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인터뷰] 14. 윤미나 “이 멋진 세계로 오라, 거듭 실패한대도”
[성우인터뷰] 14. 윤미나 “이 멋진 세계로 오라, 거듭 실패한대도”
“성우님께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어머, 이거 어디서 구했어요? 반갑네.”
기자로 산다는 건 사람과의 만남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걸 뜻한다. 세상에서 걸인부터 대통령까지 어떤 사람도 다 독대할 수 있다. 처음 만나더라도 사전에 준비를 하므로 보통의 초면과는 다르다.
그런데 말이다, 내게 있어서 성우들만큼은 처음 만났어도 죽마고우를 만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작품을 통해 만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소개할 주자는 애니메이션 팬에게 낯익은 사람이고, 또 성우지망생들이 등대로 삼는 사람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그 사람, 성우 윤미나가 열네번째 주인공이다.
윤미나
1997년 대교방송
알폰스 엘릭 - 강철의연금술사 (챔프)
알폰스 엘릭 - 강철의연금술사 브라더후드 (애니박스)
쵸비츠 - 쵸비츠 (애니원)
요우 - 샤먼킹 (애니원)
마리아 - 선녀전설 세레스 (마리아)
천세미 - 금붕어주의보 (챔프)
마류 라미아스 - 기동전사건담 시드 (애니원)
마린 - 마법기사 레이어스 OVA (애니박스)
미사오 - 바람의검심 (애니원)
도모에 - 바람의검심 추억편 (애니원)
신유미 - 유리가면 OVA (애니원)
소우세이세키 - 로젠메이든 1,2기 (퀴니)
미나미 카나 - 미나미가 (애니박스)
마를린 - 슬레이어즈 고져스 (애니박스)
퀴네스 등 - 건담이볼브 시리즈 (애니박스)
우자키 란 - 파워레인저 와일드스피릿 (챔프)
캐스커 - 베르세르크 극장판 시리즈1,2,3 (애니박스)
멜크 - 토리코 (카툰네트워크)
출처 챔프TV 홈페이지 - 대표작 강철의연금술사의 엘릭형제 중 동생 알폰소엘릭이었다
강철의 연금술사 엘릭 형제의 알, 손정아 선배님은 정말 내게 형 같았다
국가연금술사 증표를 보여준 것에서 느꼈겠지만, 맨 먼저 묻고 싶은 작품 이야기는 역시 그거다.
“개인적으로 강철의연금술사를 재밌게 봤던 사람으로서 알에 애정이 있는데, 이 캐릭터를 연기하실 때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사실 에드워드 엘릭 오디션 보러 갔다가 PD가 알폰스 엘릭 대사도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전 알폰스 엘릭으로 살게 되었어요..(웃음)
알폰스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참 많으신데 그 역할이 나름의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손정아 선배님’ 덕분이에요. 그 작품 할 때 저는 선배님을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언제나처럼 열심히 분석하고 시사하고 연습해서 갔지만 마이크 앞에 서려니 자신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믿었어요. 형 역할이 손정아 선배님이시니까 난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지.. 역시 선배님은 마이크 앞에 선 순간 제겐 온전히 그대로의 ‘진짜 내 형 에드워드’가 되셨고 덕분에 저는 그냥 저절로 ‘남동생 알’이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즘 만화 더빙하면서 선배님들의 부재를 크게 느껴요. 애써 잘하려 억지로 힘을 짜내지 않아도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자연스레 묻어가는 측면이 있거든요. 연기 내공이 깊은 선배님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면 저절로 동화되는 그런...“
별밤과 성우의 특별한 관계, 그리고 내성적인 소녀의 과거
“성우를 꿈꾸게 된 계기, 그리고 성우 지망생으로서의 벅찬 나날은 인터뷰마다 늘 여쭈는 내용이요, 항상 감동적입니다. 성우님께도 듣고 싶습니다. 10전 11기의 신화로서 많은 지망생들이 눈을 빛낼 주자신데요, 먼저 유년시절부터 성우를 꿈꾸게 된 계기에 대해 들려주시겠습니까?”
“10전 11기는 이제 좀 식상하지 않아요?(웃음) 요즘은 시험이 거의 매 년 있어서 나보다 더한 친구들도 많던데.. 아무튼 제가 좀 내성적이에요. 얼마나 내성적이었냐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던 아이. 일어나서 멋지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 맘이 크다보니까 손은 저도 모르게 드는데 막상 기회를 주면 ‘저는..저는..’하면서 울먹이며 와들와들 떨다가 급기야 펑펑 울어버리는 아이였어요.”
지금은 미나미가 세자매의 카나라던지 활달한 소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정말 부끄러움이 많았던 소녀라고 밝힌다. 그런 사람이 성우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 것일까. 지금껏 만나본 열세명의 성우 모두가 각각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주었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건 운명적이었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관순 전기를 읽고 독후감 쓰는 숙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등교준비를 하던 화장실에서 깜짝 놀랐어요. ‘아! 독후감 숙제를 안했다!‘ 그땐 진짜 물 내려가는 변기를 바라보면서 거기에라도 빠져 죽고 싶었어요. 사라져버리고 싶었죠.”
지금은 왈가닥 소녀를 연기하는 그녀지만 실제로는 착하게 어른 말씀 잘 듣는 바른생활 아이였다고 말한다. 길 가면서 군것질 말라는 말에 정말 안했고 만화책을 좋아해도 만화방 가지 말라 해서 정말 안 갔다. 물론 머리가 굵고 나선 그래도 어떤 곳인지 한번은 가봐야겠다 싶어 갔다지만. 하물며 그런 내가 글쎄 숙제를 안 하다니 큰일 났다 싶었다고.
“10살 내 인생, 여기서 끝나나보다 했을 정도로 겁을 먹고 학교를 갔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나면서 떠오른 생각. ‘맞다! 숙제 해 온 걸 발표하는 사람 노트는 따로 검사하지 않아!’였죠.”
“어, 설마.”
“맞아요. 책은 읽었으니 기억은 나잖아요? 그래서 발표를 하기로 했어요.”
아무리 책을 읽었어도 3학년이 즉석에서 읽을 것 없이 그것도 이런 상황서 발표를 한다니 쉽지 않을 텐데. 게다가 그녀는 발표 공포증까지 있었잖은가.
“제가 손을 드니까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다 놀라요. 수업 시간에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것도 벌벌 떠는 아이가 독후감을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다니... (웃음)
다들 그랬겠죠, 시켜봐야 또 울다 말거면서... 그런데 말이죠. 이걸 못해내면 숙제를 안 해온 아이가 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선생님께 야단맞는 게 죽을 만큼 싫었나 봐요. 죽기 살기로 덤비니 기적이 일어난 거나 다름없죠. 필기가 되어 있는 노트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마치 써 놓은 걸 읽듯 발표를 했어요. 식은땀이 막 나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노트는 떨어뜨릴 새라 꽉 움켜쥐었어요. 전 끝날 때까지 울지 않았고, 버벅거리긴 했을 텐데도 떨려서 잘 못 읽나보다 했는지 박수를 쳐주더라구요. 그만큼 한 것만도 신기했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선생님과 친구들을 속인 거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속인 내 자신이 너무 사악하게 느껴지고.. 그땐 성당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잘하는 아이였는데..(웃음) 죄를 지은 거잖아요.. 무서웠어요. 벌 받을까봐. 그런데 또 한 편, 그렇게 끝까지 울지 않고 발표를 한, 게다가 박수까지 받고 있는 제가 난생 처음 근사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교내 웅변대회 출전을 제의하시는 거예요. 어우, 세상에!”
