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무대포로 즐겨봅시다] 1. 보헤미안 (부록-어이상실 병따기)
서민 초짜의 와인 탐험기
신년을 맞아 선보이는 새 코너. 잘 되길 바랍니다. 물론 고사떡은 없습니다.
서론이 길다!
현재 와인이 그렇게 인기라면서?
TV에선 드라마 '테루아'가 최초의 국내 와인 전문 드라마를 표방하며 방영 중이고, 이미 만화 속에선 여러 전문작이 등장했다. '신의 물방울', '소믈리에', 그리고 와인 뿐 아니라 칵테일 등 여러 주류를 섭렵하며 '바'를 무대로 하는 '바텐더'도 있고.
이 중 '신의 물방울'은 이미 익히 알려진 작품. 절찬리 연재 중인 이 작을 본인도 18권까지 읽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실존하는 세계적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 필적하는 가공의 일본인 대가 '칸자키 유타카'를 설정, 그의 사망 후 친아들 칸자키 시즈쿠와 양아들 토미네 잇세가 그의 유산과 '신의 물방울'을 놓고 '12사도' 대결을 벌이는 것이 스토리 라인.
작가가 젊은 황제이자 미남자인 토미네 잇세의 모델을 배용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는 배용준이 직접 참여하는 한국판 드라마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도 올해 1월부터 일본판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여하튼, 이야기 문화는 항시 새로운 트렌드를 부르고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와인 역시 이들에 힘입어 국내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마트에선 어느새 와인 코너가 꽤 비중있게 자리잡았다. 술자리에서 '소맥'(소주와 맥주)으로 통합되던 음주문화에 새 메뉴가 대중적으로 자리잡는 것은 앞서의 것에 흥미를 못 느끼던 성인들에겐 희소식이다. 본인도 그 중의 1人. 다만, 고를 때와 즐길 때 요구되는 선별법, 종류, 마시는 법과 기타 지식 영역의 광대함으로 섭렵하기 앞서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긴 한데...
까짓거, 막무가내로라도 한번 배워 봐?
1. 보헤미안 (이탈리아, 4950원)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그 격동기 속에서 장을 보던 기자 눈에 확 들어오는 와인 코너.
섭렵하기 무서운 이유 두번째. 서민에겐 사치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수만원을 호가하는 것이 기본인 고급주란 편견. 물론 고급와인이야 확실히 십수만원이 우스울 정도지. 그런데 가격이 얼마나 되려나 하고 일반 라인을 흘깃거리다 동공이 커졌다. 무려 2000원대도 있다! 이거 혹 맛 술 아니여?
내가 직접 사 보는 첫번째 와인, 부담없는 것으로 골라보다 손에 잡힌 병이 이거였다.
▲ 보헤미안, 750ml. 이탈리아산
가격, 죽인다. 4950원. 이거면 서민도 엄두 내 볼 수 있어! 750ml짜리 이탈리아산 와인을 50원 빠지는 5천원에 모셔 올 줄이야.
식사 겸 해서, 안주로... 아니지. 이럴 땐 음식이 아닌 와인을 '마리아주'라 일컫는다고 했나? 와인 바로 옆 코너에서 초밥 한상자(4200원)를 함께 준비했다. 둘의 궁합도 함께 느껴보고자 나름 준비한 결과다.
좋다. 의기충천. 이제 드디어 첫 스승님을 모시고 곧장 품평을 해 보는가 했는데...
병 따다 헤매는 밤
곧장 부록이 나옵니다. 막상 열어 보려 했더니 급좌절 모드.
"뭐냐, 코르크 마개 버전이었냐?"
왜 이걸 생각 못하고 돌려 따는 와인이라고만 생각했지. 큰일이네. 와인 따개가 없는데 말입니다. 곧장 인터넷 열고 '와인 따개 없이 코르크 따는 법'을 찾아 봤다. 골라낸 무림고수들의 묘안은 이거였다.
▲ ?!?!
스크류형 못을 드라이버로 마개에 박아넣은 뒤, 망치 뒷 머리로 빼낸다는 작전이었다. 이거 말고도 '병을 깬다', '아예 마개를 안으로 밀어넣어 버려서 동동주(?)로 마신다', '일본도를 휘두른다' 등 별의 별 방법이 있긴 한데 차마 그까진 못하겠더라.
"무식한 방법으로 와인을 연다. 그래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야..."
추억은 개뿔. 마개 부스러기만 만들고 못 열었다.
▲ 찍지 마! 우쒸 성질뻗쳐서 정말... 찍지 마!
울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셔터문 닫기 직전의 천원마트를 찾아 '서민의 병따개'를 겟. 친절한 점장님께선 와인 마개도 권해 주셨다. 소믈리에 오프너 2000원, 와인 마개 1000원, 합계 3000원 계산.
▲ 3천원으로 이 정도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여기 제품의 인터넷 사용기를 보니 "따기가 힘들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서민에겐 이것도 감지덕지다. 기쁜 마음으로 시전해 봤다.
안 된다...?!
