기자가 '선물'이라 지칭하는 박스를 들고 심야의 거리를 내질러? 이거 참 수상하네요.

 
 
 
  말로만 듣던 사과박스?!!!! 실제로 두 알이 들어있긴 했다. (배도 두알, 오이도 두개)  
 

서울 양재동 밤거리. 세 남자가 낑낑대며 상자 하나씩을 들고 뒤뚱뒤뚱 걷는다. 한 사람이 미디어몽구, 한 사람이 월간 말의 조문식 기자,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글 쓰고 있는 본인이다. 인터넷 저널리스트들이 사과상자 비스무리한 선물박스를 들고 야심한 거리를 활보한다? 대체 이거슨 무슨 연고란 말인가? 기자? 그리고 상자? 허헉 설마? 워낙 하수상한 세상이라서 말이지. 

에라 우리만 독박 쓸 순 없지. 시각을 30분 뒤로 돌린다. 양재역 거리에 내리기 직전, 전세버스 안엔 본인 포함 13인의 저널리스트들이 타고 있었다. 고재열 독설닷컴 기자, 아프리카TV에서 명성을 떨친 비디오자키 라쿤, 정운현 테터앤미디어 대표... '기타 등등'.(기술하고 싶어도 명함 교환 내지 통인사 한 사람이 더는 없다 - 하긴 이 분위기에선 이름 안 밝혀지는게 나을려나)

그리고 이들 모두 한 박스씩 챙겼어요. (. . .이거 쓰고나니 진짜로 무슨 내부고발 내지 물귀신작전 플러스 커밍아웃 분위기같군)

자아, 모두에게 의심의 화살이 돌아갔으니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뭐여) 이야기를 속개한다. 사전 설명을 하자면 우린 토요일 서울서 충남 금산으로 당일 취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위에 링크 걸어놓은 본 취재 보도 3건을 확인하면 이해가 빠를터이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취재가 몇탕 연속된 데다 일정이 빠듯했고 예상시간보다 지연되기까지 한터라 일행이 서울 강남 종착지에 닿은 것은 자정이 다 되어서다. 차가(지하철) 똑 끊어진 상황에 절묘하게도 닿는다. 아아,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강남이라... 내 스위트홈은 강서지역이란 말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험난해진 복귀길에 뜻밖의 미션이 추가됐다. 이번 취재의 대상이자 취재길을 지원한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벤처농업대학, 그리고 농어민 여러분들의 인심이 워낙 푸짐했던터라, 우리농산물 홍보 좀 잘 해달라는 바람을 담아 기념선물 한 박스 씩을 우리들에 안겨준 것.

이쯤하면 '현물이라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취재현장서 뭔가 받은 건 사실이로군'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더 날카롭게 뜨는 독자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직설화법 그대로 '받아 적자면' 진짜로 '받아 먹었다' 이 말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말 그대로 '먹는' 것들이니까요. 앞서 밝혔듯 이 상자의 정체는 농산물 상자다. 출발시 관계자가 '농민분들이 준비한 성의'라고 예고하더니, 나중에 뜯어보니까 아마도 졸업식 행사에서 기념으로 마련됐던 선물 중 여분이었던 모양이다.

미리 말해두건대, 기자는 촌지 봉투라던가, 종이로 된 배추잎파리가 든 상자를 주고받는다던가 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또 이에 절대 현혹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살아간다. 다만, 본지 기사에서 밝혔듯 서울에서 블로거단이 농어민CF 취재를 위해 금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절한 마음으로 찾아왔다는 농어민들의 피땀어린 산물이기에, 또 이 정도는 사람끼리의 마음으로 받아도 된다 생각했기에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 푸짐한 선물이 부담스러워졌단 말이지. 그새 살짝 열어본 몽구 님 말로는 시가 5만원어치가 넘을 것 같다는데... 난 그보다 우리가 짊어진 이 무게가 더 궁금했단 말이지. 담겨진 정성만큼이나 겁나게 무겁다. 내가 "이거, 블로거뉴스 일상다반사 코너에 올릴 법한 취재감"이라 말하니 몽구 님과 조 기자님 모두 웃더라. 헌데 진짜로 쓸 줄은 몰랐을걸? 