웅변대회에서도 1등을 했다. 사실 강단에 올랐을 때 치마 아래 다리가 마구 떨려 단상에 부딪치다 빨개질 정도였다고. 그러나 사람들은 떨지도 않고 너무 잘한다며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냥 부끄럼 많은 줄만 알았던 자신의 숨겨진 재능은 그 때 발견했다.
글 솜씨가 좋으셨던 아버지가 웅변대회 원고를 써주셨고 딸은 그 원고로 난생 처음 나간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원고 덕을 톡톡히 본 걸 거예요. ^^
출처 다음 영화 미나미가 세자매 포토게시판
- 못말리는 백치미 카나 역을 했지만 정작 실제로는 반대로 수줍고 조용한 소녀였다
“그 이후엔 어떻게, 발표는 잘 하셨고요?”
“그때 이후론 발표하다 울며 끝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웃음)
고등학생이 되어서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여고생 나레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이문세 아저씨가 DJ였던 시절.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나레이터 공개모집을 했는데 나름 430대 1 이라는 어머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나레이터가 됐지요. 그때 저보다 먼저 활동하던 선배 나레이터가 지금 KBS성우 김희선 언니, MBC성우 김아영 언니예요. 아! 그리고 희선언니랑 앞 뒷 집 살던, 지금의 저랑 대교방송 동기인 이상헌 오빠, 나레이터 하면서 받은 여러 편지 사연 중에 방송은 못했지만 사연이 재밌는데다 편지를 워낙 정성스럽게 꾸며서 버리질 못하고 제가 개인적으로 내내 보관하고 있었던 그 사연 속 인물 중 하나인 EBS 성우 홍소영 언니. 이쯤 되면 성우와 별밤은 어마어마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는 거죠? 아! 그리고 가끔 별밤 공개 방송이나 행사 때면 나타나던 긴 생머리의 여자가 있었는데.. 누구냐고 주변 분한테 물어 보면 확실한 대답을 안 해 주시더라구요. 그 때 그 여자가 EBS성우 이소영 언니예요. (웃음)”
“별 성 자하고 목소리 성 자하고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건가요? 정말 우연이라기엔 대단한데요?”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여고생 나레이터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코너를 맡았어요. 그날의 편지 사연 하나를 맛깔나게 읽어주는 역할. 참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인생의 귀감이 되는 이문세 아저씨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죠.
하나의 꿈을 보내고 또다른 꿈이 열렸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고생 윤미나의 꿈은 성우가 아닌 아나운서였다. ‘첫사랑’은 아니었던 거다. 사실 막연하게 꿈꿨던 것이긴 했다지만 원래 첫사랑이 다 그렇잖은가.
“별밤 나레이터 할 때 아나운서가 꿈인 제게 PD분이 어떤 사람이 아나운서가 되는지 아냐시며 손가락을 가리키시는데... 와... 백지연 아나운서였어요.”
“아니 하필이면?”
“저 사람이 바로 아나운서야 라고 하시는데, 정말 백조 같은 사람이 서 있는 거예요. 우아하고 지적이고 너~무 예쁜 거예요. 순간, ‘난 끝났어.’ 맥이 확 풀리더라구요. 꿈이 와르르 무너졌달까. TV에서 봤으니까 예쁜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까 100배는 더 예쁜데다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아우라, 저 같은 아이는 감히 범접 못할 어떤 것이 저를 기죽게 했어요.”
하지만 강철의연금술사에서 등가교환이 이뤄지듯, 같은 시기 또 다른 꿈이 찾아왔으니 그게 바로 성우다.
“별밤에서 저희 나레이터들이 맡은 코너 ‘우리들의 이야기’를 녹음하러 가다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 중인 스튜디오를 지나쳐 가게 됐어요. 그때.. 가던 길 멈추고 얼음. 성우들이 마이크 앞에서 연기를 하는데 그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넋을 놓고 봤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저거야. 그래! 저거야 저거. 저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고 보면 저는 엄마가 즐겨 들으시던 ‘김 자옥의 사랑의 계절’ 같은 라디오 드라마 듣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그 시절엔 재밌게 듣는 라디오 드라마가 많았어요.”
출처 투니버스 홈페이지 쇼콜라의 마법 게시판 - 과거가 있는 쇼콜라, 여자의 과거는 아름답다?
길었던 성우 도전사, 그리고 그 때 만난 리포터라는 또 하나의 삶
“그렇지만 성우지망생으로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고 들었답니다. 그 때 일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오래도록 지망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10전 11기의 장기전을 펼쳤던 건지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첫 시험을 칠 때, 함께 공부한 MBC아카데미 동기들이 많이 합격했어요. MBC아카데미를 수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채여서이기도 했겠지만...
MBC 성우 시험(좌)을 시작으로 대교방송 성우(우)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 힘들었지만 ..
야호!! 성우가 되었어요~~
MBC아카데미 다니던 때..
대본 구하기가 힘들어 TV드라마의 음성을 녹음해서 받아 적어가며 대본을 만들기도 했죠.
“힘드셨을텐데.”
“물론 힘들었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그 6년의 시간이 성우로서의 인생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로 보아도 소중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런가요? 길어진 지망생 시절이 괴로운 시간만은 아니라고 하시니 그건 저도 듣지 못한 부분인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
“분명 힘든 시기였어요. 정말정말 되고 싶은데, 자꾸 떨어지니까 재능이 없나, 내 길이 아닌가 싶고.. 주변에선 잘 하고 있다고, 아직 때가 아닌 거라고, 격려도 해주고 응원도 해 주는데.. 안되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니까 조바심도 났고 무엇보다 재능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 하고 재능을 의심하게 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애초에 재능자체가 없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시험 준비만 하면서 막연히 합격의 날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지망생으로 살더라도 전 성인이고 내 앞가림 하려면 일을 해야 하니까.”
“맞아요. 그 기간 동안 리포터로서 값진 젊음을 보내셨다고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언론인으로서도 제 선배시네? 20대 시절은 리포터로서 보낸 기억이 크실 거 같아요.”
“흔히 말하는 ‘언더성우’로 녹음 일도 하고 원고를 구성하고 정리하는 일도 하고, 라디오 리포터도 하고 얼마간은 케이블 채널 리포터도 했어요. 그런데 그 때도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성격은 여전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취재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가 맡았던 프로그램이 현장을 취재하거나 인물을 취재하는 거였는데 그러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언제나 처음 만나는, 그런 낯선 환경이 매번 반복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그럭저럭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리포터로서의 시간은 ‘인간 윤미나’도 만들어 주고 ‘성우 윤미나’도 만들어주었어요.”