죽어라 밀어넣고 이를 악물었다. 안동권가 화산부원군 35대손 체통이고 나발이고 그런거 없다. 술병 못 따 술 못마시면 그건 미역국에 대한 모독 아니겠는가. 고상한 와인병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였다. 겨우 마개가 뽑히는가 했는데... 두 동강.
▲ 너무 잔혹한 18금 장면. 내 최초의 코르크마개 희생양.
어머나. 결국 양단된 코르크마개에 다시 꽂아넣고 으쌰으쌰했다. 드디어 감동의 개봉. 겨우겨우 코르크마개를 '제거'해 냈더니 너무 처참하다. 잠시 묵념합시다.
드디어 느낀다, 무난한 가격의 즐거움
코르크마개를 쓰러뜨리자(?) 병 안에선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와인이란 술이 원래 이런 것일까. 감기로 막힌 코임에도 불구, 곧장 파워를 느낄만치 향이 무척 진하다. 미각에 앞서 후각으로 맛을 본다더니 냄새만으로도 즐겁다. 그럼, 잔에 따라 보실까.
헉.
▲ 끝까지 진상짓. (홍명보, 유상철, 안정환 형들의 대표팀이 그립습니다)
와인잔도... 집에 없었던 거구나. 와인마개와 오프너로 날개와 발톱은 다 얻었으나 정작 몸뚱아리는 못 구한 처량한 신세여.
별 수 있습니까. 여차해서 갖고 있는 것 중에 제일 예쁜(--;) 맥주잔에 쪼르륵.
잔에 담긴 와인빛을 눈으로 음미해 본다. 투명한 것이 꼭 탄산과일음료를 연상케 한다. 글쎄 어떨까. 이것도 막눈엔 라이트한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그럼 맛은 어떨까. 마트의 소믈리에 언니는 먼저 찾아온 고객 아주머니의 질문에 "달달해요"라고 답하던데. 일단 향은 생각 이상으로 달콤하다. 조심스레 혀 위에 몇 방울 올려 봤다.
첫 맛. 확실히 달다. 처음 맡았던 향기의 연장선상. 그러나 이내, 술 답게 쓴 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똑같은 술에서 느끼는 냄새이건만, 마시기 전의 달콤한 내음과는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진다. 냄새가 코와 입에 퍼지면서 단 맛도 이내 씁쓸하고 떫은 맛으로 변화. 시간차를 두고 느껴지는 이중주의 멜로디다.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고, 나름 즐겨볼 수도 있는 맛. 부담없는 가격에 이만하면 초짜로선 무난한 점수를 매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참, 초밥과의 궁합은 일단 내공이 더 쌓인 후로 보류. 뜬금없지만 초밥은 확실히 똑같은 마트 상품이라도 서울보다 부산 것이 더 맛있다.
형상화한 이미지는... 여인의 립스틱?
신의 물방울을 보면 두 주인공은 아버지의 묘사를 듣고 이에 딱 맞을 와인을 찾아낸다. 거의 비슷한 정답을 찾아낸 두 사람, 마시고 난 뒤 꺼내드는 묘사도 종반을 제외하면 꼭 닮은 꼴이다. 다른 사람들끼리 같은 와인에서 같은 이미지를 연거푸 떠올린다는 게 과연 가능한지는 불가사의. 헌데 이건 일단 각설하고.
초짜 서민이라고, 또 싸구려 와인이라고 이미지 그리는 걸 못할건 또 뭐 있겠나. 어떤 이미지를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지 곧바로 감각을 집중해 봤다.
잠깐이지만 내 머리에 떠오른 건 춤추듯 다가오는 붉은 드레스의 여자. 딱히 가슴 설렐만치 이상적인 상은 아니지만 정열적인 느낌이다. 도도함 없이 다소 가벼워 보이는 그녀의 분위기는 역시 초저가 와인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드레스만큼이나 도드라진 붉은 입술은 인상적이다.
맛본적은 전혀 없지만, 그 입술의 립스틱을 말하면 그런대로 이 와인의 맛에 일치하지 않을까. 입에 닿는 한 순간은 달콤함을 느끼지만 이후 느끼는 본질의 것은 쓴 맛의 물질. 그럼에도 취기가 오르면 묘한 기분에 그 역시 매력으로 받아낼 수 있는...
와인이 재미있는 술인 것은, 이렇듯 저마다의 상을 그리며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일까. 수많은 종류에서 그 이상의 형상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도 재미는 쏠쏠할지 모르겠다. 어느새 흥미롭게 입문을 청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후기
국장 - 확실히 답해라. 이건 기사냐 칼럼이냐 기획물이냐. 너, 저 쪽 지식도 없다메? 와인잔도 없이 그래, 리뷰라고 썼냐? 안정환 유상철 홍명보, 언제적거 꺼냈냐. 그래 그러고도 월급 받을 생각하냐, 앙?
기자 - 밥숟갈 놓을 순 없잖아요...
국장 - 너, 그러니까 저거 마시고서 곧장 써 내려갈긴거렸다? 기사를 음주 작성했겠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