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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했던 황정민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

권근택 2008. 6. 27. 13:00



뭔가 이상했던 황정민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
 
 
 
  ▲ 26일 당일 저녁 황정민 아나운서는 공개사과문을 공지했다  
 

26일, KBS FM대행진의 진행자 황정민 아나운서가 촛불집회에 대해 "과격해진 모습에 실망스러웠다"고 발언했다가 제 2의 정선희 사태까지 우려될만큼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오후 6시 현재까지 홈페이지 게시판에선 당일 올라온 게시글만 2000여개에 달했고 대다수가 그녀의 발언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황 아나운서는 클로징 멘트에서 "홈페이지 게시글 반응을 읽었다"며(방송 중에 이미 수백여개의 항의글이 올랐었다) "오프닝 멘트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사과드린다"고 밝혔으나 네티즌들의 비난수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제작진은 내일 방송에서 다시 사과 멘트를 전하기로 했다. 황 아나운서는 사과멘트 논의 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고.

그런데 이날 문제시 됐던 오프닝 멘트를 확인하면 뭔가 이상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이 날 방송에서 그녀의 진행이 평소와 비교했을때 매끄럽지 못했다. 지난날의 방송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 평소 밝은 톤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던 목소리와 완숙한 제어가 이 날은 원활치 못했던 것. 이후엔 평소 수준으로 회복됐으나 오프닝에선 순간순간 발음이 취약하거나 위화감이 느껴지는 인터벌 및 악센트, 끊지 못하고 급히 이어지는 멘트 호흡 등 진행에서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컨디션이나 혹 외부적 영향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문제가 된 부분 역시 석연치가 않다. '실언'으로 비난받는 부분을 포함, 오프닝 전문을 옮겨본다. 


"어젯밤 시위대와 경찰이 다시 격렬하게 충돌했다죠.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물대포가 사용되고 국회의원 초등학생 취재기자까지 포함해서 100명 이상이 연행됐네요. 국민들이 안심할때까지 고시를 연기하겠다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일이 진행되죠? (쓰읍-숨소리)그 때문에 시위대가 흥분했는데요. 경찰의 물대포와, 뭐 기대한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 문제 발언 시작 -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새로운 시위 문화다 뭐다 보도했던 외신들 이제 다시 그럼 그렇지 하지 않을까요?" - 여기까지 -

...고시를 늦추는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다는 판단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된다는 걸까요? 정부에? 나라에, 아니면 국민에게? 이건 지켜볼 일이죠? - 오프닝 멘트


여기서 네티즌들을 노하게 한 부분은 두 곳. "많이 실망스러웠어요"와 "그럼 그렇지" 부분. 특히 후자는 어감 때문에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 아고라 등에서도 집중공격이 쏟아진 부분이다. 사실 이번 논란을 살펴보면 "정선희 씨의 맨홀 발언보다 더한 악질적 발언"이란 비난이 이는 반면, 한 측에선 "분명 폭력적 상황은 있었고 이것이 아쉬운 건 사실 아니냐"라며 "저 정도 발언은 받아들여야 한다"란 반론도 함께 일었다. 멘트에 담긴 "실망스러웠다" 부분에 한정한다면 적어도 현재와 같은 상황까지 확대되진 않았을 터, 결국은 외신을 언급하며 "그럼 그렇지"라 던진 멘트의 어감이 마침 손가락 절단 사고 등으로 예민해져 있던 네티즌들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서 "그럼 그렇다니 대체 뭐가 그렇다는 거냐"고 반발케 만든 면이 컸다.

이는 그녀의 16년차 베테랑 경력을 생각했을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 현 촛불정국과 같이 단어 선별 하나에도 민감한 사안을 다룸에 있어 저 정도 소화량을 정제하지 못함은 석연치 않다.

위의 멘트에 들어가기 직전 보인 지나친 인터벌과 버벅댐도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경찰의 물대...포와... 뭐 기대한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어..."의 부분은 버벅댐에 군데군데 알아듣기 힘들만큼 발음이 뭉개졌다. 그리고 인터벌. 저 부분 마지막에서 문제부분의 앞머리 "...시위대의 과격해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3초 가량 시간이 지체됐다. 마치 뭔가에 망설인 듯한 여운을 남겼다.

혹시 그녀 본인의 멘트가 아닌, 대본에 준비됐던 내용은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도 의심스럽다. 당사자인 FM 대행진 제작진과는 하루종일 전화연결이 불통이라 언질을 받을 수 없었다. 대신, 해당 프로그램과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비슷한 성향의 타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에게 오프닝 멘트와 관련해 자문을 구해 봤다.

먼저, 오프닝 멘트는 진행자가 아닌, 방송작가가 준비하는 기본 대본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다수라는 답변이 들어왔다. 물론 자신의 주관을 강조해 본인 스스로의 진행을 이어가는 진행자도 있으나 대개는 대본에 의지한다는 것. 특히 오프닝의 경우는 방송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부담감이 있어 건드리는 경우가 드문 것이 자신의 경험에 비춘 대개의 경우라고.

다만, 촛불집회와 같이 민감한 부분을 다루는 경우에 있어선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함께 언급했다. 특히 시사전문 프로가 아니라 음악이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에 있어선 섣불리 대본에 이런 내용을 작가 임의로 오프닝에 담긴 어렵다는 것. 설령 대본에 실려도 진행자의 판단에 따라 문제가 감지되면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곤 한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FM대행진은 전체 2시간 중 음악과 광고, 교통정보가 편집된 다시듣기 분량이 45분 정도로 대폭 감량돼 있다. 다시말해 음악 의존도가 높은 프로그램에서 시사적으로 민감한 주관이 담기는 것은 진행자의 소신에 따랐을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일단 황정민 아나운서와 제작진은 황 아나운서 본인의 실수로 사과에 나선 상황이다. 황정민 아나운서는 오후 6시께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공지하고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며 "오해의 소지 있는 신중치 못한 발언에 진심으로 죄송하다"라 거듭 사과했다. 아울러 "평소 촛불집회에 비폭력 평화집회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며 "안타깝고 걱정스런 마음에 전한 말씀임을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