낯가림을 극복하고 취재를 원활하게 해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먹을 것을 잔뜩 사가거나 일손이 필요해 보이면 주저 않고 팔을 걷어 붙였다. 수고한다며주시는 음료는 벌컥벌컥 잘도 마시고 차려주시는 음식도 사양 않고 넙죽넙죽 복스럽게 싹싹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기획, 섭외, 취재, 편집, 방송 까지 혼자서 다 해야 하는 리포터의 일이 녹록치는 않았다. 쇳덩어리라 표현했을 만큼 꽤 무게가 나가는 취재도구(마이크, 녹음기)를 혼자 낑낑 대며 들고 다녔지만, 그 시간이 즐거웠다.
“잠깐만, 대본도 혼자 짜셨어요?”
“진행자에게 취재해 온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질의응답 순서 정도만 적어서 드렸어요. 저는 답할 내용의 사실 확인에 대한 메모가 다였죠. 그게 뭐 방송을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취재한 내용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편집한 거니까 굳이 대본이 없어도 답을 하는 데 지장은 없었어요. 완성된 대본을 만들면 줄줄 읽기에만 급급하게 될까봐.. 그럼 좀 부자연스럽잖아요. 현장감도 떨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실력이 부족했던 거지~ 글로된 걸 말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거야.. (웃음) 그래도 순간 집중력과 몰입은 좋아서 생방송인데도 긴장하거나 하는 건 없었어요. 가끔 생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너무 편하게 얘기하다가 비방용 단어나 표현을 쓰는 바람에 사고 칠 때가 종종 있었죠. 진행자 당황시키고.. 혼나고.. 가끔은 너무 기가 차니까 막 웃으시더라구요. 하하하.”
“리포터 윤미납니다!”
헷갈렸다고 한다. 리포터라는 직업이 잘 맞았던 거다. 더는 못하겠다 싶은 때도 많았다. 생방송의 녹음 분을 모니터하면서 ‘어쩜 저 분은 처음 만난 나한테 저렇게 깊은 속 얘길 다 털어놓으신 거지? 나는 또 왜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다 까발려 놓은 건지 미안했다고.
“계속 이어질 인연이 아니기에 취재를 위해 그들의 마음을 너무 헤집어 놓은 건 아닌지,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활짝 열어준 마음을 내가 이용한 건 아닌지, 내내 마음이 쓰이는 거예요. 물론 취재하는 그 순간은 그 분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깊이 공감하긴 했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리포터 일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취재를 하러 간다기보다 인생의 좋은 말씀을 들으러 간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그러다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했고.. 내성적인 성격의 내가 마음의 빗장을 좀 편안하게 열어 보이니까 취재원인 그 분들도 처음 보는 내게 속을 내보일 만큼 협조적이었어요. 인생 상담도 해 주시고..(웃음) 그래서 취재 내용이 제법 괜찮았나 봐요. 이곳저곳에서 취재물을 맡기는 분들도 계셨고, 취재 와달라는 곳도 생기고..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성우는 계속 떨어지는데 리포터 일은 술술 잘 진행되는 것이.. 이게 어쩌면 내게 허락된 길이 아닐까... 여기에 내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죠. 어쨌든 무엇보다 리포터 일이 정말 고마운 건 저를 사람 만들어주어서예요.”
언젠가 여름, 가파른 언덕이 많은 산동네로 취재를 갔다. 당시 만나는 분들은 프로그램 특성상 생활이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었단다. 여느 때처럼 쇳덩어리 마이크와 녹음기를 둘러메고 과일을 양껏 사서 언덕을 오르는데 꼭대기에 다다랐을 즈음 봉투를 손에서 놓쳤다.
떼굴떼굴 굴러 내려가는 과일을 잡으려 다시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과일이 상하진 않았나 하며 하나하나 집어 들다가 눈물이 팽 돌았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이었어요. 언덕은 가파르지, 무거운 녹음장비 들쳐 멘데다 가방 들었지, 양 손에 과일 잔뜩 들었지.. 그런데 다 올라갔다 안도하는 순간 과일이 그 언덕을 막 떼굴떼굴 구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굴러가는데, ‘나.. 왜.. 여기서.. 이러구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그랬던 적이 있죠. 그런데 말이에요, 그 때 만났던 한 분 한 분이 저를 강하게 해주셨어요. 인간 만들어주셨어요. 진짜 고마운 분들이세요. 장애가 있어서 불편하게 사니까, 돈이 없어서 부족하게 사니까, 불우할 것이다? 불행할 것이다? 천만에! 누가 그래? 그 분들 취재하는 동안 취재가 아니라 웃고 떠들면서 인생 공부, 인생 상담 하고 오게 되더라니까요. 참 밝고, 건강한 생각, 삶에 대한 열정, 넘치는 에너지, 자신의 장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도전을 이루어 내기 위해 대단히 성실하시고. 그런 분들 보면서 그깟 성우시험 떨어졌다고 난 불행하다 생각하는 거지? 그 분들 앞에서 나는 진짜 건방진데다 못나기까지 한 인간이더라구요. 부끄러웠어요.
꿈이 있고 신체 건강한데다 도전할 수 있는데 왜 불행하다 생각하는 거지? 그 분들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소개하는 리포터로 살면서 인간의 존엄함을 배웠어요. 그리고 정신이 번쩍 났죠. 성우는 내 전체 인생의 그림으로 본다면 어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일부이고 과정일 뿐인데 성우가 못 되어서 불행하다면 내 인생의 많은 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때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바뀌었어요. 열의 아홉이 불행한 날이라도 한 가지가 행복하면 그건 럭키! 설령 열 가지 다 불행해도 그 땐 날 얼마나 살찌우려고 이럴까 하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이렇게 힘들었으니 대체 뭘 얼마나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걸까? (웃음) 거듭 말하지만 나 진~짜 그 때 인간 된 거라니까요. 하하하.“
“만일 성우가 되지 못하셨다면, 지금은 리포터로 남아 계셨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절 아껴주던 고마운 분들도 옆에 계셨었고.. 그래서 지망생 시절이 길었었지만 그 과정은 정말 내게 ‘행복한 청춘’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리포터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하면서 연기의 많은 자양분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 땐 프로그램의 성격상 그러지 않으면 취재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인데 취재를 떠나 그게 살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여야 했던 거죠.”
제가 라디오 리포터를 하던 때는 릴테입으로 제작이 되던 때였어요. 릴테입을 감고 듣고 자르고 붙이고 하던 게 생각나네요.. 취재수첩에는 취재에 도움이 될 만한 신문 기사들도 스크랩하곤 했어요.
바람의검심에선 활기찬 미사오와 추억편의 도모에 두 캐릭터로 열연했다
합격 전화 받았을 때 기분이란? 의외로 덤덤했다
“합격하던 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지망생 뿐 아니라 성우 팬들도 합격 때 기쁨은 어떤 것일까 정말 궁금할 일이죠.”
