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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인터뷰] 4. 박영재 "어려움도 행복히 보냈더니 꿈 이루더라"

권근택 2011. 12. 26. 08:00





"바로 붙었냐고요? 아뇨 저도 일곱번 떨어졌죠. 그래도 지망생 시절은 행복했어요."

지난번 장민혁 성우는 절친을 소개해 주었다. 실제로도, 또 홈즈와 왓슨으로도 우정으로 얽힌 또 한명의 젊은 기수 박영재 성우를 만났다.



박영재
2004 KBS 31기 

주요작
명화극장 굿바이(KBS) 고바야시 다이고
셜록홈즈 (KBS) 왓슨 박사
가면라이더 덴오 (애니박스) 데네브
프리큐어 파이브 시리즈 (챔프) 붐비
위스컬 삐요 (투니버스) 아빠
원초적본능2 (KBS) 프랭크스
트랜스포머 (KBS) 재즈
테이큰 (KBS)
콜드케이스 (KBS) 루이 찰리






어떤 분야건 간에 꿈을 이룬 사람은 이제 지망생으로 살아가는 이들 눈에 환상이요 우상이다. 그래서 절로 존경하고 경애한다는 말을 기꺼이 꺼내어 우러러 본다. '200대1' 경쟁률의 성우 고시 또한 다를 바 없어 성우지망생에게 현직 성우는 하나 같이 '목표'라 불리는 특별한 존재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할 주자는 또 다르다. "어떻게 성우가 됐는가"만 해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셜록홈즈의 '왓슨 박사'로 알려진 박영재 성우는 성우지망생이라면 '짠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요 증인이다. 지금은 팬들이 '젊은 기수의 희망'으로 꼽아 마지 않기에 옛이야기는 내심 놀랍다.
바늘구멍에 낙타를 들이미는 꿈의 전쟁터에서 무거운 짐은 다 짊어진 채 도전장을 냈었다.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운 전장에서 한 손엔 무거운 기관총을 들고 등엔 통신기를 메고 다른 한 손엔 부상당한 동료를 이끈 채로 활로를 뚫는 병사의 모습이다. 

"그 땐 서울 천안 구간에 지하철이 없었어요. 기차타고 다녔죠."

"4년? 아니 5년인가 미역국을 꽤 먹었죠."

"애가 둘이었어요."

"그땐 나이제한이 있었어요. 나중엔 거기에 딱 걸리는거예요. 지금도 있잖아요. 나이 문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 중 단 한가지만으로도 "에이 됐어"하고 목표를 접을지 모른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꺼낼 수 있는 어려움은 다 갖고 있었던 게 10여년전 서른즈음에 성우를 지망한 청년 박영재였다.  

그는 황희 정승처럼 단박에 당락을 결정지은 천재형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처럼 수차례 낙방을 경험한 대기만성형의 성우다. 99년에 정식으로 뜻을 뒀고 2004년에 KBS 31기 성우로 꿈을 이뤘다. 적지 않은 그 시간동안 그는 시간적, 장소적, 생활적으로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의 모습을 보면 대단히 선량하게 느껴진다. 궂은 시절을 났음에도 그것이 사람을 더 인내하고 둥글도록 조각했나 보다.

99년, 이십대후반의 청년 성우지망생이 끊는 출발선은 아무리 봐도 무리수였다. 먼저 장소. 성우 공부는 지방에서의 독학이 어려워 사실상 한양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같은 현실이다. 그는 서울시민도 아니고 경기도민도 아니었다. 

"당시 천안이요, 온양 온천 있는 그 즈음에 있었죠."

지금은 지하철 1호선으로 이어지지만(그래도 만만찮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땐 그나마 국철도 연결되기 전이었다고 했다. 편도 두세시간 왕복 네다섯시간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학원을 다녔다.

바로 됐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몇번인가 낙방해야 했다. 20세기가 지났고 새천년을 맞았고 그러다 어느덧 '계란한판'나이를 맞았다.

"전 홀몸도 아니었어요. 당시 결혼도 했고 애가 둘이었어요."

지금은 공채에서 완화 내지 철폐됐다지만 그래도 여젼히 걸리는 게 나이다. 홀몸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그 때는 사정이 달랐다. 엄연히 나이제한이 각 방송국마다 있었다.  

"제가 한창 공부할 때만 해도 나이제한이 있었어요. 그러던게 합격하던 그 해 즈음 MBC, KBS가 차례로 철폐하더라고요."

