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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19일 아침, YTN 본사 17층 사장실의 카펫에 환영 문구가 자리잡았다. 노조원들은 "환영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YTN 사태의 186일째, 이건 대체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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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40분,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방금 전 출근하던 구본홍 씨(그는 사장이라 부르지 않았다)가 그냥 돌아서 나가버렸다"고 밝혔다. 당일 YTN 노조는 보도국장 임명 문제에 항의하고자 구본홍 사장의 출근저지에 나섰다가 사장실에서 담판 짓는 걸로 당초의 계획을 변경한 상태였다.
노 위원장은 "우린 대화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스스로가 밥상을 엎어버렸다"며 "우리가 사장실을 점거해 들어오지 못했다는 빌미가 필요했던 모양"이라 비난했다. 아울러 "혹시라도 모르니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며 마이크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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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노조위원장은 마이크를 넘기고 난 뒤 복도에서 한 연배에 "선배님들이 나서주지 않고 무조건 우릴 빨갱이라 매도하면 어찌하느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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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쟁의부장. 연설하다말고 순간순간 좌중을 폭소케 만들었다. | ||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진수 쟁의부장. 그는 노조원들에게 구호를 주문했다. '방송독립 쟁취'로 끝나는 구호가 두어개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침묵.
"......"
뭔가 신선한게 필요했나. 이윽고 그는 아이디어를 짜내다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노조 탓?"이란 신작(?)을 꺼내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말이 입에 잘 감기지 않는지 노조원들의 이구동성은 "잘 되면..." 부분서 사그러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다"
순간 장내가 웃음바다로 돌변했다. 본인 역시 구호로 부적절하다 시인했으나 의미보다는 어감이 더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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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사장실 | ||
그의 고행은 조금 더 연장됐다. 마이크를 남에게 넘기려 했으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에 넘기려 해도 "자유발언은 안 하기로 하자"고 스스로 공언했던 터라 난감하게 됐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피크닉 무드'였다.
"이런 노조 또 없습니다. 자재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하잖습니까. TV(사장실의)만 좀 틀어봤을 뿐이고..."
여기저기서 킥킥댄다. "아니 위원장은 나한테 마이크만 넘기고 어디 갔나?"하고 '헬프'를 구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어떻게든 진행은 해야겠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다 급기야, '빵 터지는' 발언 폭발.
"...아, 저기 XXX노조원, 사장실(화장실)에서 맨 처음 X을 눴죠. 대단한..."
칭찬인지, 이를 가장한 무안 주기인지. 노조원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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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사태 186일째를 맞이한 오늘 | ||
이미 8시를 훌쩍 넘긴 상황, 비서 데스크 앞에서 사장실로 향하는 카펫에 '어서오세요'란 문구가 자리잡았다. 박 쟁의부장은 "우린 그를 내쫓으려 온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하려 온 것"이라며 한번 더 취재진에 어필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구호물품'이 밖에서부터 들어왔다. 아침식사였다. 주먹밥과 간단한 수프(국물)가 배급되기 시작했고 노조원들은 이를 나눴다. 이로써 점거농성은 일순간에 정말 야유회 분위기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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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조원이 "취재 중인 타 언론사 기자분들에게도 나눠 드리라"고 했다. 넷북을 두드리던 시사지 기자도, 캠코더를 돌리던 블로거기자도 이를 받았다. 이 때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들어와 주의를 당부했다.
"카펫에 흘리진 말아주세요. 더러워지면 청소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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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벌써 8시 45분. "좀 더 기다려보자"던 노 노조위원장도 더이상의 기다림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 철수를 선언했다. 그는 "사장실에 사람이 남아있는 한 구본홍 씨는 안 들어올 모양"이라며 "그럼 여기로 출발은 왜 했느냐"고 허탈해 했다. "농성을 해제한다"는 그의 말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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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해제. 노조원들은 '어서오세요'란 카펫 위 종이만 제외하고 아침식사 포장 쓰레기 등을 치웠다 | ||
노조 측은 이날 구본홍 사장과의 접촉이 불발하면서 일단은 정영근 보도국장과의 대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종면 위원장은 "형식상으로나마 보도국장에 올랐으니 우선은 그와 실마리를 풀어보기로 하자"고 말했다. 1~2시간동안 진행됐던 YTN의 이날 사장실 점거 농성은 이걸로 마무리됐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