“그게.. 의외로 담담했어요. 그동안 합격이란 걸 하면 어떤 기분일까?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 전화로 ‘윤 미나 씨 합격입니다’ 그러면 정말 날아갈 것 같을 거야.‘ 이렇게 저렇게 합격한 내 모습을 엄청나게 상상했었는데.. 막상 전화를 받으니까 차분해지더라구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합격이래‘하니까 ’됐어 됐어. 미나야 이제 됐어.‘ 하면서 펑펑 우셨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제가 워낙 많이 떨어진 사람이란 걸 심사했던 PD들이 알고 있어서 서로 자기가 감격적인 합격 소식을 전해주려고 했었다나 봐요. 그런데 덤덤하게 ’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오히려 당황한 거죠. ’윤미나씨 맞나요? 합격하셨다니까요‘ ”
“기쁘지 않으신 건 아닐 텐데.”
“물론 기뻤죠. 근데 막상 합격했다니까 실감도 잘 안 나고, 분명 기쁜데 표현은 그만큼 안 나오고 차분했어요. 아마 믿기지 않아서였겠죠? 그리고 꿈일까봐.. 그래서 꿈에서 깰까봐 무서웠을지도 모르구요.”
오랜 지망생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한 고맙고, 고맙고, 고마운 우리 대교방송!!!♥♥
전속 시절 어느 날의 다이어리.
목이 아파 병원 다닌 거, 도시락 싸갔던 거, 선배님들 쫓아다니며 술 한 잔 하던 날, 연극관람.. 부족함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시간이었어요 ^^
합격한 후 꿈에 그리던 전속성우로서의 출발은 어떠했을까. 한동안은 일이 없었단다. 그렇지만 일기장을 펴보면 그땐 일 없어도 마냥 즐겁더라고 회고한다. 아울러 “친정인 대교방송은 다른 곳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나를 거둬준 고마운 곳”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은 끝없이 회전한다. 그간 많은 사람을 만나던 길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면 이번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교에서 만난 PD가 바로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김정규PD였다.
연습, 연습, 연습.
주구장창 녹음하고 들어보고를 반복했던 MD와 마이크.
‘모니터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프로그램 모니터하고 녹화해서 보고 또 보고 하던 시절.
“전속 때, 한 6개월 동안은 다른 동기보다 일이 별로 없었어요. 뭐만 하면 목소리가 튄다 그러고.. 예를 들어 ‘지나가는 여자3’이 제 배역이라면 제가 대사를 하자마자 PD가 ‘미나씨가 주인공이야?’ 그러는 거예요. 하하. 내 딴엔 평범하게 한다고 한 건데 목소리가 그냥 너무 곱기만 한 거예요. 평범함의 어떤 분위기랄까 평범함의 감정선? 뭐 그런 표현 자체가 없었던 거죠. 목소리에도 드라마가 없이... 하하하. 아무튼 그러다 김정규PD가 파격적인 캐스팅을 했어요. 그간 그렇게도 못한다고 못한다고, 잘 좀 하라고, 뭣 하나 하기만 하면 야단만치던 PD가 절 ‘컴퓨터전사 가디언’이라는 작품에 ‘사령관 도트’ 라는 여주인공을 맡긴 거죠. 미쳤어.. 진짜.. ”(웃음).
전속 생활 1년이 채 안된 내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던 컴퓨터 전사 가디언.
걸음마도 못 뗀 아기가 달리려니 고통스러웠지만 아기를 보듬어주는 선배님과함께 한 동료아기들(?!) 덕분에 감사했죠.
“그렇게 전속 생활을 지내고 프리가 된 후 김정규PD도 대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만화 전문채널의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기회를 많이 줬죠. 그 때도 김정규 PD는 제게 늘 엄청난 숙제를 던져줬어요. 언제나 벅차기만 했던 숙제들.. 그 당시엔 성우가 있는 케이블 채널이 대교, 투니. 이렇게 두 채널인데 투니는 만화 전문 채널이다 보니 투니 친구들은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하고 프리가 되는데 그에 비하면 저희는 경험해 본 작품 수도 적은데다 내용이 탄탄한 서사구조의, 드라마가 있는 심도 있는 작품들은 해 본 적이 없이 프리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대원에서 만나게 된 작품들은 언제나 생소했고 생전 처음 해보는 성격의 캐릭터가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어마어마했죠.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 겨우겨우 해냈구나 싶으면 또 툭! 모험 같은 작품을 던져줘요. 그리고는 또 못살게 굴어. 그건 왜 그렇게 하냐, 이상하다, 이렇게 좀 해봐, 그게 안 되나? 아니! 아니지! 다시! 다시! 아, 안되겠어. 아무리 해도 안 나오니까 그냥 넘어가! 등등.. 녹음 현장에서 사람 당황 시키는데.. 와.. 선배님, 동료들 다 지켜보는데 다음 대사 못 넘어 가고 그러고 있기가 참 민망했죠. 가끔 잘했다고 선배님들이 칭찬을 해주시는 날도 김정규PD는 칭찬 한 번을 안 해.
대놓고 칭찬 한 번 해 준 게 바람의 검심에서 미사오 역할 했을 때,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 했는데 그 쟁쟁한 선배들을 뚫고 훅! 우렁차게 미사오가 나오더래요. 선배들 틈에서 그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고 시원하게 확! 하하. 그게 처음 들어 본 칭찬이었어요. 대놓고 해 준 칭찬. 하하.”
<바람의 검심> 녹음 현장.
칭찬엔 인색했지만, 누구보다도 날 응원했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김정규 PD.
김성수 엔지니어, 녹음 부스 안에는 켄신 구자형 선배님 그리고 홍승표 선배님.
“지금 생각해 보면 김정규PD는 누구보다 나를 믿고 있었고, 윤미나라는 성우가 잘 성장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자기가 뽑은 성우이고 그런 사람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건 PD로서도 보람된 일이었을 테니까. 성우 일은 좋아했지만 사회성이 부족해서 성우 생활에 적응 잘 못하던 나한테 늘 사람들 하고 잘 어울리기를 바랐던 것도 김정규 PD였고... 이쪽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아무래도 서글서글한 성격의 사람들이 일도 잘하거든요. 넓은 인맥은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기회를 많이 갖게 되니까.. 그런 면에서 저라는 사람이 기회를 많이 못 갖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PD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을, 연기자로서의 근성이랄까 그런 것도 갖길 바랐던 것 같아요. 늘 작품을 연구할 시간도 주었죠. 다음 할 작품은 어떤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주면 전 미리 그 작품을 찾아서 다 보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PD와 의견을 나누고, 접점을 찾아가고.. 저는 그런 시간들이 참 행복했어요. PD와 연기자가 작품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요. 그래서 탄생되는 캐릭터들.. 보고 있으면 뿌듯하죠. 그 캐릭터는 또 다른 나니까.. PD와 연기자가 만들어 낸 ‘우리 새끼’인 거잖아요.”
