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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호송순간, 이춘근 PD의 '선택'

호송되던 이춘근 PD가 인사 대신 카메라 앞에서 외친것은?
서초경찰서 호송 현장 스케치



                        
9시57분. 호송되는 이춘근PD를 둘러싸고 "이춘근을 석방하라"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2시간동안의 기다림은 단 수초만에 그렇게 끝이 났다.


순식간이었다. 나오자 마자 그는 MBC를 비롯한 영상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뭔가를 외치며 몸부림을 쳤고 경찰들은 그를 잽싸게 잡아끌었다. 초점을 잡을 새도 없었다. 한 켠에 있던 부인과 얼굴을 맞댈 새도 없이 그렇게 그는 검찰로 호송됐다.
지난 2시간동안의 기록을 거슬러 올라간다.

26일 오전 7시 50분, 서초경찰서. MBC의 취재진과 노조원을 비롯해 수십명의 사람들이 정문에서 경찰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초지종을 들은 관계자는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관계자가 들어와 기다릴 것을 건의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래도 됩니까?"
"곧 출근시간인데 이렇게 있기도 그렇고, 9시는 넘어야 할텐데... 안에 휴게실이 있으니까..."
 그 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됐다. 길다면 긴 2시간. 중계카메라는 스탠바이와 휴식, 점검을 반복했다. 인터넷생중계일까, 노트북과 마이크, 웹카메라로 계속 작업하는 이도 보인다. 약간의 긴장감, 또 약간의 느슨함. 약간의 피로함과 또 약간의 무료함이 실내공기를 어중간한 분위기로 채웠다. 그렇게 1시간이 흘렀다. 

9시가 되자 긴장도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이야기는 전해진 게 없다.
"이춘근을 석방하라가 나을려나? 딴 건?"
노조원 사이에선 그가 나올 때 뭔가 구호를 외칠 것을 제안하며 적절한 아이디어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과학적 근거가 없잖어?"하는 말이 나올 땐 순간 웃음이 흘렀다.
"피켓은 준비하지 않으셨나봐요?"
피케팅 항의방문이란 정보를 접했던 기자가 넌지시 묻자 "피켓을 들면 완전 시위가 돼서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피로함과 끊어진 텐션에 졸음기를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털썩'하고 수첩이 떨어진다. MBC의 한 취재기자가 선 채 스르르 눈을 감다 손에 힘이 빠진 것. 그리고 이 시점부턴 복잡하게 이거저거 섞인 공기 속으로 '초조함'이란 새요소가 추가됐다.

"다른데로 가는거 아닐까?"
"뒷쪽으로도 카메라를 보내."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예상이 나왔다. 만일을 대비해 사람들 중 일부가 분산된다. "여기저기다 사람을 배치했으니 상황이 그렇게 되면 연락이 올 것"이라는 대비책. 

9시 37분. 실내 비치된 논오디오 TV화면에서 이PD 체포뉴스가 흐르자 사람들 시선이 집중됐다. 이곳에서의 초반 상황 영상도 떳다. 그사이 짤막한 편집본이 전달된 모양이다. 복잡미묘한 눈빛이 여기저기서 흐른다.   
"놀라셨죠?"
이날 자리엔 이 PD의 부인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부군은 전날밤 눈 앞에서 체포 연행됐다) 얼굴을 보는 사람들마다 다가와 '놀라셨죠'를 인삿말로 반복한다.  

9시 44분. 갑자기 정문밖에서 경찰들이 배치된다. 분위기가 긴장정국으로 급전환. 카메라에 불이 켜지고 출입구 양편에서 사람들은 몸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한 경찰 관계자가 곧 호송이 진행됨을 알렸다.
"인터뷰는 안됩니다. 사진 촬영만 허가하겠습니다."

정문 밖에서 대기중이던 이들에 이어, 2층에서도 경찰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9시48분.

1분여만에 신속히 구성되는 철벽수비. 소집된 경찰병력 수십명이 정문 한 가운데에 호송 루트를 확보했다. 한 노조원이 "적당히 좀 막읍시다"고 큰소리를 내며 실랑이를 벌였다. 다행히 충돌은 없었다. 

9시 51분. MBC 취재기자가 책임자로 보이는 관계자와 인터뷰 여부를 두고 약간의 승강이를 벌인다.
"한마디만..."
"인터뷰는 안됩니다."
"너무 하시잖아요."
"글쎄 인터뷰는 안됩니다. 사진촬영만 그 때 잠깐 가능합니다." 
9시53분.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다. 웅성대는 속에서도 묘한 적막감이 감돈다. 경찰도, 취재진과 노조원들도 모두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나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고정됐다. 이 때가 9시56분. 드디어 수사관과 함께 걸어나오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그는 갑자기 뭔가를 격하게 토하며 몸부림을 쳤다. 그를 붙든 수사관은 그를 밖으로 끌었고 사람들은 "이춘근을 석방하라"를 외치며 밀려들었다. 이 모든것의 진행은 불과 수초만의 일.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그는 몇번인가 반복해 무언가를 외쳤지만 이는 "이춘근을 석방하라"는 사람들의 구호와 경찰들의 목소리, 그리고 몸싸움의 부산물 속에 묻혔다. 호송차로 압송되는 동안에도 노조원과 취재진은 격하게 몸을 부딪혀왔다. 빗속의 아수라장은 예견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뜻밖의 상황일까. 그리고, 그 새 호송차는 떠났다. 
외부 정문에 서 그를 배웅하는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나 각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눈물은 끝내 흘리지 않는다.
"사모님 영상은 안 나가는게..."
"그게 좋겠죠?"
MBC 취재진은 의견을 나누다 잠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검찰청으로, 법원으로, 또 방송국으로 향후 목적지를 달리하며 헤어진다. 이쯤에서 남는 의문. 
'이춘근 PD는 아까 뭐라고 외쳤던 것일까.'
그가 거기서 그냥 길을 나섰다면 동료들과, 또 아내와 잠깐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대신 선택했던  몸부림의 외침은 정확히 무엇이었던걸까. 저항하는 제스처 뒤에 남겨진 것 중 흐릿하나마 짐작되는 것은 앞부분의 "언론자유..." 정도였다.
마침 같은 의문을 갖고 있던 MBC 취재기자(메모장을 떨구고 '한마디만'을 요구하고 '영상은 안 나가는편이 좋겠다'고 배려하던 그녀는 이날 본 얼굴 중 가장 인상깊었다)는 영상취재기자에게 자료열람을 요청했다. 영상 속 음성을 수차례 반복하며 수첩에 기재하는 동안 기자 역시 어깨너머로 흘깃 살폈다. 
확인된 것은 역시나. "언론자유 보호하라"였다. 걱정하는 이들 앞에서 만남과 이별의 인사 대신 택했던, 카메라 앞에서 꺼내든 외침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