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나 이제 서른, 내 이야기 들어볼래?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나도 이제 서른 나도 이제 서른 나도 이제 서른 나도 이제 서른...
미친듯이 총맞은 것처럼 되뇌이고 있다.
48. 나 이제 서른, 내 이야기 들어볼래?
한국나이로 서른. 딱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엔 안 든다. 물론 스물다섯부터 난 만 나이로 카운터를 세기 시작했다. 만으로 치면 난 아직도 철인'28'호로 쌩쌩하다. 그래도 한국에서 살다보니 몇 살이냐 물어오면 이것도 함께 명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아하하,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렸을 적부터 서른이 되면 인생은 끝난다고 생각했고 즐거운 시절은 종친다고 생각해 왔다. 인생의 무덤이라던가. '늙었다', '완전히 어른이 됐다'는 것의 시작점으로 생각해 오던 시간이 왔다. 물론 요즘 세상은 결혼연령대도, 인생의 절정기도 많이 달라졌다(늦춰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김하늘은 서른 즈음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했고 한 락커는 한술 더 떠 스물일곱이면 사람이 모두 죽는 줄만 알았다고 하지 않았나.
실은 앞자리수를 새로 달 때마다 고비였다. 10대도 뭐도 아닌 아홉살 때, 12월 31일 저녁을 맞아 열살이 되면 뭔가 내 삶이 험난한 고비로 넘어간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대입시험이 끝나고 세기말인 1999년을 맞이할 때, 그 땐 사실 '스물'이란 가슴벅찬 말도 버거웠다. 영원히 십대 그대로 멈춰 있고 싶었다. '나도 늙었다'는 말을 어머니 앞에서 한숨 쉬며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광이 따로 없다.
막상 이십대가 되니 곧장 즐겁더라. 그해 TTL에선 '스무살'을 외치며 우릴 타겟으로 삼아 줬고, 난 스물셋, 스물일곱 고지에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금방이더라. 스물셋은 나라지키다 흘러갔고 스물일곱은 먹고살며 번뇌하고 고민하느라 바빴다.
서른이 되니 이번에도 광고는 우릴 타겟으로 삼아주더라. 조금 일찍, 이미 작년 작품이 됐지만 송승헌은 자동차 광고에서 서른에 홀로 여행을 떠나고 원빈은 커피가 맛있어지는 나이라며 내게 권해 온다. 잠깐만 기다려. 푸념 좀 더 하고 생각해 보지. (근데 이 엉아들 실은 서른이 좀 더 넘지 않았나?)
내 이십대는 후회스러웠나? 실은 그렇다. 누가 서른 되기 전까지 월급 200을 넘기면 좋겠다고 삼년 전인가 '소박한 기대'(?)를 꺼내보이던데 난 일단 실패했다. 내 신념에 첫 사표를 내던, 이에 연봉 1800으로 날 붙잡아주던 그 첫 직장, 그냥 남았더라면 저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서른살까지 한 사람도 가슴에 품지 않으면 마법사가 된다고 했다. 설마 하니 했다. 하다못해 설레이는 첫사랑이라도, 설령 그것이 시린 짝사랑이라도 한번은 경험하지 않을까 했다.
개뿔. CC는 뭐고 발렌타인 초코는 또 뭐냐. 딱히 그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남들도 다 해보는 걸 난 왜 못해봤을까'란 열등의식 때문이겠지. 스물여섯살 면접 때 이를 밝히니 "성격에 문제 있는거 아니냐"며 물어오던데 글쎄올시다. 어느 동호회에다 어제 이를 밝히며 '블랙매지션이 된다'고 했더니 뭐? '마법사는 서른 살까지 못해본... 뭐 그런거고 흑마법사(블랙매지션)는 거기다 플러스해 XX를 동성에 뺏긴 걸 뜻한다'라나.
청춘의 상징인 오토바이 한 대 갖고 싶었다. 아직도 자전거로 연명하고 있다.
스물하나에 자동차 면허 땄다. 경신하는 올해까지, 난 시험 후 한번도 차를 몰지 않은 오리지널 '살인면허'를 등록하고 있다.
여행의 낭만, 카메라? 이건 꽤 최근에 구했다. 이달 말에. 남들 신혼 자랑하고 출세길 달릴때 난 카메라 자랑하고 앉았구나.
무엇보다 가슴에 품었던 야망을 이십대 안에 이루지 못했음이 슬프다. 누구나 하나쯤 품고 있을 꿈, 서른은 이를 이룬 이들에 '천재'와 '늦깍이'란 어감이 미묘한 갈래길을 제시한다. 이루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만, '천재'라는 말엔 분명 로망이 있다. 무엇보다도, 죽을만치, 원없이 달려봤느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기에 서글프다.
소비의 시기라기에도, 축적의 시기라 하기에도 모두 애매한 청춘으로 끝났다. 이렇듯 서른을 축하하지 않고 지난날 회한에 자신을 난도질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서 드디어, 서른이 되어 좋은 점을 제시한다. 원빈이 커피가 맛있어지는 나이라고 했던 것을 난 어느샌가 이해하고 있었다. 쓰디쓴 커피는 곧 지나버린 서툰 20대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이제사 이를 즐기고 음미하며 다음 모금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지금 새롭게 선 이 봉우리는 예전 헤매이던 산등성이보다 높고 또 넓은 시야를 선사해 주고 있다. 상실감 뒤엔 또 묘한 설레임이 다가온다. 열살때도, 스무살때도 같은 경험을 해 봤다. 그리고 10년 후엔 '그 때 더 즐거워해도 좋았다'는 결론을 뒤늦게 꺼냈다.
아깝게 흘려보내고 만 시절을 곱씹으며 새 10년의 양분이 되길 기대해본다. 더 나은, 밀린 숙제를 모두 풀어내고 한꺼번에 성취감을 즐길 수 있는 진짜 전성기를 기약하면서 좀 더 쓴 커피를 음미하고자 한다. 안녕, 내 한국버전 20대의 시간들아.
아, 맞다. 내가 좋아라 하는 어느 소녀그룹 출신, 현재는 솔로로 활약하는 한 동갑내기 가수가 인터뷰에서 밝혀왔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 거니 난 나답게 살겠다, 서른이 넘으면 새 젊음이 열린다는 언니들의 말, 넌 나이먹어도 매력있을거란 아버지의 말을 믿겠다"라던가. '왕언니'라 부르고 싶을 만큼 또 한번 반했다. 함께 기사 쓰는 동갑내기 동료 역시 "딱 죽고 싶다"는 내 말에 "난 오히려 좋다"고... '대인배'였다, 그는. 이들은 이미 지난 스물의 커피를 음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절히 현재의 것에 설탕과 우유를 쳐 달콤히 즐기는 법까지 통달해 있다. 저들처럼 서른을 달콤히 즐길 줄 알려면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