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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인터뷰] 남도형 "욕 먹을때도 행복한 이 직업"

권근택 2012. 4. 3. 08:40

[성우인터뷰] 5. 남도형 "욕 먹을때도 행복한 이 직업"

 

 

서울 압구정에 자리한 애니플러스 녹음실. 신작 애니메이션 사이드킥 녹음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독 대사 분량이 많은 성우가 한 명 있다.

 

 

10대 고교생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나중엔 삽입곡까지 부르는 이 성우는 서너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레이스 속에서도 지칠 줄을 몰랐다.

"오늘 너무 늦었는데, 그럼 이틑날 만날까요?"

오랜 녹음 끝에도 생생한 목소리로 "지난 인터뷰 릴레이를 봤다"며 흔쾌히 다음 주자로 나서 준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이틑날 오전, 이 날도 다른 장소에서 또다른 일정을 앞두고 있었다. 요새 들어 바쁜 나날이다. 그러나 그는 지치는 기색 없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성우란 직업을 몰랐다면 지금 난 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욕을 들어먹어도 행복해요."

만 스물셋, 아주아주 젊은 나이에 남보다 몇년은 앞서 성우가 된 청년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서른을 맞았다. 소년 마법사 이미지로 알려진 성우 남도형을 만났다.

 

 

남도형

2005년 KBS 32기 입사

대표작

페어리테일 - 나츠 (챔프)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덴트 (투니버스)

트랜스포머 프라임 - 넉아웃, 래프 (EBS)

명화극장 8인:최후의결사단 - 이중광 (KBS)

청설 - 황텐쿼 (KBS)

슬럼독밀리어네어 - 자말 말리끄 (KBS)

닥터후 시즌5,6 - 로리 (KBS)

사이드킥 - 에릭

게임 던전앤파이터 - 남자법사

 

 

그는 특별한 소지품을 갖고 있었다. 지인들은 잘 알고 있는 그의 취미인 다트, 그걸 위해 마련한 커스텀 아이템이다. 운이 좋다면 판타지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들었던 그 젊은 마도사가 "얍 얍"하며 비수(?)를 던지는 것을 다트 카페에서 확인할지도 모른다.

그가 여가시간에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위닝일레븐(축구게임), 다트, RC카... 영락없는 틴에이저다. 그것이 어린 목소리와 정서를 간직하는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위닝으로 붙자"고 기약없는 약속까지 했다.

 

 

"가장 자신의 본디 모습과 비슷한 분신은 누구였냐"고 물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저장해놓은 자기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보여줬다.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의 덴트요." 

현재 방영 중인 이 포켓몬 새 시리즈에서 그는 과거 주인공 지우의 동행벗이었던 웅이의 역을 대체하는 새 캐릭터 덴트 역을 맡았다. 요리 담당에 풍부한 지식, 말끔한 신사풍에 친화력 높은 이 캐릭터를 담당할 땐 본래 자신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온화한 캐릭터가 자신과 잘 맞다는 거였다.

그러나 역시 남도형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최근의 주연작은 페어리테일이다.

인터뷰를 앞두고 슬쩍 국내 유명 성우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성우갤러리에다 언질을 줬다. 물론 이번 인터뷰 주인공이 누구일지는 알리지 않고 '불꽃남자'라고만 했다. 그런데 대개가 슬램덩크에서 '불꽃남자 정대만'의 구자형 성우, 혹은 강철의연금술사에서 '불꽃의연금술사 머스탱'과 바람의검심에서 '불꽃의 악마 시시오'를 열연한 성완경 성우 두사람을 언급했다. 힌트이기도 하고 페이크기도 했다. 물론 내가 대충 예상한 답안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나츠로 인해 그도 불꽃남자 3인방으로 알려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출처 다음 영화 '페어리테일' 자료게시판

 

그렇게 해서 주인공 5인방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되는 불꽃의 마도사 나츠를 맡아 팬들 사이에서도 호평이다. 그는 "물론 나츠와 평소의 나는 서로 다르다"고 웃었다.

"같을 수가 없죠. 저렇게 방방 뛰는 캐릭터하고. 그래서 페어리테일 녹음이 잡히면 당일엔 다른 스케줄을 안 잡아요. 하루 전날은 컨디션 조절을 하고요. 나츠 한번 하고 나면 제가 죽어나요. 애가 얼마나 성우를 힘들게 하는지."

