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게임

리듬댄스게임 10주년, 펌프로 고동치는 맥박

[기획] 태동 10주년 맞은 리듬댄스게임, 여전히 뛰는 맥박
열살 차 아우르는 매니아들의 게임광장

아케이드 게임의 새지평을 열었던 댄스댄스레볼루션(이하 DDR)이 탄생한 것은 1998년. 고로 이 게임이 만들어낸 '리듬댄스' 장르의 탄생은 10년이 아닌 11년 전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게임이 한국 시장을 열었던 것은 99년. 해서 국내에서의 태동은 올해로 딱 10주년을 맞았다 할 수 있다.

당시 신기한 눈빛으로 발판에 용기내 오르던 한국나이 스무살의 대학 새내기들이 벌써 서른줄에 접어든 올해. 그러나 리듬댄스게임의 맥박은 DDR에서 펌프로 이어지며 계속해 고동치고 있었다.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 십년 동안 리듬댄스게임은 여전히 젊은 세대를 포로로 삼고 있다.

태동 10주년 맞은 리듬댄스 게임, 여전히 뛰는 맥박 - 열살 차 아우르는 매니아들의 게임광장  

   
 
   
 
설 연휴 마지막날인 27일 저녁, 부산 서면에 위치한 삼보게임센터. 젊은이들은 장내 한가운데에 모여 '펌프질'을 한다. 동전을 올려놓은 대기자, 복도를 둘러싸고 관전하는 갤러리들, 그리고 이들에 둘러싸여 솟구치는 히어로들. 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리듬댄스게임의 생명력이 여전함을 확인시켰다. 

즐기는 법도 다양하다. 싱글 플레이로 공간을 활용하는 게이머가 있는가 하면 무려 네명이나 한 기기에 올라 높은 난이도의 족보를 클리어하는 무리도 있다. 펌프의 제작사인 안다미로의 '본거지', 서울 신촌의 엔터와 부산의 이 곳에서 다른 점을 찾는다면 여기엔 '스테퍼'보다 '퍼포머'가 많다는 점. 둘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 고난이도 클리어에 중점을 두느냐, 퍼포먼스를 즐기느냐에 있는데 양 쪽 모두 고수 레벨이 되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진정 춤을 즐기는 '댄서'로서 일반 게이머와는 조금 다른 존재로 화한다.

한편에서 비명이 울렸다. '테크니션'에 걸맞는 댄서가 발판에 올랐던 것. 정말 운 좋게도 작년 전국대회 2위에 올랐던 실력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청년의 무대, 퍼포먼스에 중점을 둔 안무로 시선을 사로잡던 그가 바로 서현호였다.

 

박수 속에 무대를 내려온 그에게 명함을 내보이며 동영상 게재 허락을 얻었다. 흔쾌히 응한 그는 자신이 전국대회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준우승을 차지했던 '서현호'라고 밝혔다. 잠깐의 인터뷰가 이뤄졌다.

미니인터뷰 - 서현호 (동서대학교 4년)

   
 
   
 

"인터넷 검색해보면 저에 대해서 나올 텐데..."

정말이다. 좌라락 하고 나오는 검색물이 유명인사임을 증명했다. 괜히 '내 이름 검색하면 블로거뉴스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나?

"언제부터 펌프 시작했어요?"

"나올 때부터..."

"2000년쯤? 고교생 때부터?"

"아마도요."

서현호 씨(27)는 DDR부터 시작해 이지투댄서, DDX, 펌프잇업까지 두루 섭렵했음을 밝혔다. 태동기부터 함께 한 리듬댄스게임의 진정한 산 증인이다. 작년 펌프 전국대회에선 2위까지 오른 레전드. 매니아 사이에선 태권도복 안무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도 "이젠 나 역시 곧 '올드'가 된다"며 세월을 언급한다.

"아직 나이많은 현역도 있나요?"

"이번에 1등한 형이 스물아홉인가 서른인가 그래요. '올드'죠."

머뭇대다 물었다.

"(남의 일이 아냐...)나도 아직까지 펌프를 즐기는데, 서른줄에도 계속 뛰면 보는 사람들이 꼴불견이라 할까요?"