출처 다음 영화 쵸비츠 - ‘치이’로 유명한 컴퓨터소녀 치이로 등장한 이 작품은 그녀의 초창기 대표작이다
처음 만났지만 이미 수년간 동고동락한 친구처럼, 그것이 성우와 작품의 세계
이 릴레이 인터뷰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성우 개인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성우란 무엇인가란 퍼즐을 한 부분씩 맞추는 거다. 여기서 성우 개인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나눈다면 성우를 꿈꾸게 된 계기와 지망생 때 이야기, 성우가 된 후 생활과 향후 목표 그리고 각자의 작품 이야기다. 지망생이라면 전반에 언급한 부분에 관심이 갈 것이고 팬이라면 후반에 언급한 작품 이야기가 가장 관심이 갈 것이다. 실제로 연재를 읽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작품 이야기를 물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재밌는 건 굳이 사전조사 없이도 워낙 잘 알고 있어 쉽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바로 출연작 이야기란 거다.
“제가 대학시절 쵸비츠 보면서 새벽세시에도 안 잔다고 엄마한테 꾸지람 받곤 했는데.”
“쵸비츠... 좋았죠.”
“세레스도 좋아했어요. 거기서 전광주 성우님의 형수로.”
“요즘 나오는 쇼콜라가 화제던데.”
“하아, 걔는... 근데 걔도 과거가 있어요.”
“금붕어 주의보 기억하시죠?”
“아하 천 세미, 그 작품 되게 재밌었어.”
“베르세르크에서 캐스커로 나오시던데.”
“제 동생이 이 작품 팬이에요. ‘누나! 성우라면 이런 작품 하나 해야 하는데..’하고 말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캐스커 역할에 캐스팅 됐다니까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작품, 감정적으로 참 힘들었어요. 시사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너무 울어서 목이 살짝 쉬고, 눈 퉁퉁 붓고.”
그녀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마치 수년을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대화를 한다.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교감이고 인연이다. 개인적으로 소중한 작품을 물었더니 무엇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다.
“바람의 검심은 TV시리즈에서의 미사오 말고도 OVA추억편에서 토모에를 맡았죠. 녹음 다 끝나고 사람들 안 보게 돌아서 주저앉아 울었어요. 추억편이 가진 정서, 토모에의 마음과 작품 특유의 분위기, 압도당하는 그 무거운 기분이 두 달을 갔어요. 배역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죽는 배우들의 심정을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겠더라구요.”
토모에..
그녀의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샤먼킹은요?”
“연재 되는 건 나와 있는 것 까지 다 찾아 봤구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가 생각하는 ‘요우 특유의 느낌, 분위기’가 표현이 안돼서 헤드폰 쓰고 눈은 나른하게 뜬 건지 만 건지 한 채로 종일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잔디밭에 팔베개 하고 누워 있어 보기도 하고, 턱을 괴고 다리 난간에 기대 있어보기도 했어요. 요우가 가진 정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안돼서 행동까지 따라 해 본거죠. 요우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하하. 녹음 들어갔을 땐, 9화까지는 대사를 아예 다 외워버렸어요.
’크게 휘두르며‘에선 감독인 나, 모모에가 참 좋았어요. 유리창 닦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감독 일을 하는 그 열정에서 내 모습을 보기도 했고, ’청춘‘ ’뜨거움‘ ’태양‘ ’여름‘ ’스포츠‘ 등등의, 이 만화를 대표하는 느낌들이 사람 심장을 마구 뛰게 하잖아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 같은 마음으로 달린다는 게 얼마나 멋져요. 몇 화에선가 제가 ’승리와 함께 에이스를 우리 것으로!‘ 하고 외치니까 선수들이 ’와~‘하고 우렁차게 호응을 하는데.. 우와.. 그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막 차오르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우리 선수들 한 명 한 명 다 안아주고 싶었어요. 하하.
최근에 녹음한 ’쇼콜라의 마법‘은 시종일관 쇼콜라 특유의 분위를 유지하느라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고, 베르세르크는 제가 너무 극에 빠져들어서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어야 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연기자가 극 자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극 안에서의 자기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울고불고 하면 보는 사람은 오히려 감정 이입이 덜 되는 거. 그래서 또 적절한 집중력의 조절, 감정적 거리 두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요우야~ 요우야~
내가 너를 만나려고, 내가 너를 알려고, 내가 네가 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나는 <샤먼킹>의 요우다! 빙의합체~~~~~!!!
VHS 테입으로 시사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동안 했던 작품들,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테입들을 고르고 골라 몇 가지만 남기고 작년에서야 폐기했죠.
내 일부인 것만 같아서 못 버리겠는 거예요.. 이런 나.. 좀 답답한 건가요? ^^
그녀는 평소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표현에 대해서도 그냥 ‘맛있다’로만 머물게 아니라 ‘어떻게 맛있다’는 것인지 보다 세세하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한다. 일상적으로는 맛있다, 맛없다로 간단하게 표현의 감도를 다루지만 연기에서는 어떻게 맛있는지, ‘참 맛있다’ ‘끝내주게 맛있다’ ‘기절할 것 같은 맛이다’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표현해 내도록 자신은 평소 감각들을 예민하게, 말랑말랑하게 열어두고 산다고.
기동전사건담시드는 애니원, 투니버스 양 채널로 방영됐다. 마류 라미아스와 나레이션을 맡았다
성우가 되고 싶다면, 준비기간 길어진다 슬퍼 마라, 당신을 단련하는 소중한 수련이다
그녀는 그렇게 맘껏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더욱 더 ‘성우, 되고 싶다’를 읊조리는 이들은 부러워진다. 이번엔 지망생들을 위한 특별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성우님에 대해선 오랜 인고의 기간을 거친 분으로만 알았는데, 말씀 들어보니 그 기간 또한 대단히 소중하고 또 기뻤고, 자신을 닦는 기간이었군요. 현재도 많은 지망생들이 수년에 걸쳐 인고하고 있으며, 또 상당수 독자가 지망생들입니다.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으시겠어요.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점 감사하고, 추가로 이들에게 해 주실 말씀도 부탁합니다.”
