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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장 아닌 패장' 김인식은 왜 박수받는가

'패장' 김인식은 왜 '승장'의 박수를 받는가 
언제나 존경받는 그의 다섯가지 '명장' 포인트 

 
성과우선주의 속에 핀 기적

박수받는 명장 김인식은 왜 박수받는 명장인가.

WBC 결승전에서 김 감독은 승장이 아닌 패장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기록은 패자의 장일지언정, 받고 있는 예우는 승장의 그것이었다. 명장은 결과에 관계없이 명장임을 증명한 사례다. "성과가, 승리가, 우승만이 곧 전부를 이야기한다"란 성과우선주의의 만연함 속에서 피어난 기적이다. 어째서 국민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충분히 만족했다'며 기꺼이 '패장'에게 금의환향한 '승장'인 듯 박수를 쳐 주는 것일까.

언제나 그랬다

그거 아는가. 실은 지난 수년간 같은 기적이 반복됏음을. 그의 '승장같은 패장'의 휴먼드라마 말이다.

WBC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한화이글스 감독인 그의 수년간 기록을 거슬러 살펴보자. 3년전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지난 1회 대회 때, 한국이 강호를 연파하고 4강에 진출하자 세계는 한국을 4강 중 가장 완벽한 팀으로 평가했다. 미국 한 외신은 한국팀에 "아니 대체 저 친구들이 누구지?"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결과만 놓고 보자면 준결승에서 일본에 석패, 4강으로 6연승 행진이 끝났다. 그러나 그때도 김 감독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의외였다. 일본 네티즌 중 반한감정을 내보이는 측에서조차 '선수는 맘에 안들지만 감독은 참 인간적으로 괜찮더라'는 반응이 상당수 잡혔다. 국내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귀국길에서 마중나온 손주를 끌어안고 인터뷰하는 그에게 '일본에 지고 4강에 그쳤다'며 조롱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대신 '국민감독'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그 해, 한국시리즈를 기록하는가. 한화이글스가 삼성라이온스와 패권을 다뤘던 기억말이다.

연장 15회까지도 1대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대혈전 속에서, 결국 한화는 졌다. 마지막 아웃카운트에서 데이비스의 삼진은 한화 팬들에 천추의 한이 됐다.

그러나 당시 포털 다음의 스포츠섹션에 모인 반응은 뜻밖의 것이었다. 삼성의 우승을 알리는 메인 기사 옆엔 나란히 한화의 분투를 기록한 분석기사가 자리잡았다. 댓글란에선 삼성의 우승을 말하는 글보다 한화가 보였던 저력을 찬사하는 글이 더 많을 정도. 응원지수 역시 한화가 앞섰다. 승장 선동렬 감독의 전략보단 패장 김인식 감독의 믿음에 포커스가 잡혔다. 삼성 팬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은 "우승은 삼성이 했는데 어째서 한화 이야기가 더 많은거야?"라고 볼멘 소리를 꺼낼 정도였다.

수년간 김 감독은 프로야구에서도, 국제대회에서도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했다. 문턱까진 올라갔으나 마지막엔 축하의 박수를 상대에 건네는 패장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변함없는 홈 팬들의 환대를 받으며 돌아설 수 있었다. "다음번에도 부탁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정말이지 기막힐 스토리다.

스포츠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승패를 떠나 보는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또 만족시킬 줄 안다. 다시말해, 명승부가 갖춰야할 구성요소인 스포츠맨쉽을 전부 지녔다는 말이다. 정정당당한 승부, 진검승부의 진수, 재미있는 게임, 고집있는 덕장의 모습, 드라마틱한 연출까지 한 방에 잡아낸다. 져도 명분이 있고 이기면 감동을 배가시키기에 명수이자 명장의 칭호가 부족하지 않다.

하나, 열세를 뒤집는 드라마틱한 작가주의

재미있게도 그는 불리한 조건을 전제하고서 싸움에 임한다. 가을야구를 할 땐 페넌트레이스 1위가 아니기에 여러 상대들과 연속 접전을 벌이다 만신창이로 올라가 패권을 다툰다. 혹은 전력의 객관적 평가에서 약간의 열세를 끌어안고 싸움을 벌인다.

한화가 약팀은 아니다. 전신인 빙그레부터 전통의 강호로 걸출한 수퍼스타의 계보를 이어왔고 딱히 장기간의 쇠락기가 없어 포스트시즌 진출수도 상당하다. 그러나 한국 야구 역사의 우승후보 1순위는 항시 왕조 해태와 현대, 삼성이 순차대로 차지했고 그들의 배역은 '도전자'였다. 

한국 역시 이젠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세계 중심을 넘본다. 아니, 이제 정말로 세계 야구를 호령하는 신흥강호가 됐다. 그래도 지원면에서, 자국리그의 규모면에서, 선수층에서, 역사면에서의 갭은 메꿀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올림픽 전승 우승과 이번의 WBC 준우승은 우승후보의 그것보다 더 놀랍고 경이적이다.

항시 그는 열세가 점쳐지던 도전자의 리더였다. 결승이 아니라 2라운드 진출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어중간한 강자. 그러나 예상 이상의 실력으로 파란을 몰고 왔다. 핸디캡을 극복하고 넘버원과 대등하게 싸우는 자는 제3자 눈에 챔프보다 매력적인 법이다. 1회대회서 미국을 꺾고 일본을 두차례 완파했으며 2회에선 베네수엘라, 멕시코를 압도하며 일본과 다섯차례 사투를 벌였다. 프로리그에서도 물러섬 없이 싸운다. 그가 맡는 팀은 어찌 이렇게도 매력적인 것일까.   