"글쎄요, 그렇게 되나?(웃음)"

"본인은 어떻게, 3년 후 서른이 되도 계속 즐길 생각?"

"그 땐 현역은 아니고... 심사대에 올라 있을 거 같군요."

"여전히 게임장서 뛰긴 뛸 거란 말이네요."

그는 올해 대회를 마지막 출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발판 위에서 스텝을 옮기는 것엔 변함이 없다. 수년 후 어느 센터에서 그를 만날지 모른다.   

서울은 스피드, 부산은 퍼포먼스 강세...지역마다 다른 강점

서현호 씨는 "서울 애들은 스피드하게 뛰고 이 동네(부산)는 퍼포먼스에 주안점을 둔다"고 말한다. 확실히 이 곳의 유저들은 퍼포먼스 모드 선택자가 많이 눈에 띈다. 신촌 엔터 등지의 터줏대감들이 나이트메어 코스에서 신발창에 불이 붙을만치 '달리는' 것에 비해 여기선 손과 상체 등을 활용해 스토리 있는 안무를 펼쳐보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지역 중고수들의 특색은 서현호 씨 말대로 곡예와 같은 스피드함에 있다. 고난이도 레벨 클리어를 보는 재미가 있다. 테스트 버전 시전 기회와 빠른 입고 등 타지역과 비교되는 편의성은 일종의 보너스. 시선에 개의치 않는 넉살 좋은 개그맨들의 출현이나(스크림 가면 콤비라던지 라이브 가창까지 선보이는 싱글은 꽤나 웃겨준다)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유저 등 매니아들의 폭이 넓은 점 또한 재미 포인트.

부산은 '무림고수 출현다발지역'답게 초고수급 테크니션의 등장이 잦다. 특히 퍼포먼스 기량을 즐겨 볼 수 있는 점이 즐겁다. 이들은 브레이크댄스의 응용동작을 선보이거나 물흐르듯 유연한 연계동작으로 춤 그 자체를 즐기는 '댄서'들. 서 씨의 경우는 발라드곡에 어울릴법한 연출에서 힙합에 맞는 큰 동작까지 한데 묶어 시연해 '댄싱'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경기도 지역의 안양시 1번가 등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 네이버에서 DDR을 검색해보니 XBOX용 게임이 나온다. 아직 콘솔을 통해 계보가 이어지긴 하는 모양이다  
 

굴곡 많던 10년사 

리듬댄스게임은 국내 게임센터의 흥망과 함께 굴곡을 탔다. 음지 속 '오락실'이 '어뮤즈먼트 게임센터'로 대형 놀이장으로 거듭난 것이 90년대말. 업계가 주가를 타고 도심지에 신규 매장이 늘어나던 99, 2000년 시즌에 리듬댄스게임은 그들의 얼굴과 다름없었다.

선구자격인 일본 코나미사의 DDR은 99년 당시 국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후좌우 4개발판으로 이뤄진 게임은 리듬댄스의 초석을 닦았다. 가요계의 댄스음악 강세, 여기에 다이어트 붐까지 일며 활황을 맞았다. 

곧이어 한국의 후발주자인 안다미로사가 조금 다른 스타일의 5개 발판 펌프잇업을 선보이면서 2강 구도가 형성됐다. 당시 게임라인 등 오프라인 게임전문지 등에선 "느린 템포의 곡일 경우 다리를 옆으로 벌리는 펌프잇업이 DDR보다 춤에 가까운 품새가 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2000년도 들어서는 '장사가 된다'는 시류와 함께 다른 아류작들이 대거 선보여졌다. 손의 안무를 감지하는 레이저센서를 탑재한 이지투댄서, 보다 복잡해진 3DDX 등 국내작들이 줄지어 발표됐다. 원조인 코나미 역시 야심작인 파라파라댄스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DDR과 달리 팔 동작을 특화시켜 전,측방 5개, 후방 개폐시 최대 8개의 센서가 가동돼 독특한 안무를 연출했고 '여고생 댄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댄스게임은 공간 확보와 개방성이란 필요조건으로 인해 게임장을 더더욱 넓혀갔다. KBS의 한 청소년 프로그램에선 이들 게임을 소재로 삼아 대결 코너를 구성, 각 지역에서 '닭다리' 등 유명 고수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시설 좋은 군부대에선 이들을 피엑스에 도입해 입영을 앞둔 매니아들이 관심을 갖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작품이 나오며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을 쯤, 게임센터 시장은 활황서 불황으로 흐름이 바뀌었고 2002년을 기점으로 차례차례 축소 내지 폐장하는 게임장이 늘어갔다. 물론 댄스게임 기기 역시 확연히 줄어들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펌프 잇 업. 거의 매년 신작을 내놓으면서 국내외 토너먼트 대회까지 개최, 지금까지 유일하게 리듬댄스게임의 계보를 잇고 있다. 오히려 사라져간 다른 작품의 매니아들까지 흡수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해 펌프가 곧 리듬댄스 자체로 통하게 됐다.