지금은 웃고 있지만... 아, 그 때도 웃었구나. 하지만 그래도 워낙에 대략 난감한 상황이라서... 쓴웃음이 함께 배어나왔다. 

"버스는 다닐텐데..."

"짐 있다고 안 태워주는거 아녀?"

이 사람 저 사람과 작별인사하고, 동행했던 라쿤 님과도 헤어지고, 걷다보니 한 여성 블로거는 어떤 연유인지 두개씩이나 벽에 올려놓은채 기대 쉬고 있다 씨익 웃을 뿐이고, 그렇게 서로의 행운을 빌며 우리 세 사람은 걷고 또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게 버스는 아직 다니고 있었다. 집까진 못가더라도 최대 인근 포인트까진 가고 보자는 귀소본능으로 우린 버스를 잡아탔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에 여차하면 '이거 폭탄물 아니거든요'란 멘트까지 준비하며 탑승. 그러고보니 이거 꼭 호러슈팅 게임에 나오는 보급물자 아이템 처럼 생겼네.

몇정거장 지나 하차. 거기서 각자의 길로 다시 환승하며 드디어 혼자가 된다. 몽구 님과, 또 조문식 기자 님과 또 한번 무사 복귀를 서로 빌며 박스를 들쳐맸다.

뭐... 집에서 지하철 일곱 정거장 정도 떨어진 인근(?)까진 닿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택시를 잡고, 여차저차 다시 뒤뚱대며 집으로 걸었다. 혹 승차거부가 있으면 겸사겸사 취재감 삼아볼까도 했지만, 택시기사아저씨 왈 "이제 서울엔 그런거 없다~"

집에 도착해 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 3시다. "너 도대체 몇 킬로인가효"하며 박스를 체중계에 올려 본다. 역시나, 아니... 기대 이상의 결과에 그만 식겁했다. 무려 12.3킬로그램이 측정되질 않는가. 이이... 이러니까 고생했지. 

 
 
  오오, 이거슨 진정 체력을 만땅으로 채워주는 아이템. 삼국지 천지를먹다2의 바닥을 나뒹구는 고기가 안 부럽다!  

하지만 뜯어보고선 화색이 돌았다. 쌀! 그것도 프리미엄!(난 청결미만 먹고 살아요) 홀로살아본 사람만이 쌀의 소중함을 안다! 게다가 백숙, 오오 구기자 백숙 팩... 이래저래 쓰임새 많은 간장! 그것도 유기농!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과, 배 등의 과실도 들어있다.

'사과를 먹으면 예뻐진대요'를 흥얼대며 잠자리에서 사과 한알을 먹고 그대로 뻗었다. 마치 행군 다음날 아침의 노곤함을 음미하듯 그렇게 정오 넘어서까지 취침.

부담스러울정도로 큰 선물 보따리에 새삼 감격해 본다. 게다가 맛보니 역시나, 부탁하지 않아도 국내 농가의 산물을 홍보 안 할 수가 없다. 오늘 점심때 동봉됐던 백숙을 끓여 보양했더니 속이 뜨겁고 또 오래도록 든든한 것이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다. 한동안 무기력했던 청춘이 집안 기둥이라도 붙들고 힘쓸만치 원기회복했으면 말 다했지 뭐. 자아... 이만하면 바람대로 선물값은 했습니다?

기자는 본 기사 중 '오아시스'에서 '난 차마 도시를 버리고 농민으로 살 자신이 없기에 그들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날 선물은 그들이 자식농사만큼이나 공들인다는, 그 존경의 근거물들이었다. 도시의 이 젊은이는 늘 빈곤하게 살다 모처럼 부담스러울만큼의 선물폭탄을 체감했고, 간만에 허기졌던 심신에 활기를 얻었다. 이 쯤하면 백장의 보도자료보다도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고 고맙고 또 감동적인 홍보 자료가 아닌가.   

여기서 '우리 농산물을 애용합시다'하면 거 되게 뜬금없는 작문일테지. 하지만 이거 말고는 딱히 수습할 거리도 없고. 정말로, 처절한 마음으로 해외농업과 경쟁하고 있는 저들에 존경심을 담아, '우리 농산물 사랑합시다'를 마무리 말로 끌어온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