둘, 정공을 관통하는 그의 지휘는 재미있다

그가 교향악단의 지휘자라면 필시 팔자에도 없는 락밴드의 다이나믹한 연출이 오버랩됐을 것이다. 연주의 퀼리티에 앞서 제스처 하나하나와 맞물리는 조합물의 대담성은 객석을 흥분시킨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정공을 꿰뚫는다는 사실.

재미는 관객에게 최고의 미덕이다. 그것이 예술이던, 스포츠던간에. 끝맺음에 급급했다간 이를 저버리기 딱이다. 그러나 그는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전술이 내재된 야구의 본래 재미에 충실하다. 결과에 앞서 과정을 저버리지 않는다.

06년 한국시리즈당시,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스몰볼로 일관했다. 노아웃 1루면 십중팔구 번트로 원아웃 2루를 만들고 단타로 승부했다. 반면 한화의 김인식 감독은 투아웃이라도 주자가 있으면 강공으로 승부했다. 선 감독이 매사 작전 지시를 냈다면 김 감독은 흐름을 조율할지언정 나머진 자율에 맡겨 변수와 관전포인트를 끊임없이 선사했다.

관중들은 김 감독의 것에 더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공격의 긴장감은 한화의 것이 훨씬 강했기에. 준우승한 그에게 대전팬들은 "다음해도 부탁한다"고 격려했고 다음해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는 삼성에 2승1패로 설욕했다. 비록 플레이오프서 두산에 막혔지만 이번에도 팬들은 그에게 "다음해도 부탁한다"고 했다.

이번 세계대회에선 그 어느 팀보다 짜임새있는 토털야구를 선보였다. 빅볼과 스몰볼과 패스트브레이크와 풀메탈수비가 '작전과 기량의 야구'로 승화됐고 메이저리거가 한국리거들을 경외하게 만들었다. 멕시코전에서 더블스틸 장면은 백미. 재미있는 플레이에 있어 한국과 김감독은 단연 우승감이었다.

셋, 뚝심에 그저 내 탓이오... 덕장의 미덕

그는 항시 선수들을 믿는 감독으로 각인됐다. 그가 경기 중 선수를 바꾸는 것을 두고 실책을 성토하는 '벌'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막말로 '죽을 쑤던' 선수도 언젠간 해낼거란 믿음을 갖고 내보낸다. 선수들이 후회없이 싸우도록 하는 든든한 서포터인 셈이다.

오늘 결승에서 결과론만 놓고 보자면 "봉중근을, 또 임창용을 위기상황서 좀 더 빨리 교체하고 다른 투수를 냈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준수한 피칭이었으나 실점 결과만 생각하면 그럴법하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서 이는 틀림없는 배려였다. 미련없이 자기 스스로 매듭짓도록 기회를 줬고 이는 그가 건넨 신뢰의 증표이기도 하다. 이치로에 결승 2타점을 내준 직후 화면에선 그가 잠깐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임창용과 강민호 배터리의 볼배합에 대해 사인미스임을 밝히면서도 "자세한 이야긴 그들에 묻지 않아 모르겠다"고 밝혔다. 경기 후에도 선수의 마음을 돌보는 것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특정선수로 돌리지 않는다. 지나간 시즌의 보도를 살펴보라. 그저 "내 잘못", "실력이 상대가 위였다"로 일관할 뿐, 누가 못 해줬다는 발언은 찾을 수 없다. 야구에 관심없는 이라 하더라도 인간적 면모에 반하게 된다. 설령 경기 중 실책이 나와도 얼굴표정엔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 구단 역대감독 리스트 중 한참 선배인 김영덕 감독(빙그레 시절)은 그와 좋은 대조감이다. 김영덕 감독 역시 틀림없는 명장임이었으나 덕장이라 칭하기엔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한국시리즈 중 해태에 패배했던 한 경기에선 게임세트 선언과 동시에 먼저 자리를 떳다. 장종훈의 주루 실책이 나오자 곧장 노하며 뭐라뭐라 일갈하는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반면 그는 게임 중 표정변화를 보기 힘들다. 잘되도, 잘되지 않아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무표정은 (돌부처 오승환과 나란히 섰을때 재미있을 법하다) 선수들에 중압감을 전혀 전가하지 않는다. 팀기여도가 높은 선수의 사기를 꺽거나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는다. TV 중계를 시청하는 이들이 한국팀에 충족했던 것은 그라운드 안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넷,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

그는 함부로 상대를 도발하지 않는다. 신문지면에 실린 발언 중 의외가 있었다면 07시즌 플레이오프서 두산의 리오스가 정면승부 대신 거르는 플레이를 하자 "저런 (좋은)공을 가지고... 저거 비겁한 자식이야"라고 밝혔다는 일화 정도? 다소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좋은 공을 지녔다"는 반어법을 내재한 위트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일본이나 타국에 립플레이로 결례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에겐 "위대한 도전"이라며 추켜세워줬다. 일본에게도 강한 팀임을 환기시키며 함부로 도발하지 않았다. 양국 네티즌들의 분위기는 험악했을지언정, 김 감독과 하라 감독이 마이크 앞에서 나눠가진 분위기는 좋은 라이벌간의 그것이었다. (하라 감독 역시 대회 내내 김 감독을 예우하고 우승 후에도 세계적 강팀이었음을 인정하는 등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상대팀의 팬들조차 기꺼이 호감표를 던질 수 있도록 하는 그 성품은 그라운드의 어르신으로 대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히딩크 리더쉽에 이어 김인식 리더쉽이 또 한번 뜨는 이유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