“으음, 어려운 도전인 건 사실이에요. 요즘은 나이 제한도 없다보니 어떤 친구들은 10년 가까이 도전하거나, 그만 두겠다고 해 놓고도 마음 속 미련을 버리지 못해 힘들어 하는 친구들도 있고.. 왜 아니겠어요. 얼마나 성우가 되고 싶은지 종종 지망생 친구들 만나면 그 열망이 읽혀서 저도 안타까워요. 인생에서 어떤 분야의 일이건 내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일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에요. 하지만 도전을 두려워하고 마음속에만 품고 사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여러분은 도전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거예요. 그런 일을 만났다면 계속 떨어져도, 혹여 좌절이라고 느낄 만큼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되도 해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좌절은 좌절로만 끝나지 않아요. 내게 삶의 큰 내공으로 쌓이게 되지. 하지만 거듭 실패할 땐 달리던 발걸음의 속도를 줄이거나 조금 멈춰 서는 시간도 필요해요. 이때는 성우시험에 왜 자꾸 떨어지나, 나보다 못하는 누구도 됐는데, 내 삶은 이게 뭔가 같은 감정적인 소용돌이에 빠져 있지 말고 자기를 좀 객관적으로 보세요. 성우가 되려는 사람으로서의 나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지.. 장단점이 뭐고 어떤 성격이고 뭘 좋아하고 남들보다 뭘 잘하고.. 또 지난 시간들, 내가 삶을 사는 태도는 어땠는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등등 나를 열심히 탐구해보세요. 그러고 나서 성우일은 나라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그 일을 함에 있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등등... 성우가 되려는 나를 또 살펴보세요. 저는 그런 탐구 끝에 만난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열정과 재능과 성실함이 있다면, 그것이, 똑같이 그 일을 꿈꾸는 사람 중에서도 내가 가진 확실한 카드라면 도전을 멈추지 마세요. 이런 카드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은 알아요. 잠시 꿈을 접게 되더라도, 인생이란 녀석이 날 다른 길로 인도해도, 언젠가는 그 길의 방향을 내가 틀 수 있으리란 걸, 혹은 접은 꿈이 다른 형태로라도 다시 발현되리란 걸 말이에요. 그런 사람은 도전을 멈추지 못해요. 멈추지 않아요. 그래도 삶이란 건 워낙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운’이라는 형태로 또는 ‘팔자’ ‘숙명’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흔들어 놓기는 하죠. 그런데 그건 치열하게 무언가에 도전해서 미친듯이 불살라 본 다음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열정의 크기가 남다르게 큰 사람은 사실 아까 말한 세 가지 카드 중 두 가지, 재능과 성실함이 무색해요. 열정을 가진 자가 재능만 가진 타고 난 천재를 앞서기도 하고 열정이 있으면 성실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고 곁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꾸준히 미친 듯이 열심히 하게 되어 있죠. ‘열심히’가 아니라 ‘미친 듯이 열심히’요.
실은 성우만큼이나 제 심장을 마구 뛰게 하는 일을 또 하나 만났는데 그건 지난해에 접었어요. 2008년에 시작해서 거의 거의 5년여를 배우고 도전했지만 작년에 정리했죠. 거의 마지막 해에는 잠을 서너 시간 밖에 안자는 날들이 많았을 만큼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렇지만 후회는 없어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후회 없을 만큼 노력해 봤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니, 꼭 할 거예요. 지금도 매일매일 그 분야에 관한 자료들을 조금이라도 보고 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멀어지게 될까봐서요. 아니 그보다, 그냥 그렇게 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그 일을 좋아하긴 진짜 좋아하나봐요. 그러니 언젠가는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게 될 거예요. 틀림없이! (웃음).
정말 열심히 미친 듯 도전해봤다는 확실한 단서가 있을 때까진 해봐야죠. 그 후에 만족하고 접어도 늦지 않아요. 그 과정도 훌륭한 거예요. 그렇게 떨어지기를 반복했던 때의 내 인생은 행복했고, 또한 분명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성우는 정말 도전해 볼만 한 멋진 직업이에요. 일이 주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큰 직업이죠. 굉장한 건 17년을 했는데도 지겹지가 않아요. 또 매 번 새로워요. 하하 ”
어째서 성우가 그토록 가치가 있는 일인지는 후에 밝힌다.
출처 다음 영화 베르세르크 극장판 돌도레이 공략 - 소문의 그 작품에서 여주인공 캐스커로 등장
성우가 되어 좋은 점은?
지금껏 만난 열네 명의 주자 모두 공통된 사안이지만, 윤미나 성우는 정말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즐기며 성우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일전에 만난 정선혜 성우는 ‘시간이 갈수록 즐거움이 늘어나는 게 성우’라고 밝혔는데, 윤미나 성우는 ‘내가 잘 못하는 성우니까 열심히 하는 거고 또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즐겁지 않다면 그렇게 노력할 수가 없다.
처음엔 그녀가 10전11기의 노력형 성우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 본인도 자신을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낮춘다. 하지만 이야길 들어보면 분명 범상치 않은 재능이 엿보인다. 오히려 천재형이 아닐까? 아니, 둘 다인가. 사실 어느 쪽이던 상관없다. 대개는 노력파보단 천재란 말을 더 큰 찬사라 생각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야 말로 그 과정이 더욱 멋져 보일 때가 있지 않던가. 확실한 건 천재가 빛을 보던 노력가가 보상을 받던 그건 즐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즐긴다면 그 사람은 어느 쪽이던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도.
“전속시절부터 해 온 습관이 있어요. 대본 나오면 영상 보기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 정독하기.- 다른 글 읽을 때는 안 그러는데 대본은 항상 밑줄을 치면서 읽어요. 언젠가 제 대사에만 밑줄을 친 대본을 보는데, 제가 제 대사에만 급급해 있더라구요. 그 대사만 도드라져 보이고. 연기란 게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내 존재감’일텐데.. 그래서 그걸 느낀 후부터는 대본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을 치며 읽어요. 특히 더빙 대본.. 제 대본 보면 남의 대사도 밑줄이 쳐 있으니까 남의 대사도 엄청나게 연구하나 보다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거 아니구요 그냥 오랜 습관의 제 대본읽기 방식이에요.(웃음)- 그 다음,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면서 전체시사 하는 거. 저는 전체 시사를 해야 작품의 내용, 흐름, 인물간의 관계도 선명하게 보이고 그래야 비로소 내 역할의 지점도 알 수 있더라구요. 일단 내용 분석이 되고 인물간의 관계가 읽히고 또, 다른 역할들을 좀 알고 나면 제 캐릭터가 가깝게 다가와요. 그래서 시사하면서 자꾸 남의 캐릭터를 기웃거리죠. 하하하. 저는 시사하는 게 참 재밌어요. 어떤 역할에 누가 캐스팅 됐나 보면서 시사하면 막 자동 더빙 되기도 하고 캐릭터와 성우가 매칭이 안 될 때는 그 성우가 어떻게 그 캐릭터를 표현할지 짐작해 보기도 하고, 어떨 땐 탐나는 캐릭터는 남, 녀 역할을 불문하고 제가 막 해봐요. 나라면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하겠어. 그러면서.. 크크크. 그렇게 재밌게 시사를 하면 녹음현장에서는 더 더 신나는 거죠. 다른 인물들이 제가 예상한 대로의 연기가 나오면 제 예상이 적중해서 즐겁고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 내면 그 의외성에 놀라기도 하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여주니까 그게 또 공부가 되구요. 거기다 혼자서 시사하고 연습하면서 도저히 못해낼 것 같았던 힘들고 어려운 장면들도 막상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다보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요. 동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공동창작. 이것이 성우로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죠. 뭉치면 살 수 있을 때. (웃음).”
시사를 할 땐 그림의 표정들도 꼼꼼하게 보고 체크해요.
“그리고 또? 성우가 되셨는데 성우가 되니 어떤 점이 또 좋으시던가요?
“반드시 성우가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좋은 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아마 이건 꼭 성우여서라기보다 연기를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는 걸 거예요. 늘상 보는 사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상도 새삼스럽게 관찰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지나쳤을 어떤 순간, 상황들이 제게는 크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 느낌들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게 되고.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이 세밀해지고 또 커져요. 거기다 우리 일이 대본 속 활자들을 현실화시키는 거잖아요.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서인지 책 읽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 재밌어져요. 책만 잡았다 하면 머릿속에 영상이, 사운드가, 캐릭터들이, 막 살아서 움직여요. 어떤 날은 프랑스가 배경인 책을 읽는데 나를 내일 당장 프랑스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책 속에서 말하는 그곳을 찾아갈 수도 있겠더라구요(웃음). 안타깝게도 아직은 연기력이, 활자를 이미지화 하는 능력을 쫓아가진 못하지만.. 뭐.. 나아지겠죠. (웃음).”
