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한승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당일 수입위생조건 고시에 관한 동의를 호소했다. "부족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국민들의 걱정 대부분은 해소됐을 것"이라는 한편 "불법시위에 대해선 국민의 편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할 것"이라 밝혀 촛불정국에 다시 거센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전문을 살펴보면 상당히 친숙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경제 위기론에 기댄 호소가 그것. 약발이 좋은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어 올랐다.
한 총리는 이번 담화문을 통해 "지금 우리의 대외경제여건은 매우 어렵다"며 "우리 경제 불안 및 국민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경제 위기론은 두 차례에 걸친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지난달 22일 처음 진행됐던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살펴본다. "지난 10년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동안 우리경제는 그 흐름을 타지 못했다"며 "경쟁국은 턱 밑까지 쫓아왔고 선진국들과의 격차는 벌어졌다"고 나와 있다.
지난 19일, 추가협상 결과발표 직전 이뤄진 대통령의 두번째 담화는 어떤가. 역시 상당부분을 할애해 경제 위기론을 밝히고 있다. "국제 경제 여건이 대단히 어렵다"며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며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경제 위기론의 근거 역시 공통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먼저 유가 상승 등 국제 여건. 이 대통령은 첫번째 담화문에선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 유가 식량 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며 국제적 악재를 지적한데 이어 두번째에서도 "국제금융위기에 겹쳐 유가와 원자재 값이 치솟았다", "원자재, 곡물 값은 엄청 오르고 유가는 작년의 두 배나 올랐다"고 강조했다.
한승수 총리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1년 동안 국제유가가 두 배 이상 올랐다"고 거듭해 국민들에게 유가 상승을 강조했다.
두번째가 통상교역국가인 한국의 특성. 이 대통령은 최초 담화문에서 "대한민국은 경제의 70%이상을 대외에 의존, 통상교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다음 담화에선 "우리 경제의 통상 의존도는 70%가 넘어 통상대국 일본이 2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다"고 밝힌 것. 참고로 이번 한 총리 담화에서는 구체적 언급이 빠졌다.
한편으로는 쇠고기 협상을 FTA와 연관시켜 이같은 경제위기를 타개할 대책이라고 설득한다. 이 대통령은 범위를 넓혀 FTA협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첫번째 담화에선 새로운 활로라 평하며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늘고 국민소득이 오르며 3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이라 밝혔고 다음 담화에서도 "34만개의 좋은 일자리와 국내총생산 10년간 6%이상 성장 예측"을 말했다. 이에 비해 한 총리는 이번 쇠고기 추가협상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FTA에 대해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후보도 미국 국익 손상을 주장한다"며 "미국이 너무 많이 양보했다 불평할 정도"라 자평했다.
이번 한 총리의 담화문엔 지난번 대통령 담화문 이상의 논란거리가 담겨 있다. 이번 촛불집회가 경제 악화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라 주장한 것. 한 총리는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국민 불편이 가중, 상인과 식당 택시 및 버스기사를 비롯 서민의 피해가 크다"며 "길어지면 서민이 큰 피해를 본다"고 서민 경제 악화의 원인으로 집회자들을 규정했다. 또한 "세계와 경쟁해야 할 일부 젊은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천금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해 동맹휴업 등으로 집회에 나섰던 학생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이번 한 총리 담화에 대해 극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젠 경제를 볼모로 잡겠느냐"는 원성으로 이는 지난 대통령 담화문 때부터 언급되던 사안.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747 공약 등을 내세워 경제 살리기를 외쳤고 이는 경영인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운하 정책, 그리고 이번 쇠고기 협상도 모두 국가경제 상승을 주장하며 꺼냈던 정책으로 여전히 경제는 현 정부의 존재 이유 중 중심.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제 위기론을 꺼내며 촛불을 내려달라 요구하는 것에 더욱 반감이 표출되는 정황. 상당수 네티즌이 "경제 살리라고 청와대에 보냈더니 이젠 경제를 볼모로 삼아 국민을 협박하느냐"며 일갈하고 나섰다. 닉네임 '펭귄'의 아고라 유저는 "자업자득이니 국민 탓하지 말라"며 "지금 시위대에 책임을 떠넘기다니 원인을 아직도 모르겠냐"라 비난했다. 닉네임 '아찌' 유저 역시 "기름값 오를때 대운하와 부실 쇠고기 협상 등 하지 않았느냐"며 "경제 대통령이면 이런때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분노했다. 한편 지난 16일 달력 님은 "이젠 경제위기로 사기쳐 촛불을 사라지게 하려느냐"고 반문하기도.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이젠 촛불정국에 대한 대국민 담화 때마다 "경제가 어려우니 협력해 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