"난 그 연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특별하게 느꼈어요. 왜 4부에서 또다른 적(현경수 성우가 까메오로 했다)이 "불꽃마도사의 약점이 뭔지 아느냐"고 물을 때 나츠가 눈이 똥그래지며 "설마, 아무데서나 멀미 하는거?!"하고 되물어서 보는 사람 폭소하게 만들때 있잖아요. 이런 스타일의 연기도 가능하구나 싶었어요."

"맞아요. 저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해요."

페어리테일은 그의 연기 경력에 있어서도 고마운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재밌는 점은 일반적 캐스팅과는 사뭇다른 점인데 주연작은 신인 내지 전속 성우를 기용하면서 조연급과 잠깐 몇부 등장하고 지나가는 캐릭터엔 경력 10년이 넘은 A급(성우는 경력에 따라 A,B급으로 나뉜다) 성우가 포진했다. 흔히 비중있는 역에 검증된 베테랑을 기용하고 사이드에 젊은 기수를 선택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이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다. 

페어리테일의 주인공팀만 보더라도 본인 빼면 나머지 주인공 넷은 모두 대원극회의 1,2기 성우인데 아무래도 타 극회에 비하면 신참급이다. 이렇다보니 그나마 남도형 성우가 이 중에선 무게를 잡아주는 몇년 차 선배다. 그러나 그의 '데뷔 7년차'라는 경력 또한 베테랑들과 비교하면 신인에 가깝다. 

"언제 제가 고정 배역으로 이렇게 많은 선배님들을 돌아가면서 상대해 보겠어요. 고정배역으로는 쭈욱 함께 하고 계신 유해무 선배님이 있지만 휙휙 지나가는 배역에도 엄청난 분들이 많아요. 1화에 잠깐 등장한 정재헌 선배님 시작으로 시영준 선배님도 잠시 등장했고, 장광 선배님, 윤미나 선배님, 최재호 선배님, (최)승훈이형, 현경수 선배님 등이 계속 등장했어요.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 특별한 행운이라 여겨요." 

"그런것도 있고, 솔직히 그런 분들을 적으로 만나 죄다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도 쉬운 기회는 아니죠?"

"솔직히 그것도 그렇죠? 감사란 말로는 부족할 지경의 경험이죠. 정재헌 선배님은 지금 그 무게감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맡아 나츠의 첫 희생양으로 한방에 날아가 버렸고, 현경수 선배님도 충격적인 등장과 하차였죠. 결국 몇분 못 버티고 나츠한테 통구이가 됐으니까. 언제 또 그렇게 해 보겠어요."

 

 

그는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느끼는 작품이 둘 있다고 했다. 하나는 이 작품 페어리테일이다. "나를 100부 남짓(현재 국내에선 시즌1인 48부까지 방영했고 곧 2기가 방영된다)한 장기 애니메이션 주연으로 발탁해 팬들에게 알리게 한 작품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하나는 외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문학가의 등단작, 프로듀서의 입봉작처럼 성우에겐 첫 주연작이 잊지 못할 작품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도 내겐 고마운 작품이예요. 나츠가 그래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임한 캐릭터라면 이 작품은 정말 준비할 겨를이 없이 닥쳤던 주연이었어요. 당시 저는 뭐랄까, 내 스스로의 발전가능성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에 있어 정체된 느낌이랄까, 슬럼프를 의식하는 시기였어요. 그런데 이때 생애 첫 외화 주연을 맡은 거예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을 달리했지요. 이것을 부담으로 생각말고 지금의 날 깨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선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어요.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날 슬럼프에서 탈출시켜 준 거 같아요." 

팬들에겐 나츠가 유명하지만 녹음현장에선 슬럼독으로 내 이름이 먼저 알려진 것 같다는 성우 남도형이다.

또 하나 그가 밝히는 대표작이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남법사다. 게임이 유명세를 타던 당시 "던파의 남법사 성우는 누굴까"라는 기사가 뜰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가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당시 게임사 사장님이 '캐릭터가 아닌 성우가 거론되는 건 처음'이라고 말하더라"고 덧붙인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로 제가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네요. 로리에 나츠에, 어제 녹음장의 에릭까지 같은 사람의 캐릭터 같진 않잖아요? 다양한 연기 보여드리려 노력 중이예요." 