한편 레어 아이템이 된 타 게임의 유저들은 인터넷 정보망을 구성해 아직 가동 중인 게임센터를 물색하는 등 여전히 이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지투댄서의 경우는 여전히 수요가 감지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점차 어렵게 되고 있어 펌프로 전향하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들리는 소식으론 이지투댄서 등 일부게임의 경우 국내선 자취를 거의 감췄으나 영국과 남미 등에 수출돼 인기를 얻고 있다고. 국내서 현재 잔존하는 게임으로 확인되는 건 파라파라댄스와 DDR 정도. 서울 대학로와 부산 서면 등 일부 지역 센터에서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친구들은 4~5명이 동시에 올라가 역할을 분담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열살 차 아우르는 젊은 세대의 교차로... '구경꾼 없으면 재미없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1999년, 당시 스무살의 TTL 세대였고 또 댄스게임에 매료됐던 사람이라면 참 행복한 사람이다. 고3병을 끝내자마자 부담없이 이 신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젠 이 세대도 어느던 서른이 됐다.

방과후 교복 차림으로 게임장에 들어서다 '학주'가 있나없나 살피던 이들도 이젠 내일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아저씨 동전 걸어놓으셨어요?"하고 묻는 지금의 고교생을 보면 추억과 한숨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처음 발판에 오를 땐 조심스러웠다. 누가 동전을 넣기만 해도 사람들이 구경꾼을 자처하고 우르르 몰렸던 때였다. 사람이 없을 때를 기다려 은근슬쩍 다가가던 기억. 그러나 리듬 타는 법을 습득하고 나면 오히려 갤러리 한 사람이 아쉽다. 일부러 사람이 많이 몰릴 때, 앞 사람이 많은 관중을 동원했을 때를 기다려 줄을 선다. 게임장의 존트라볼타가 되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벌써 '올드'로 분류되는 리듬댄스 1세대들. 그리고 아직도 게임센터를 '은퇴'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어쩜 집에서 "넌 아직도 저거 하니"라 눈치 줄 지도 모른다. 동갑내기 영웅들은 이 업계에서 벌써 레전드 내지 원로라는 이름의 추억으로 칭송된다. 이젠 방과후 한판이 아니라 퇴근후 한판이다. 함께 놀던 몇살터울 동생들은 실수할 때마다 킥킥대며 "늙었다, 녹슬었다"를 연발하고 숨이 차오르면 "담배 좀 끊을 걸"하고 후회하는 신세.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발판을 오르고 열살 어린 동생들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며 관록을 뽐낸다.

반면 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던 딱 그 나이대의 세대들. 그들에 있어 펌프는 오직 현재와 미래만이 존재할 뿐, 태동기의 과거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이 곳은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만 같은 놀이터다. 어쩜 그들에겐 이곳이 당구장처럼 실력 하나만으로 '애송이'서 '실력자'로 대접이 달라지는 성역일지 모른다. 이웃한 기기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 나보다 몇 살 연상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 위에 서면 나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저 자신이 한순간이나마 이 광장의 주인공이란 기분좋은 의식만 존재한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젊은이들에 펼쳐졌던 무대는 어느새, 10대서 30대까지 그 젊음의 대역폭을 광범위하게도 넓혀놓고 있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