“내성적인 성격은 달라지던가요?”
“여전히 내성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달라진 거예요. 17년, 18년이 되었음에도 얼마 전까진 선배님들께 쉽게 못 다가갔어요. 선배님들 대하기가 왜 그렇게 어렵던지...”
사실 내성적인 성격이란 게 좋고 나쁘고를 분간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금붕어주의보의 천세미는 여러모로 비정상적인 캐릭터 중에서도 튀어야 했던 캐릭터다
성우 윤미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꾸준히 발견하고 노력하는데 즐거움이 있다고 밝힌다. 경력이 쌓여도 연기에 부족한 점은 늘 있다면서 그걸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이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톤이 높다보니 표현의 제한이 많았죠. 커버할 수 있는 연령대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중저음을 보강하기 위해 제 발성 구조를 살피고 방법을 찾아 열심히 연습했죠. 한동안은 나는 50대다, 60대다 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해가며 그 나이대의 아주머니들 목소리 톤과 말씨를 따라 해 보기도 했어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물건을 사러 가서도, 어딘가에 전화로 문의를 할 때조차. 친구들은 그만 하라고 난리였지만 몸에 배지 않는 연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다보니 어느새 내게도 중저음이 생겼죠. 야호!”
지금도 매주 한번 성우들과 스터디를 한다. “부족한 것이 까발려지는 것을 부끄러워 말고 즐거워해야한다”며 “그래야 더 자신을 다듬을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엔 껌같이 쉽게 하던 것들이 지금은 안 되기도 하고, 죽어라 안 되던 게 너무 쉽게 되기도 하고. 그런 것도 재밌어요. 해보려고 엄청나게 연습을 하고 고생고생하고도 해결 못했던 게 그냥 스윽 되니까 기가 차서 웃음이 나더라구요. 세월의 힘이란 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젠 성우님 정도라면 웬만큼 마음 편하게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라디오 드라마가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KBS무대 대본을 구해서 스터디를 했죠. 기꺼이 함께 해 준 우리 이장우 선배님, 우리 광주.
사랑해요~^^♥♥
전속 시절, 성우 수첩에 발성, 발음 훈련법에 관한 메모를 잔뜩 써두곤 틈만 나면 연습했어요. 그땐 모든 게 다 어렵기만 했죠. 요즘, 저 때의 마음가짐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그 밖에 성우로서 보람을 느끼실 때라면?”
“보람이라기보다. 더빙은 원판과의 비교를 피해가기 힘든데 제가 연기한 캐릭터를 두고 ‘원판으로 볼 땐 밋밋했는데, 그 캐릭터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줄 몰랐다’면서 그 캐릭터를 좋아하게 됐다는 말을 듣거나 우리 언어로 들으니까 작품을 더 재밌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 좋아요. 그리고.. 예전에 ‘최강합체 믹스마스터,라는 우리 창작 만화를 녹음했는데 우리 만화다보니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의식주와 생활, 문화들이 그려지잖아요, 그런 작품들이 해외에 수출되거나 하면 진짜 뿌듯하죠. 우리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정서나 표현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연기를 보면서 그런 것들을 접하게 될 테니까, 우리 이야기를, 우리 정서를 알리는데 내가 일조했구나 싶어서요. 일본 만화 더빙하면서 일본이 만화 속에 심어 놓은 그들 특유의 정서나 의식을 마치 우리 것인 양 표현할 때마다 -물론 인류 공통의 정서는 있지만- ’우리 것‘을, ’우리 식‘의 정서대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거든요. 얼른 우리나라 창작 만화의 기반이 탄탄해지고 저변이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창작만화에 성우의 참여가 더 많아지고. 그리고.. 아! 제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재 녹음을 많이 한 편이에요. 연세 대학교, 서울 대학교는 꽤 오랫동안 작업했고 그 외 여러 대학들, 출판사들의 한국어 교재를 녹음했어요. 요즘은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 교재 녹음들도 활발하더라구요. 그런 생각을 해보죠. ’이 교재로 공부하는 외국인들은 발음은 물론이고 나의 말투나 억양들을 따라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그럼 내 정서도 반영될까?‘
가끔 TV에서 외국인이 인터뷰할 때 진행자가 ’어쩜 외국인이신데 발음도 정확하신데다 우리말을 그렇게 예쁘게 하세요?‘하면, ’내가 녹음한 교재로 공부한 사람이면 좋겠다‘ 막 그래요.(웃음). ”
“그럼 반면에 성우가 되어 가장 힘들었던 적이라면?”
“성우 일을 못하게 될 뻔 했을 때. 사실 성우가 너무 힘들게 된 터라 소위 말하는 잘 나가고 안 나가고에 대한 조바심이나 불안, 이런 건 저한테 큰 의미가 없었어요. 나는 성우이고 성우 일로 충분한 밥벌이를 하고 사는 감사한 삶이니까... 그렇지만 언젠가 목을 다쳐 6개월간 일을 쉴 땐 며칠간 울고불고 했죠. 이 일을 다신 못할까봐서요. 매일 아침마다 ‘안녕하세요 성우 윤미납니다’.. 조심조심 떨리는 마음으로 말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제 목소리는 안나오고 거친 바람 소리같은, 사막의 건조한 바람 같은 마르고 거친 소리가 그것도 겨우겨우 나오는 거예요. 무서웠어요. 초기에는 필담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죠. 겨우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을 땐 만화 더빙은 꿈도 못 꿨고 나레이션 정도만 가능했는데 그조차도 톤과 소리 조절이 안 되어 제약이 많았어요. 말끝의 어미는 자꾸 잠기고, 꺾이고.. 그런데.. 참 웃기지 않아요? 어쩜 그 많은 말 중에 저는 아침마다 ‘안녕하세요 성우 윤미나입니다‘ 그랬는지.. 그때 진짜 원하는 게 그거였겠죠? 성우 윤미나로서의 삶을 계속 살 수 있기를. 그래서 나를 성우라고 소개할 수 있기를.. 아무튼 그렇게 몇날며칠을 울고불고 하다가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되니까 마음정리가 되더라구요. 이대로 성우 일을 못하게 되면 좌판을 열고 장사라도 해야겠다.. 제가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해서 옷도 만들고 인형, 악세사리, 가방 등등을 만들어서 가끔 재미삼아 벼룩시장 같은데 팔기도 했었거든요(웃음) 생각해보니까 성우가 안됐던 때에 비하면 성우로서의 나는 그동안 참 행복한 삶을 누렸더라구요. 멋진 작품들도 여럿, 해 보았고 실력은 부족했을지라도 하는 동안 가진 능력을 다 모아 최선을 다했구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여한이 없다 싶었어요.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 거지? 뭘 더 하고 싶어 해야 하나? 그러고보면 성우가 된 후의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을 꼭 하고 말겠다든가 잘나가야겠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이런 현실적인 욕심을 가져볼 생각조차 안들 정도로 그때그때 주어진 것들을 힘껏 해내면서 신나게 살았더라구요. 그러니까 내 나머지 삶의 시간들도 그렇게 살면 되지.. 목소리가 성우로 살기 곤란해지면 다른 선택을 하고 또 그 삶을 충실하게 살면 되지.. 물론 다른 선택을 하기까지 또 도전과 좌절의 시간을 겪겠지만.. 그러나, 삶이란 게 언제나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잖아요. 그것이 어떤 꿈, 목표를 이루어내는 데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목소리가 나오니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거듭 성우의 삶을 제게 허락한 온갖 신들, 이 세상! 무엇보다 제가 성우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대교 여러분들, 진짜 온 마음 다해서 감사해요. 요즘도 마음이 통하는 성우 동료들을 만나면 종일 성우로서의 삶, 우리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더 할 말이 없을 것처럼 했는데도 다음에 만나면 또 할 말이 있어요. 앞으로도 소중히 성우로서
목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이런 잔재주로 좌판이라도 해보려고 했어요.