어리고 고운 목소리의 소유자는 트렌드가 바뀌어도 항상 환영받는다. 개성을 추구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원하는 성우계의 현흐름에 있어서도 여전히 그들의 유니크함은 장점이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는 흐름을 생각한다면 청소년의 목소리 수요를 생각해도 그렇다. 때문에 미성을 소유한 그는 소유하지 못한 자에 있어선 복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 때문에 부담이 컸다고도 말했다. 어느 한 영역에만 머무르다 도태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또 그 때문에 스스로 슬럼프를 의식했다. 그래서 시도한 캐릭터의 다양화가 현재 빛을 보고 있는걸까.

"EBS의 트랜스포머 프라임에서 제가 중간에 넉아웃으로 등장해요. 갑자기 등장해 강력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그런 스타일의 캐릭터라 시리즈 초반부터 투입됐던 성우진 사이에서도 '누가 이 캐릭터를 맡을까'하고 궁금해 했대요. 그런데 설마하니 제가 될 거라 누가 상상했겠어요."

현재 다큐멘터리 해설도 소화하고 있다.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나레이션을 맡아 한창 녹음 중인 것. 그런가하면 EBS 애니메이션 '아바다스'에선 박지윤 성우와 함께 또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뿐만이랴. 오디오드라마CD업계에서 화제가 된 보이스러브물 '별숲'에서는 이주창 성우와 함께 새로운 영역을 시도했다. 물론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평이다. "수위가 좀 강한 부분도 있었는데"라고 멋적게 웃는 그다.

 

 

언제 성우를 인지하게 됐고, 또 어떻게 성우를 지망하게 됐는지 물었다. 스물셋 젊은 나이에 성우가 된 사람이기에 어릴적부터 꿈이 아니었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솔직히 나이 스물하나가 되서야 성우를 의식했노라"고 말한다.

"대학생 때예요. 어머니가 제 사주를 보셨더니 '말을 하면 사람이 보인다'는 묘한 점괘가 나온거예요. 그 말을 듣고서 제 장래를 고민하게 됐고, 그러다 캠퍼스에서 학교 수습 아나운서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마침 외국인 인터뷰의 번역본을 더빙하게 됐는데 이게 재밌는거예요."

대학 재학중인 상황에서 시작한 성우시험. 그리고 졸업을 앞둔 그 해 3전4기로 붙었다. 열번 이상 응시해도 1차합격 한번 못해보는 사람에겐 그 정도면 아주 부러운 전과다. 그 조차도 모두 1차시험은 패스했다고.

"졸업 문턱에서 돌아보니 국내에서 내가 선택할 패는 성우 뿐이었어요."

"국내에서는?"

"사실 그 때 졸업하고 곧장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시험보기 석달전부터 애리조나 어학연수를 준비했죠. 원래대로라면, 그러니까 그 때 성우가 되지 못했다면 전 거기에 갔을 거예요."

그것도 천운이었다. 성우 남도형은 7년 전 그때를 회상하며 "아마 지금이라면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창한 나이였기에 떨지 않고 했는데 그게 성공했다"며 "부담감이 없어서 좋은 결과가 이어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물론 그 때는 졸업을 앞두고 있어 앞서보다는 조금 긴장감을 갖고 임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일찍 성우가 된 것이 마냥 유리한 건 아니었다고도 회상한다. 도리어 그 때문에 연배들과 함께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따랐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이리저리 치인 덕에 배운것도 많다는 설명이다.

 

 

이제 서른에 닿은 청년. 누군가에겐 뭔가를 시작하는 나이건만 그는 벌써 성우 7년차에 닿아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성우란 직업은 무엇일까.

"이 직업을 내가 몰랐다면, 과연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봐요. 지금은 욕을 먹어도 행복한 시기예요."

남도형 성우는 지금 자신이 당도한 곳이 어디쯤인가란 질문에 "꿈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지요. '다 이뤘다'란 말은 분명 맞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겸손하게 '아무것도 없어요'라 답하는 것도 지금 질문엔 안 맞는거 같아요. 그저 '이제 열심히 하면 다 이룰 수 있는 출발점에 있다'는 정도의 답변이면 적절할 거 같네요."

 

 

"솔로인지 오래"라며 "소문 좀 내 달라"는 청년. 하지만 막상 그가 불 같은 사랑을 하게 되면 혹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그 순수한 소년이 사라지진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 매력적인 해맑은 캐릭터 말이다. 아니다. 물론 소년을 넘어선 남자도 충분히 매력적이리라. 

언젠가 머지 않은 미래에 그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같이 해요'라고 사인해 주었다. 부적처럼 느껴진다. 재회할 날이 머지 않았길 바란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