"합격하실 때 나이가?"

"서른 하나요. 나이제한 있을 때라면 딱 커트라인이었어요. 당연히 불안도 했죠. 만일 그 때 또 떨어졌다면 아마 전 여기 없었을거예요. 비록 나이제한이 그때 풀렸다고는 해도 글쎄, 총각이면 계속 했겠으나... 아마 포기했겠죠. 가장이니까. 좋은 공부를 했다 만족하며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매우 추웠을 나날이다. 안쓰러워하면서도 뒷바라지 해준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또 고마웠을 것이다.

"KBS 붙기 전에 한번 타 방송국 시험에서 최종까지 간 적이 있어요.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떨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주위에서 '실망하지마, 형은 실력 때문이 아니라 서른이 넘어서 그래'라고 말했어요. 아니나다를까 그 때 서른 즈음의 사람들은 다 낙방했고요."

나이제한의 속박은 꿈을 먹고 사는 자들에 있어 사형선고만큼이나 공포다. 불확실한 앞날처럼 안개 자욱한 기차길을 수없이 오가는 그 길이 편했을리 없다. 그런데 그는 "난 그래도 그 지망생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전 그 때가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또 칭찬이라도 들으면 너무 좋고. 기차 안에서 복습하고. 꿈을 위해 사는 건 그렇게 즐거워요. 반대로 '너 천안에서 왔어? 왜 왔냐'하고 누군가가 생각없이 말을 꺼내면 마음이 아팠죠."

그는 "목적지에 닿았을 땐 애 딸린 최초의 남자성우란 타이틀이 붙었다"고 회상하다 웃는다. 성우를 희망하는 것을 가벼이 여기던 사람, 어느새 열의를 잃은 그런 사람에겐 그의 존재 자체가 귀감이다. 그렇게 추운 겨울도 "올해 겨울은 따뜻했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수한 열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지금은 전혀 늦지 않았으나, 그 땐 나이가 꽉 찼던 늦깍이 성우지망생 박영재는 그렇게 성우가 됐다.




"오늘 6시에 라디오드라마 녹음이 있어요. 김정호 선생님, 김지혜 선배님, 주재규 님...쟁쟁한 분들 사이에서 잘해야 될텐데. 대본이 좀 일찍 나와주면 더 깊이 준비할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또 송구하죠."

이제는 프로다. 지망생 때보다 연습시간은 줄었을지언정 대본을 대하는 태도는 차원이 달라지고 자연히 집중도도 높아진다고 말하는 그는 이렇듯 이제 바쁘고 '잘 나가는' 성우다. 그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시하는데, 그 믿음은 외화 녹음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아직 그는 성우세계에서 프리랜서가 된지 오래 되지 않은 젊디 젊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올해 벌써 '명화극장' 타이틀의 주연으로 활약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굿바이 라는 일본영화였어요. 여주인공이 그 유명한 히로스에 료코라서 성우들 사이에서도 '누가 그녀 역을 할 것이며 또 복받은 상대 남자역을 할 것이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제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됐죠."

행운과 우연이 겹쳐 맡게 된 배역을 그는 기존 외화에서의 통념을 깨는 시도로 완성했다. 프로듀서의 주문도 "한국말 답게 하라"였고 그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연기는 자연스러워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성우처럼은 하지 마세요란 아이러니한 주문을 녹음실에서 심심치 않게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출처 다음 영화 굿바이 포토게시판
- 박영재, 이승주 두 동기는 기존 외화와는 사뭇다른 느낌의 더빙을 선보였다



"저도 그렇거니와 히로스에 역을 맡은 승주(동기로 입사한 성우 이승주)도 그렇게 캐릭터를 소화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배우가 호리호리한게 평소 저와 캐릭터가 달라서 어떤 모습으로 접근하나 나름 고민했죠. 공들였기에 더 기억에 남나 봐요. 결과는 역시나, 우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렸죠. 젊은 성우층에선 '새롭고 자연스러워 좋았다'고 반기는 반면 나이있으신 선배님들은 '그래도 외화의 주인공인데...'하면서 '영재 너가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니냐'하고 우려하시더군요."

