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씹기 딱 좋게' 기사 내보낸 세계일보

 

[단상] '씹기 딱 좋게' 기사 내보낸 세계일보  

  
파워블로거 한글로 님을 처음 만났을때다. 그는 어떤 인터넷 논란을 안주삼다 이렇게 말했다.

"단상이란게... 그 뜻이 뭔지 알아요? 짧은 생각이야 짧은 생각. 내가 무지 싫어하잖아. 근데 그 친구는 걸어놓은 제목 그대로 진짜 생각이 짧어, 우하하..."

'단상이란거, 좋은게 아니로구나'라 생각했다. 그래도 이거 말고는 더 좋은 표제가 생각 안나서 말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짧고도 한순간 퍼뜩 떠오른 생각에 착안한 주저리. 남의 기사를 씹으니 내 것도 짧은 생각으로 남에게 씹히는건 뭐... 감수해야지. 

일명 '강호순 팬카페'로 불리며 논란을 낳았던 네이버의 '연쇄살인범 강호순님의 인권을 위한 카페'(http://cafe.naver.com/ilovehosun). 결국 6일, 개설자 스스로가 폐쇄해버리는 결말로 치달았다. 개설자는 "국민들에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글과 함께 카페글을 삭제했다. 현재는 접속이 불가한 상황이다.

그런데 개설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고교생이라고?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세계일보의 이 기사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 그리고 이게 단상의 시작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206145815678&p=segye)

먼저, 기사에 대한 생각을 먼저 독자께 묻고 싶다. (링크 열고 묵독해 주세요 굽신굽신)

그럼 한숨 돌리고. 스타트.

내 생각? 제목에 다 밝혀놓은대로. 말 그대로 "씹기 딱 좋게 기사를 내보냈다"는 것이 내 단상이다.

미리 말해두건대, 이건 저 기사에 담긴 주관과 내 것이 충돌했다거나 해서 논쟁하려는 것은 아니다. 저 기사내용대로 인터넷 정보 유출에 따라 개설자가 '죽여버려야 할 상대'로 지목되며 신변에 위험 가능성이 제기됐다면 그 또한 하나의 논란이자 문제고, '개인정보 유출'과 '마녀사냥'에 대한 원론적 문제는 분명 충분히 제기할 법한 요소니까.

내가 꺼내고자 함은, 다시 말하건대 내용을 떠나 기사 자체를 참으로 '씹히기 좋게' 흘려보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저 개설자가 밟은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 같은 말이라도 공분을 사고 논쟁 더미에 앉기 딱 좋게 나와버렸다.

먼저, 이 기사의 담긴 주장을 살펴보자. 이 글은 개설자가 홈페이지를 폐쇄했어도 그의 신상정보가 유출돼 "죽여버려야 한다"는 비난여론이 일어 새로운 논란이 예상된다는 점, 그리고 이것은 '인터넷 마녀사냥'이 시작된 셈이며 이는 잘못된 것이란 주장을 담았다.

태클 들어간다. 한번 더 밝히는데, 이는 저 주장에 따른 찬반이 아니라, 이를 풀어놓는 과정에 따른 스킬의 문제다.

'마녀사냥'이란 단어 선택부터가 물음표를 그리게 한다. 본래 마녀사냥이라 함은, 아무 잘못없는 여인을 근거없이 잡아다 화형에 처한 죄악이다. 결국 이를 사용하려면 그 대상이 순수히 무고한 희생자 내지 해괴한 논리로 역적몰이에 내몰린 피해자에 붙여야 옳다.

원, 시시비비를 떠나 그 논란의 대상이 분명하고 투, 하물며 비난의 빌미를 스스로가 분명 제공했다면 이는 그릇된 표현. 비난하는 이들을 성토할거면 차라리 '집단린치'나 '떼거지로 덤빈다'로 성토함이 맞다. 물론 이번 문제는 후자에 해당한다. 

언젠가부터(정확히 말하면 촛불집회 정국부터다) 보수언론에선 인터넷 반응을 보도할시 '마녀사냥' 내지 '인민재판'이라 단어를 즐겨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상에서 줄비난이 퍼부어지면 그 상대를 무고한 희생자로 전제하며 이를 잘못된 여론몰이의 폐단으로 그렸다. 결국 이 기사는 이번의 인터넷 여론 전반을 이유없는 광풍으로 전달하는 과오를 범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 이번 사태는 윤리적으로 워낙 흑백명암이 강했기에 이 정도 반응은 예상되지 않았나? 이후 벌어질 수 있는 또다른 사태에 착안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좋으나 결국은 네티즌에 대한 신문 본지의 논조까지 거론할 수 있는 빌미를 제기하고 말았다.

둘째가 논란성 예시. '최근 촛불집회 진압 의경, 미네르바 영장 발부 판사 등'을 전례로 들며 "개인정보 공개 이후 논란을 빚었지만 인터넷 마녀 사냥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자. 앞서 밝힌 문제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역시 시시비비는 접어두기로 하고, 앞서의 예제 모두가 현 정치적 문제에 있어 친정부적, 반네티즌여론에 직결되는 사항이다. 촛불집회 당시부터 넷상에서, 또 거리에서 집결한 군중을 비난하던 메이저 신문 진영엔 조중동의 빅3와 문화, 국민을 비롯해 이곳, 세계일보도 있었다. 과거 전례를 꺼내든 것이 '역시 다른 의중이 있다'란 의혹으로 통하는 모양새가 됐다.

