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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장고 불러온 악수, 국정홍보처 폐지

[기획] 장고 불러온 악수, 국정홍보처 폐지 
쇠고기 촛불 정국 1년, 다시 보는 이야기 (1) 

  
 
 
'실용정부'의 이름을 내걸고 '작지만 강한 정부'를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기억한다.

여성부 존폐 논란, 통일부를 둘러싼 말말말, 정보통신부 등의 행방... '나야말로 최대 이슈'를 외치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흡수 및 폐지를 놓고 시선을 끌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아봤을 때, 십중팔구 가장 먼저 거론하게 될 것은 국정홍보처가 간판을 내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현정부의 당시 것 중 가장 후회할 선택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장고 끝에 악수가 아니라 장고를 부른 악수였다.

 

[기획] 쇠고기 촛불 정국 1년, 다시 보는 이야기

- 1. 장고 불러온 악수, 국정홍보처 폐지

 

대선 후 인수위가 출범하면서 국정홍보처는 초반부터 그 향방이 '폐지'로 뚜렷하게 나왔다. 여성부 등은 숱한 온,오프 여론공방 속에서 폐지와 흡수, 조정 등의 절차를 걸치며 수없이 번복과 수정일로를 걸었다. 타 부처는 폐지나 흡수가 언급되더라도 비교적 조심스럽게 일이 진행되며 역시 크고작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국정홍보처의 간판을 내린다는 의사만큼은 명확히 밝혔던 새정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기도 했으니 뿌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동관 당시 인수위 대변인은 폐지 이유로 "지난 5년간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했다"고 밝혔다. 이유만 듣고 보자면 나름 민주국가의 새 정부로서 '세련된' 모습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관련보도 SBS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103175109178&p=sbsi)

'사실상 완전 폐지'였느냐, '문광부(문화체육관광부)와의 융합을 통한 기능존속'이었냐에 대한 해석을 떠나 이는 당시 시류와 '패키지'(?)로 묶일 수 밖에 없었다. 참여정부말기에 불거져 이때까지도 논란이 계속됐던 기자실 통폐합을 '없었던 일'로 한 결정이 그것. 보수신문 빅3를 비롯 숱한 페이퍼 매체가 '국민 알권리 빼앗은 독재정부'라고 매일 1면으로 때리면 국정홍보처의 국정브리핑은 '언론 카르텔'을 꺼내들고 맞불을 놨다.

실은 이것이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례다. 메이저 언론에 맞서 여론대응에 나섰던 국정브리핑, 그 호소대상은 다름아닌 네티즌이었다. 온라인에서 넷심을 향해 주장과 설득에 나섰다는 점이다. 한겨레 등 일부를 제외하고 빅3와 문화, 세계, 국민 등 10대일간지를 위시해 다수 언론이 기자실의 끊어진 인터넷선을 사진기사로 게재해 독자들 설득에 나섰다면, 국정홍보처의 국정브리핑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을 설득하며 그 공략타겟을 달리 했다. (관련기사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1009)

당시 미디어다음을 비롯 각 포털 및 게시판 등에선 이같은 국정홍보처의 주장에 힘을 싣는 네티즌들을 상당수 찾을 수 있었다. '지면 낭비말라'며 국정홍보처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은 말년에 들어서 인기가 반등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그 상승곡선 중 초반부와 시점을 같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오프라인 매체와 인터넷 매체를 두고 각 영역서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맞서는 정치적 갈등선이 촛불정국에 한발 앞서 도드라진 사례기도 하다. 실질적 레퀴엠이었던 셈이다.

이걸로 여러가지 인과관계가 성립됐다.(설령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하더라도) 국정홍보처가 넷심 잡기에 효력을 발했던 것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나 새정부에 미운털 박히기 딱인 사례였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정홍보처는 사라지고 논란이 된 기자실은 다시 열렸다. 새정부에 '빚을 진' 셈이 된 보수언론은 촛불정국 후 친정부 성향을 띠고 서포트에 나섰다. 어디다 촛점의 출발을 두느냐 따라 무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5년간 노무현 전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공공의 적'으로 집중포화했던 보수언론이 10년만에 여당으로 컴백한 한나라당과 현정부에 우호적인 점 또한 이와 버무려진다. MB정부 1년의 최대 난점으로 지적될 '소통부재, 넷심냉기류' 장고의 서막이다.

네티즌들의 힘이 이 정도일지, 또 네티즌과의 틈이 이처럼 벌어질지 실용정부가 혹 알고있었다고 친다면 국정홍보처 폐지와 방치했던 그것의 공백은 설명할 길이 없다. 갑작스레 1~2주새 협상성립이 선언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곧장 '30개월'과 '광우병' 파문을 던졌고, PD수첩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 다음 아고라 등 각 인터넷에선 네티즌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규모 촛불집회 시즌 개막.

정부와 싸잡혀 주적이 되어버린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지원에도 촛불은 전국을 뒤덮었다. 대통령 탄핵 바람을 일으켰던 '안단테의 130만 서명'과 각종 인터넷 패러디물이 쏟아지면서 네티즌의 존재감은 실감나게 각인됐다. 언론을 아군으로 만들어도 온라인세상과 단절되면 더이상 여론을 주체할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린 반성'과 함께 두번씩 대국민 사과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당시 정부가 넷심에 호소할 국정홍보처는 없었다. 스스로 없애버린 결과라 아이러니하다. 언론을 통제했다며 인터넷과 통하던 부처를 없앴지만 그 결과는 '소통부재'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청와대 블로그를 개설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이제 인터넷과의 단절이 그 소통부재의 대표격임은 부정할 수가 없게 됐다. 정권교체기에 '노무현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보고 이명박은 신문으로 본다'는 골자의 기사를 냈던 한 보수신문 기사가 있었다.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당시 촛불정국을 바라보며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구관의 방법이 후임자에 있어 절실한 시국이었다.

네티즌들에 인기없는 여당과 정부의 시련은 결국 해를 넘겨 1년을 지속하고 있다. 부랴부랴 '소통위'가 출범했지만 역부족, 일부 의원들은 반한나라 감성이 지배적인 미디어다음 아고라에 '소통'을 자처하고 용기있게 나섰지만 반대표 1만 득표처럼 전대미문의 쓴잔을 마시는 등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블로거뉴스에 결집한 블로거기자들은 '소통부재'와 '언론탄압', '여론탄압'을 줄곧 외치고 있으니 국정홍보처 폐지 당시 꺼내들었던 '언론통제', '알권리 제한'의 정부 입장이 부끄럽게 됐다. 홍보처 폐지 후 거꾸로 국정홍보예산을 증액시키는 행보 역시 설득력을 잃었다. (관련보도 미디어오늘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90318104005502&p=mediatoday)

4월이 되면 촛불정국의 시발점인 쇠고기 협상 및 파문의 1년째를 맞는다. 이쯤에서 '폐지시킨 후 현정부는 과연 한번이나 두번쯤, 후회하지 않았을까'란 질문을 모두에 조심스레 던져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