2월 방영한 이 작품은 젊은 두 사람의 주연을 베테랑인 장광 성우(도가니로 유명한)와 민지 성우, 지난 주자였던 장민혁 성우 등이 뒷받침하면서 기존 외화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더빙으로 만들었다. 특색있는 신구의 조화다. 
반응은 어땠을까. 일단 방영 다음날 국내 최대 한국성우팬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성우갤러리(http://gall.dcinside.com/list.php?id=radio_actor)에선 대체적으로 '파격적이라 불안도 했으나 만족할 결과물이 나왔다'고 호평인 반응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에 아쉬움이 있어요. 장광 선생님도 절 칭찬해 주셨지만, 전 조약돌로 죽은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 그 라스트신에서 제대로 흐느끼지 못했다고 자성하고 있어요."




굿바이 이전, 작년에도 그는 앞서 다녀간 장민혁 성우와 함께 '큰 일'을 저지른 바 있다. 프리랜서로 갓 풀린 젊은 기수 둘이서 셜록홈즈라는 신작 외화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으니 그들 스스로도 많은 고심을 했다.

"그때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결졍했거던요."

"장민혁 성우도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 때 원래는 왓슨 역 오디션을 보러왔다가 본인이 셜록이 됐고. 성우님이 왓슨이 됐다고."

"말하자면 궁합을 본 거였어요. 셜록에 장민혁이라면 그를 받쳐주는 캐릭터 왓슨은 누가 맡아야 최적의 조합이 나오겠느냐였죠. 결론은 장민혁, 박영재 콤비가 가장 낫다였어요. 이번에도 운이 따른거죠.."

그도 자주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드나든다고 밝혔다. 당시엔 성우갤 뿐 아니라 영드갤(영국드라마갤러리)을 '눈팅'하며 분위기를 살폈다고 한다. 거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길래 많은 고심을 하며 준비했다고. 막상 나오고나니 "더빙이 잘 나왔다"는 댓글이 달리기에 기뻤다고 밝히는 그다.

"DVD에 더빙판을 입혀 출시해달라"는 소리도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이뤄졌죠. 더빙이 호평받는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보람있죠. 김옥경 선배님(2009 KBS라디오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이 "너 그 때 잘했으니 팬 좀 있을거다"라고 하시더니 정말이에요. '시와 음악이 있는 밤' 행사 때 참석했는데 '이 사람이 왓슨'이란 말에 작품팬들이 사인을 요청해 와요. 제가 사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배들이 웃던게 기억나요.

그는 더빙 팬들 사이에서 말 많은 연예인 캐스팅 더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내 소견으로는 진짜 아역이 아역을 맡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일반 연예인이 준비없이 배역을 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맛도 없고 배역을 살리지도 못할 뿐더러 결과적으로 '더빙의 재미'가 없어진다"고 반대했다.

"쿵푸 팬더 보셨어요? 전 그 캐릭터를 맡은 엄상현 선배(EBS 성우)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없다고 감탄했어요. 하물며 연예인이라면 어떤 이가 해도 그렇게는 살리지 못해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아마 저라면 뚱뚱한 캐릭터만 잡고 '어우 왜 이러세요?'라고 했을 텐데 정말 그 선배님은 천재적인 감각으로 전 상상도 못한 독창적인 캐릭터를 내보였어요. 그게 전문성우의 힘이죠." 




개인적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물론 앞의 외화들은 빼고 말이다.

그가 말한 작품은 뜻밖에도 악역이다. 챔프와 애니박스, 애니원 등 대원계열 케이블애니메이션채널에서 사랑받은 마법소녀물인 프리큐어 파이브에서 등장한 악의 간부 '붐비'다.

"제가 아저씨잖아요? (웃음) 저 같은 스타일 보고 '훈훈하다'고 하신다면 그건 나이가 드셨다는 증거죠. (폭소) 근데 그 캐릭터가 보면 나랑 잘 맞아요. 악당이지만 밉지않고 코믹한 스타일도 잘 맞았고, 40대 아저씨를 염두하며 연기했어요."

실제로 그 캐릭터는 전형적 악당과는 거리가 먼 생계형 악당이다. 악당조직 자체가 현실 속 주식회사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그는 위에서 치이고 아래서 욕먹는 월급쟁이 중간간부로 나와 연민을 자아냈다. 2기 땐 1기서 파산(괴멸)한 회사에서 새 조직으로 옮겨 면접을 보고 채용되거나 적절하게 아부를 하는 등 상당히 유머러스하면서도 공감가는 현실을 반영했다. 결국 붐비는 시리즈 초반 등장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결국 마지막 편에서 어떻게 됐죠? 살았죠?"