소리가 뭐지? 소리를 탐구하며 살아가는 성우 윤미나
“그런데, 성우님은 사람 목소리 말고 빗소리, 발소리 등 일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신다고요?”
“소리가 뭐지? 소리란 게 뭘까.. 가끔은 눈 감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요. 예쁜
소리, 좋은 소리는 어떤 소리인거죠? 목소리가 좋다는 건 또 뭘까요? 사실 저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예쁜 소리는 아니에요. 엄마랑 언니가 저보다 훨씬 목소리도, 말씨도 예뻐요. 근데 제가 성우란 말이죠. 그러니까 좋은 목소리란 단순히 ”예쁘다“는 것만은 아닌 걸 거예요. 소리의 세계란 정말, 흥미진진해요. 내 몸을 제대로 알면 소리를 다루는 일이 좀 더 다채로와지죠. 가끔 농담처럼 의식을 신체 어느 부위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손가락 끝으로도 발가락으로도 정수리로도 눈으로도 마치 레이저 발사하듯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죠(웃음). 나 외계인인가? 능력자?(웃음). 생활 속 소리들이 누군가의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요. 문이 삐걱하는 소리가 제 친구가 징징 대며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빗소리가 마치 옛날 남자친구가 음식 먹을 때 내는 소리처럼 ‘찹찹찹찹’하고 들리기도 하는 것처럼.. (웃음)
어쩌면 코감기 목감기 걸릴 때가 내 몸의 탐구가 제일 활발해지는 때일거예요. 불편한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소리를 내려고 소리의 위치와 발성에 무척 신경을 쓰게 되죠. 성우 일을 18년 했어도 여전히 소리란 미지의 세계예요. 연기처럼 죽을 때까지도 끝끝내 다 모르고 가겠죠. 그래서 더 매력적이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선 천상소녀 같은 그녀. 소리의 마녀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 할 때다.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17년차 아니 18년차 성우가 되셨지만 여전히 많은 꿈을 갖고 계실 거예요. 지금껏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눈부시지만, 앞으로는 어떤 성우로서 살아가실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책, 그림, 영화, 공연예술 등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제 삶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들여 즐기고 좋아하는 분야니까 공부도 해가며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그런 프로그램의 기획에도 참여해 보고 싶고.. 그건 힘들까요? (웃음) 언젠가 구자형 선배님이 ‘중고신인’이라는 표현을 쓰시던데 저야말로 ‘중고신인’인 것 같아요. 재능방송에 만화 더빙을 위해 첫 입성한 게 2010년이었으니까 성우가 되고 13년만이었고 EBS도 성우가 되고 15년 만인 2012년에 처음 가봤어요, 웬만한 성우들은 다 아는 녹음실들도 저는 안 가본 곳이 훨씬 많거든요. 다른 방송사 성우들과의 작업이 거의 없는 KBS나 MBC로의 입성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성우로서의 생이 다하기 전에 그런 곳에서의 작업들(-외화더빙, 라디오 드라마.. -) 해보고 싶어요. 성우로서의 기본기는 라디오 드라마를 하면서 훈련이 된다고들 하시는데 가끔 연기하면서 벽을 만날 때면 라디오 드라마로 기본을 다지는 시간들을 보내지 못해서는 아닐까 하는.. 물론 핑계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마치 반쪽짜리 성우인 것처럼.. 아무튼 그것도 어렵겠죠? 흠..
그리고 작업 스타일은 제 성격과 잘 안 맞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광고도 해보고 싶죠. 나이가 들수록 제 목소리에도 여러 결이 생기니까 궁금해져요. 그 결들이 어떻게 대중에게 공감될 수 있는 건지..
경력만 17년, 18년이지 아직 못 해본 게 훨씬 많은, 나는야 아직도 꿈 많고 호기심 왕성한 소녀감성 성우랍니다.(웃음)
언젠가 미술관에서 우연하게 몇몇 꼬마들에게 그림 설명을 해 준 적 있어요. 함께 온 어머니들이 좀 더 설명해주었으면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뭐 도슨트도 아니고 그러고 있는게 겸연쩍어서 사양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감상에만 그칠 게 아니라 미술사나 미술 이론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꾸준히 공부하면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서는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싶어요. ‘그림 이야기 할머니?’ (웃음).”
그녀는 “연기가 뭐냐고 물으면 다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해답이란 첨부터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끝까지 모르는 거니까 더 재밌다”면서.
“뭔지 잘 모르는 것들이 끝없이 찾아오고 새롭게 찾아와요. 몰라서 괴롭지만 그 괴로움이 행복한 거예요. 어쩌면 제가 아직까지도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언제나 즐거울 수 있는 건 잘 모르기 때문인가봐요.(웃음) 무엇이든 다 알고 나면 궁금한 것도 없어지고 매력도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연기도 삶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끝까지 모를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 볼 만한 게 아닐까, 해 볼 만한 게 아닐까, 생각해봐요. 그래서.. 연기하기 싫다.. 하는 날이 올까 싶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빨리 성우가 되라고요. 이 멋진 세계에 오면 환영해 줄 테니까.”
저를 좋아해 주는 팬들이 생겼어요.
땡볕 아래에서 길게 줄을 서서 짧은 만남만으로도 기뻐해주시던 그 분들..
잊지 못해요.. 잘 지내고 계시죠?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
성우 윤미나는, 스스로에 대해 부족함이 많다며 계속 겸연쩍어 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인터뷰에 담아 팬들에게 성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고, 또 그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에 응해 준 배려에 이 지면을 통해 감사한다. 더 많은 것을 제대로 담지 못한 부족한 필력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이번 편에서 그녀가 맡은 퍼즐 조각은 성우가 되고자 하는 절실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성우가 되어서도 그 열망이 어떤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아울러 그녀가 소개해 줄 열 다섯 번 째 손님은 또 누구이며 어떤 퍼즐을 집어 기꺼이 맞춰줄지 설레어 본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그리고 고맙습니다. 꼼꼼히 공동작업해주신 윤미나 성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