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협상 타결 1년, 지난해 4월의 이야기
쇠고기 촛불 정국 1년, 다시 보는 이야기 (2)
쇠고기 촛불 정국 1년, 다시 보는 이야기 (2)
2008년 4월 18일, 각 언론은 급보를 내보내기 바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한미 쇠고기 협상 보도 타이틀은 곧장 그간의 '임박'을 '타결'로 바꿔달았다.
지난 1년간 이어진 모든 파문의 서곡이었다.
[기획] 쇠고기 촛불정국 1년, 다시보는 이야기
- 2. 쇠고기 협상 타결 1년, 지난해 4월의 이야기
4월 18일 쇠고기협상 타결 속보... 불안한 4월
한미 FTA 타결이 2007년 4월이었으니까 쇠고기협상은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4월의 사건이었다. 쇠고기 문제는 FTA 당시에도 쌀과 더불어 초미의 관심사였고, 이에 앞서 4월 총선을 전후해선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쇠고기 수입 반대를 줄곧 외치며 국민들의 주위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전배경 외에도 달고 나온 논란성이 다분했었던 타결 소식이었다. 우선 총선이 끝나자 마자 곧장 '뜬금없이' 터져나온 협상이라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협상 개시 소식이 타결 소식으로 이어지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불과 일주일 가량. 후일 줄곧 '졸속협상'이란 비난이 터져나온 것은 무엇보다 이 짧은 기간의 이유가 주효했다.
FTA타결 당시에도 쇠고기 수입은 쌀 수입 제지와 더불어 초미의, 최고의 관심사였다. 쌀이 한국인의 주식으로서 농민경제 및 국민식생활에 직결되는 문제였다면 쇠고기는 광우병의 위험성이 무엇보다 크게 수반된 문제였다. 그런데 이것이 미덥잖은 '30개월' 꼬리표까지 달고 나왔으니 처음부터 새정부는 무리수 중의 무리수를 강행한 셈이었다. 정권교체 불과 2개월만의 초강수.
이명박 대통령은 이 강수를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며 자찬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불도저 정신'의 첫번째 치적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계산은 오차범위를 한참 벗어나기 이른다.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이 불을 뿜기 시작하면서 먼저 국민과 소통부터 하지 못한 것이 과오임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다.
폭발 도화선 PD수첩 4월 29일 방영
4월 29일,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방송을 방영하기에 이른다.(관련보도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2942)
당시 PD수첩은 마침 시청률에 있어 호기를 맞고 있었다.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대하드라마 이산의 화요일자 방영에서 곧장 이어지는 편성이었다.(이후엔 이산 역시 줄곧 쇠고기파문 풍자 여부로 회자됐고 앞서 편성된 뉴스데스크 역시 불이 붙으며 MBC의 골든트라이앵글 화요일이 탄생한다)
기자가 그 방영분을 본 건 우연이었다. 마침 뒤늦게 재미를 붙인 드라마 이산을 보다가 채널을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접한 것. 논란 중이었던(물론 당시의 것은 이후의 정황에 비한다면야 미미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10여분이 흐르자 기자는 곧장 컴퓨터를 켜고 실시간 기사작성에 들어갔다. 방송모니터와 홈페이지 게시판 현황, 이를 정리하는 기사작성까지 동시에 움직이는 작업을 하면서 "틀림없이 내일이면 엄청난 파문이 몰아친다"는 감이 왔다.
방영 내용은 충격적이기 그지 없었다. "국민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정부는 자세한 이야기를 밝히지 않는다"는 이날 방송의 베이스는 훗날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그렇게 후회하고 국민들 역시 오늘까지 토로하는 '소통 부재'의 목소리를 앞서 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우병에 대해 이렇다할 '상'이 그려지지 않았던 이들에 있어 이날 방송에서 보여주는 영상, 국내외에서 진행된 다수의 인터뷰, 송일준 이춘근 김보슬 PD와 손정은 아나운서 등 각 진행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얼마 후 숨진 고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관련보도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3515)은 "가축방역협의회가 부재했던 졸속행정" 등을 주장했고 자신은 장관 자리에 있을 때 미국의 쇠고기 협상안을 놓고 "그건 당신들의 욕심이고 바람이지..."라며 우리 입장을 강경히 고수했음을 주장했다. 시청자, 네티즌들은 이후 PD수첩에서 5월의 쇠고기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줄곧 박 전 장관과 정운천 당시 장관을 비교대상으로 올렸다. 현재 농림부의 PD수첩 명예훼손에는 이 때의 것이 상당수 반영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현재 체포된 김보슬 PD는 그날 방영분에서 "미국인들은 어느때보다 쇠고기에 불안해하고 있다"며 현지에서조차 광우병이 공포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었다.
강기갑 의원은 인터뷰에서 "선거에 밝히면 표 떨어지니까"라고 간략히 요약주장했다. 총선 직후 급히 이뤄진 것에 대한 평가다.
마이클 핸슨 미 소비자연맹 수석연구원은 이후 '나쁜 기집애 오아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던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에 "과학보단 정치에 기반을 둔 것"이라 밝혀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앞당기기도.
당시 진행자였던 송일준 PD의 클로징멘트는 결정타. "훗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기를"이란 말은 쇠고기 협상에 대한 PD수첩의 결론이었고 이것은 그대로 시청자들에 받아들여졌다. 6월까지 전국을 활활 타오르게 한 촛불정국의 불을 켜는 순간이었다.
이날 시청률은 8%대가 넘는 수치로 심야방송으로선 높은 기록이었다. 1시간여의 방영시간동안 홈페이지(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 게시판에 오른 의견만 1천건이 넘었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게시판은 성황을 이뤘다. 다음 블로거뉴스엔 최대 이슈로 떠올라 블로거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다음 아고라 역시 마찬가지. 방영 다음날인 30일엔 아고라에서 통합민주당에 협상 무효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이 곧장 10만명을 넘겨버리는 진기록이 터졌다.(관련보도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2965) 그러나 이 때까지도 전무후무한 '100만' 서명이 이후 현실화될 것을 예견하는 이는 없었다.
2주 후 PD수첩은 추가 방영 요구 속에 2편을 내놓게 된다. 일본 등 타국의 상황을 비교하며 내놓은 것은 선행방송의 바람을 등에 업으며 전편 이상의 시선을 끌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20%까지 폭락하고 인터넷 패러디가 홍수 속에 탄핵 서명 100만돌파, 5월의 촛불정국 본격화가 그 2주사이에 전부 이뤄졌다. 그러나 이것은 5월의 이야기로 계속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