논설이나 사설에서도 신중히 피했어야 할 부분을 그대로 일직선상에 통과한 꼴이다. 솔직히 말해 기사를 통과시킨(혹은 더 불거지게 했거나 전혀 그렇지 않던 본기사를 이렇게 왜곡시켰을 수도 있다- 기자 입장에선 제일 열불나는 상황) 데스크의 의향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셋째, 주관과 객관의 줄타기에서 완전히 실패, 안전그물로 추락해 버린 점이다. 차라리 이에 비교적 자유로운 블로거기사의 노선을 택하던가, 아님 완전히 전형적 기성 기사로 가야 하는데 이건 후자의 양복을 걸친 전자의 옷걸이가 돼 버렸다.

'"살인마를 옹호하는 사람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어긋난 생각을 가진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이 다시 시작된 셈이다.' 란 부분.

'죽여버려야 한다란 어긋난 생각'이란 부분은 얼추 맞는 말 같기도 한데, 역시 앞서 밝힌 '마녀사냥'과 엮이며 이상해져 버렸다. 결국 어조 자체가 매우 주관적으로 변해버렸는데 '어긋난 생각을 가진 네티즌', 이 부분은 이를 읽는 네티즌 독자가 앞뒤 다 잘라먹고 곧장 '욱'하기 딱 좋은 도발성 문장이 됐다.

물론 객관성 유지를 전제하더라도 주관없는 기사는 또 기사가 아니긴 한데... 이게 또 미운털 박히기 딱인 흐름으로 나갔단 말이지. 인터넷 유출로 개인정보가 흘러나갔고 이것이 홈페이지 테러로 이어지거나 무차별적 정보 유포로 문제의 반복이 될 수 있음을 확실하게 전달한 건 좋으나, 이 흐름에서 안타까운 부분이 누차 감지된다. 아까도 말했는데, 이는 문제의 카페 개설자가 범한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저 카페의 개설자는 폐쇄 전까지 '내 카페엔 이러한 당위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범죄자의 인권도 소중하다"며 인권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는데, 평가여부를 떠나 어쨌든 뭔가를 제시했다는 게 본지에서도 함께 알렸던 다음의 '위대하신 살인황제폐하' 카페와는 차이가 났다.(이건 대놓고 살인마 숭배였다) 물론 개설자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던 간에 네티즌에겐 아래의 이유로 완전히 묵살됐지만.

개설자의 카페가 융단폭격을 당한 것은 다름아닌 그 주장으로 살리고자 했던 호소력을 스스로가 파묻어버린 기막힐 처신에 있다. 도무지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려울만치 경솔한 것들이 담겼다. '킬, 데스'로 희생자를 게임 캐릭터의 스코어 마냥 세어버린 것은 결국 그가 고교생임이 밝혀지자 그대로 한데 엮여 "그럼 그렇지"란 조소로 흘렀다. 나름 언론보도에 반박하는 성명서(?)를 내걸긴 했는데, 문제가 된 '아이러브'나 '그레이트킬러'에 대한 해명은 말장난이거나 정신나간 중얼거림이나 진배없었다. 누군 '미쳐버린 철학'이라고도 비웃는데 기자가 보기에 "이건 명확한 악의다"란 결론이었다. 표현이나 행동거지 자체가 설득하고자 함과는(정말 그러길 바랐다면) 180도 턴, 완전 '밉상'으로 흐른 것.

이 기사도 마찬가지.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어떤 반응을 원했는지를 떠나 여기저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의 문맥이 딱딱 끊기고 반감까지 사는 실수의 연속이다. 정녕 '살인마를 옹호하는 사람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것이 어긋난 생각임을 수긍케 하려면 먼저 '살인마 옹호'의 문제점에 대한 설득부터 갖췄어야지. 기자라면 차라리 여기까지 온 거 '표현의 자유'(물론 이것도 논란의 불구덩이로 번지점프하는 격이지만)를 내걸고 개설자를 옹호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도 쉽진 않다. 이렇게 되면 '살인자는 죽여라'란 비난글도 또 하나의 '표현의 자유'로 인정한 뒤 양 쪽 다 인정하며 설득해 가는 고급 난이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이런 부분이 싹 빠져버리는 바람에 글엔 '마녀사냥과 그 일당들'만 남았다. 촛불집회 문제나 미네르바 사태를 안전장치없이 곧장 링크시켜버린 무모함은 말할 것도 없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간 이어진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 지적이란 무난한 마무리 역시 뜬금없게 됐다. 네티즌이 한번 반감을 가지면 '아주 그냥 밉상'인 글의 전개다.

또하나 지적하는 것은 가슴아프게도 기사의 전달과 친절성에 대한 퀼리티. 문제의 카페를 '강호순 팬카페'라고만 명시했는데, 물론 가장 대표적 논란작이 이 카페였다지만 더한 아류작(?)도 난무했던 터라 좀 더 친절히 알려줬으면 하는 부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앞서 문제로 시선이 곱지 않게 된 독자가 한번 씹기 시작했다면 이 부분도 함께 거슬릴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기엔 바이라인이 무실명이다. 혹 사설이었나? 하고 본지 홈페이지도 들어가봤는데 오피니언이 아닌 사회섹션 수록물인 걸 보니 그것도 아닌 듯 하고. 무실명 기사의 강점은 독자의 반감 댓글과 팬레터를 방어한다는 점이며 약점 또한 반감 가진 독자가 "그럼 그렇지, 본인도 욕 먹을거 알고 가드를 올렸군"이란 조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사 어느 기자님이 쓴거야?' 하고 진정 반해버린 독자의 동경심에 파묻히는 무실명 명기사를 보고 싶은데 아직까진 사례가 없는게 아쉽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