"살았죠. 자기 사업 차려서 살더라고요."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니 깜박했다. 어떤 역경을 딛고 성우가 됐는가는 물었으면서 어떤 동기로 어려운 길을 택했는지는 안 물었지 뭔가.

"솔직히 막연하게 출발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제게 재능이 있다는 걸 느꼈죠. 선생님이 희곡 시나리오를 학생들에게 녹음을 시킨 적이 있어요. 근데 거기서 제것을 갖고 수업하시더라고요. 고교 땐 웅변대회에도 나갔어요. 국어시간에 낭독을 하면 선생님이 나만 시켜요. 또박또박 잘 읽은게 주효했나 봐요. 그때 아 제게 뭔가 방송의 끼가 있구나 싶었어요."

"선생님들도 추천하시던가요?"

"담임선생님이 그래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아나운서가 되어야 해'라고. 그러다가 '근데 넌 영,수가 안되잖아!'하고 쓰다듬던 머리를 냅다 때리시더라고요. 하하."

학창시절 그렇게 해서 막연하나마 '방송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그. 그러나 성인이 되었을 때는 잠시 그것을 잊고 지냈다. 고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점장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또 자녀를 얻어 가정을 꾸렸다. 어쩜 그렇게 그는 목소리 좋고 사람 좋은 동네 옷가게 점장님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가게에서 영업을 하며 외치다 보면 손님 아주머니들이 그 목소리를 듣고 '뭔가 보통사람들하고는 차별되고 좋다'라고 말하는거예요. 그때 학창시절 일이 떠올랐죠."

막연하게 '방송일'이라 칭한 범위를 좁혀 봤다. 말 그대로 '막연히 먹고사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게 그의 말이다. 

"방송국 들어가려니 대학도 나와야지, 남자는 군대도 가야지... 그럼 벌써 이래저래 스물여덟 안팎이거던요? 그 때 제 나이도 그 정도였고. 그래서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하고 하나하나 가지를 치고 보니까 성우가 딱이예요. 영어시험도 없고, 말 그대로 순수하게 목소리와 역량으로만 승부하면 되니까. 학창시절 자신감을 얻었던 이 목소리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쉽지않은 선택이었고 결단이었다. 또 예상대로 장기간에 걸친 레이스였다. 합격하던 마지막 시험때는 "마지막이란 각오를 했더니 도리어 마음이 편해져서 도움 받은 것도 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행복하신가요?"

"어우 물론! 소원을 이뤄서 즐겁게 살지요. 행복해요. 또 다른 목표도 생겼어요. 어떤 성우가 될 것이냐 하는 거죠. 그리고 자녀들에게 당당한 애비가 되자! 하는 목표도 세웠어요. 결국 그것은 당당한 성우가 되는 거죠."

그는 성우가 되어 존경할 수 있는 선배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또 좋다고 말한다.

"문선희 선배님은 성우로서의 모습과 사적으로 뵐때의 모습 모두가 존경스러워요. 쉼없이 항상 도전하는 분이거든요. 이선 선배님은 연기적 관념이 확실해서 부러워요. 엄상현 선배님은 제가 연기적으로 가까워지고 싶다고 끌리는 마성의 분이죠."

그는 성우시장이 어렵다는 회의적 관점에 대해 일부 수긍하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우리의 다이어리는 넘겨보면 일을 참 많이 했지만 내일 당장의 예정은 없는 일"이라면서도 "그런데 갑자기 하루 전에 일에 관한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더불어 "더빙시장에서 특정 프로그램이 폐지된다고 해서 바람에 날아가듯 성우들이 그 영향을 바로 크게 받을 거라던지, 또 전속성우를 많이 뽑아 경쟁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일감이 줄어들고 기존 성우들이 위기를 맞는다고 속단하는 건 착각"이라며 진취적인 눈빛을 내보인다.

"물론 전 과도기에 있어요.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 실험의 선상에 있죠. 그러나 제가 스스로에 충실해서 '박영재? 연기 잘하는 애잖아'하고 선배님들에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면 목표는 분명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서 정진하고 하고 있어요."

네번째 주자로 만난 박영재 성우는 음지에서 강인하게 다져지기에 밝게 살아갈 수 있는 성우가 탄생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다음 주자로 누굴 소개할지 내심 기대한다. 다음 번엔 또 어떤 이가 성우의 또다른 면모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인가.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